(희망을 찾아서)① 다시 돌아본 세계1위 현장

류의성 기자I 2008.12.26 10:15:29

"불황, 호황 생각하는 시간도 사치다"..조선강국의 힘
LCD, 어깨너머 기술 배웠던 시절에서 41개월 세계1위로
세계시장을 휘어잡은 첨단 에어컨..질주지속

[이데일리 류의성 정재웅기자] '가동중단, 감산, 감축, 공포, 추락, 비상경영···'

한국 경제 현장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말들이다. 그만큼 경제흐름이 만만치 않다.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옮겨가면서 산업 현장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 수출과 내수 모두 빨간 불이 들어오면서 IMF 외환위기 이후 10년여만에 찾아온 위기라는 말을 실감나게 하고 있다. 모두들 내년이 더 걱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위기를 직시하되 희망을 잃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도 높아가고 있다. 우리는 달러가 없어 부도 직전까지 몰렸던 나라를 수년만에 세계 5대 외환보유국으로 바꾼 저력을 발휘했다. 세계개발은행은 이를 '기적'이라고 평가했다.
 
기적은 또 있다. 전쟁 폐허를 겪은 세계 최빈국을 수십년만에 메모리반도체· LCD, 디지털TV·조선 세계1위, 조강(철강)생산 세계5위, 자동차생산 세계6위의 10대 세계경제대국으로 탈바꿈시키는 힘을 보여줬다. 
 
희망이 없으면 노력도 없다고 했다. 희망만 가지면 그곳에서 행복의 싹이 움튼다고도 했다. 위기가 불러오는 불안속에서도 우리가 '희망'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외환위기를 극복해 낸 경험이 축적돼있고, 10년전에 비해 크게 개선된 산업경쟁력과 기술력, 우수한 인재를 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다.
 
이제 그 자산을 써 볼 '기회'가 왔다. 위기는 곧 기회다. 희망을 이야기하고, 희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땀 흘린다면 위기극복이라는 알찬 열매가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편집자)
 
 "웅웅~, 쿵쿵~" 울산공항에서 차로 30여분 들어간 곳에 위치한 현대중공업 본사.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웅장한 굉음이 귓전을 때린다.
 
부산하게 움직이는 근로자들, 발디딜틈 없이 자리잡고 있는 선박 블럭들의 모습에서 산업현장의 힘이 느껴진다.  조선소 곳곳에서 트랜스포터들이 엄청난 크기의 불럭들을 운반 중이었고 각종 기자재들은 일사분란하게 조립현장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블럭들과 건조중인 배 때문에 오후 햇살이 조선소에 들어올 틈조차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자투리 공간이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 근로자들은 주위를 돌아볼 틈도 없이 블럭 곳곳에서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도크공사 선박건조 동시에..세계1위의 힘
 
"불황이니 호황이니, 그런 생각할 틈도 없습니다. 요사이 불황, 불황 하는데 그런 거 따지는 시간도 사치입니다."
 
세계 제1의 조선업체 현대중공업 공장은 이렇게 돌아가고 있었다. 협력업체 직원까지 총 4만5000여명의 인력이 일하는 280만평(배후단지 포함) 산업현장을 돌아보는 가슴이 뿌듯해졌다.
 
▲ 전 세계적인 불황도 빗겨가고 있는 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의 모습.
도크 곳곳마다 건조중인 선박이 두 척씩 들어가 있는 게 눈에 띄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주문량이 밀려 도크에 건조 중인 배를 최대한 많이 넣어 두고 작업하고 있다"며 "안벽에도 선박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그는 안전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는 총 10개의 도크가 있다. 현재 모든 도크에서 선박이 건조 중이다. 설계 중인 선박까지 합치면 총 30여척의 선박이 울산 조선소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심지어 공사중인 10도크 현장에서도 지난 2006년 수주한 벌크선이 건조되고 있었다. 도크 공사와 선박 건조가 동시에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육상건조가 진행 중인 해양플랜트 공장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이종승 설계담당 상무는 "현대중공업이 세계 1위를 할 수 있는 힘은 현장과 설계와의 유기적인 관계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도요타식 생산형태를 갖추고 있어 선주가 원하는 배는 어떤 선종이든 만들어낼 수 있다"면서 "건조 중간에 선주의 요구가 바뀌어도 그 요구에 맞게 선박을 건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요즘 해운경기가 안좋아서인지 벌크 캐리어를 주문했다가 탱커로 변경해달라는 요청이 늘고 있으며, 이런 요청도 모두 수용하고 있다는 설명이 덧붙여졌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세계 최고 한국조선의 힘이 실감나게 다가왔다.
 
◇100미터 크레인 위에서 조선강국을 느끼다
 
우리나라 조선소의 선박 건조기술은 이미 세계 최고로 정평 나 있다. 기자재부터 엔진, 선박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일관 조선소' 형태를 갖추고 세계 최대 설계 인력을 활용해 고품질 선박을 건조하고 있다. 
                                                                                                                   
▲ 100미터 높이의 골리아스 크레인 위에서 바라본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의 모습.

이종승 상무는 "도크에서 여러가지 선종을 믹스해 생산할 수 있다"면서 "여기에 엔진 자체생산, 조선 기자재 자체 생산 등 여러 요소가 결합된 시너지가 현대중공업 세계 1위의 밑바탕"이라고 말했다.
 
기자는 높이 100m의 골리아스 크레인 위로 올라갔다. 세계 1위 현대중공업의 모습을 한 눈에 보기 위해서였다.
 
거센 바람에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였지만 동에서 서로 끝없이 펼쳐져있는 조선소 광경에 순간 할 말을 잃었다.
 
멀리 잔잔한 바다 위에서는 최근 건조한 선박들의 시운전이 한창이었다. 그리고 아래로 아찔한 땅 위에서는 수많은 근로자들이 일사분란하게 선박건조에 집중하고 있었다. 조선강국을 창조해 낸 사람들이었다.
 
◇크리스탈 밸리, 41개월 연속 세계1위의 현장
 
세계일류 산업현장으로 빼놓을 수 없는 곳은 많다. 삼성전자와 LG전자 공장들도 그 중 일부다. 
 
서울에서 약 1시간 거리인 충남 탕정에 위치한 삼성전자 크리스탈밸리. 삼성의 LCD 핵심기지가 있는 곳이다. 불과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일본기업들의 LCD 기술을 어깨너머로 배웠던 삼성전자였지만, 이제 이 분야에서 41개월 연속 세계시장 1위를 지키고 있는 글로벌 최강자다.
 
▲ 충남 탕정에 위치한 삼성전자의 크리스탈 밸리.
삼성전자 LCD의 생산기지는 크게 천안사업장과 탕정사업장 두 곳이다. 탕정에는 첨단 차세대 라인이, 천안에는 중소형라인들이 있다.
 
탕정사업장의 7세대 생산라인. 이 곳에서는 46인치 기준으로 월 168만대의 LCD패널이 찍혀 나온다. 여기에 8세대 1라인에 이어 2라인까지 가동되면 세계시장 1위를 지키기 위한 삼성의 질주는 지속된다.
 
소니와 합작투자한 8세대 2라인은 현재 건물공사를 끝내고 장비반입을 시작, 내년 상반기 본격가동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 LCD패널 가격이 계속 하락하면서 업계는 감산에 들어갔다. 삼성전자도 올해 4분기에는 10% 수준으로 패널 생산량을 줄였다. 그럼에도 내년에 시장이 회복될 수 있을 것인지 장담할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크리스탈밸리에서는 위기를 기회로 삼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지난 84년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극심한 불황에 시달렸을 때 인텔이 D램 사업에서 철수했다. 삼성전자도 주력제품이었던 64KD램에서 당시로서는 매우 큰 1000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삼성은 그러나 미래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결국 92년 D램 시장 1위에 올라섰다. 이후 세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고 있다. 과감한 의사결정과 공격적 투자로 LCD와 세계TV시장까지 장악하게 된 경험을 살려 불황을 극복하겠다는 것이다.
 
◇40년간 1억대 생산..LG전자 창원 에어컨공장
 
올해 5월 일본 도요타의 조 후지오 회장은 한국의 한 공장을 방문해 연신 "대단하다"는 극찬을 쏟아냈다. 경남 창원시에 위치한 LG전자 창원 에어컨 공장이다. 이 곳에서는 지난 40년간 1분에 4~5대의 에어컨이 팔려 나갔다.
 
조 후지오 도요타자동차 회장은 "도요타보다 나은 부분도 많다"며 혁신성을 높이 평가했다.
 
에어컨은 LG전자 생활가전사업부의 대표사업으로 매출 비중이 가장 높다. 공장근무 임직원은 2000여명.
 
LG전자는 지난 68년 에어컨사업에 진출, 올해 불혹(不或)의 나이를 맞아 세계 에어컨시장에서 누적판매 1억대를 돌파했다. 40년간 1분에 4.8대의 에어컨이 팔려나간 셈이다.
 
LG전자는 에어컨 시장에서 지난 2000년부터 2007년까지 8년간 판매량 세계1위 자리를 내놓지 않고 있다. 2004년 이후부터는 1000만대 판매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작년에는 1600만대 이상을 팔아치우며 48억 달러라는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 LG전자의 창원 에어컨 공장 생산 라인.

지난해 전 세계에서 판매된 에어컨 5대 중 1대가 LG 에어컨인 셈이다.
 
LG전자 창원 에어컨공장은 최근 글로벌 경기 침체와 더불어 계절적 비수기인 겨울에도 불구하고 라인을 풀 가동하고 있다. 감산이나 생산라인 중단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LG전자 관계자는 "전세계 경기침체와 비수기에도 불구하고 난방제품과 시스템에어컨 수요 증대에 맞춰 연말에도 풀 가동하고 있다"며 "세계 최고 생산성과 환율 효과로 국내 생산이 효율적이라는 점도 반영했다"고 강조했다.
 
한편, 에어컨 사업은 DA(디지털 어플라이언스)사업본부에서 분리돼 내년부터는 별도 에어컨 사업본부로 확대 개편된다.  상업용 및 가정용 에어컨 뿐 아니라, 빌딩관리시스템과 홈 네트워크 등을 포함해 차별화 된 경쟁력을 갖추겠다는 전략이다.
 
노한용 LG전자 에어컨사업부 부사장은 "그동안 뼈를 깎는 혁신을 통해 확보한 최고 생산성이 있었기에 연말에도 정상적인 생산이 가능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렇게 힘든 때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해 더욱 탄탄한 경쟁력을 키워갈 것"이라며 "그동안 가정용 중심의 에어컨 사업의 경험에 성장가능성이 높은 상업용 시장으로 영역을 넓혀 글로벌 공조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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