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탐구)박세리① "골프 어렵다. 그럴수록 여유 가져야 된다"

이의철 기자I 2008.11.03 12:41:50

"후배들 보면 자랑스럽고 든든하다"..박세리 키즈에 뿌듯
"골프는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중요...자신을 위해 즐겨라"
"경제 어려운데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 주었으면 좋겠다"

[이데일리 이의철 논설위원] 경제가 참 어렵다. 10년전 외환위기 때 만큼이나 힘들다는 사람들도 많다. 10년전 외환위기를 겪던 한가운데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인물이 있다. 박세리(31). 여자 골프선수다.


98년 US여자 오픈에서의 명승부는 지금도 한국 국민들의 잔상에 남아있다. 박세리는 그 대회에서 태국의 추아시리 폰과 연장까지 가는 대접전을 펼쳤다. 그리고 연장전 첫 홀인 18번홀에서 해저드 기슭에 있던 공을 치기 위해 양말을 벗고 물에 들어가 멋진 샷을 날렸고, 결국 우승컵을 쥐었다. 당시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던 국민들에게 묘한 감정이입을 주었다.

박세리. 충남 공주 출신.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골프채를 잡았다. 98년 미국 LPGA투어에 참가. 데뷔 첫해 맥도널드 챔피언십과 US여자오픈, 2개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 뉴욕타임즈는 “한국이 수출한 최고의 상품”이라고 평가했다. 이후 현재까지 LPGA 통산 24승, 이중 메이저 우승이 5회. 2007년 마침내 LPGA 명예의 전당에 역대 23번째(선수 출신)이자, 최연소로 입성했다. 한국인은 물론 아시아권에선 최초다. 더 이상 어떤 프로필이 필요할까. 박세리는 한국 여자 골프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화려한 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박세리는 극심한 슬럼프도 겪었다. 묘하게도 슬럼프는 일생의 목표였던 명예의 전당 헌액이 사실상 확정된 이후부터 찾아왔다. 상금랭킹이 100위대로 미끌어지면서 “박세리는 끝났다”는 수군거림도 있었고, 80대타수를 기록했을 땐 “주말 골퍼”라는 비아냥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2006년 LPGA 데뷔 첫해 우승대회였던 맥도널드 챔피언십에서 다시 우승하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지난해도 1승을 추가했다. 슬럼프를 겪으면서 아버지와의 불화설, 성형설 등으로 마음고생을 더했지만 박세리는 “이제는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도 웃을 수 있다”고 말한다.

박세리 선수를 만나러 가는 길은 멀었다. 아끼는 후배 덕택에 어렵게 약속을 잡을 수 있었다. 스카이 72 골프클럽을 대중 교통을 이용해서 가본 것은 처음이다. 박세리는 스카이 72골프클럽 오션코스(파 72, 6490야드)에서 열리는 LPGA투어 2008 하나은행-코오롱 챔피언십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

골프장에 도착해서도 2시간을 기다려서야 박세리를 만날 수 있었다. 박 선수가 연습 라운드중이기 때문에 중간에 방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클럽 하우스에서 폴라 크리머, 모건 프리셀을 비롯해, 신지애 김미현 이선화 이미나 등 국내외 유명 여성 골퍼들을 모두 만날(?) 수 있었다.

박세리가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지난 10년간 세계 골프계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업적을 이루어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슬럼프의 긴 터널에서 벗어나 예전과는 다르지만 또 같은 박세리로 섰기 때문이다. 박세리는 강인하지만 부드러운 여자다. 인터뷰 중간 중간 한 성격하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농담도 잘하고 시집가고 싶다고 애교를 떨 줄도 알았다. 만화에서 ‘세리 공주’는 지팡이 하나로 무엇이든 이루어낸다. 현실에서의 ‘세리 공주’는 어떨까. 이제 ‘세리’의 마술 같은 골프와 인생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반갑다. 오랜만에 보니 예뻐진 것 같다.
“아닌데.... 옛날이랑 똑같다. 저를 처음 보신 분들이 화면에서 보는 것과 다르게 보이니까(박세리는 실물이 훨씬 예쁘다, 편집자주) 턱을 깍았느니 얼굴을 고쳤느니 뒷말이 나온다. 그래서 예뻐졌다는 얘길 들으면 마음이 편치 않다(웃음)”

-이번에 한국에 온 이유는.
“스카이72에서 열리는 투어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대회 끝나면 다시 미국으로 간다. 한달 정도 가족들과 함께 시간 보낼 계획이고 이제 투어는 거의 끝났으니 동계 훈련 시작해야 한다”

-스카이72 오션 코스가 익숙한 곳인가.
“그렇지는 않다. 라운드는 한번 해본 적 있다. 연습라운드 해보니 골프장 컨디션도 좋고 그린 상태도 최상급이다. 스카이72 김영재 사장님이 골프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분이다. 또 나에게뿐만 아니라 한국 골프계에 대단히 좋은 일을 많이 하시는 분이다. 그런 인연으로 골프장 홍보대사도 맡고 있다”(박세리와의 만남은 대회가 열리기 전 이루어졌다. 10년전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을 때처럼 지금도 한국경제가 어렵다는 점을 상기시켰더니 “더 잘쳐야 겠네요”라고 강한 의욕을 보였다. 박세리는 이번 대회 3라운드 합계 이븐파 216타로 공동 17위에 올랐다. 우승은 6언더파를 친 대만의 캔디 쿵이 차지했다, 편집자주)

-지금도 기억난다. 98년 유에스 오픈 결승전 연장전 승부에서 양말 벗고 해저드에 들어가서 샷을 하던 장면.
“그 얘기 해주시는 분들 아직도 많다. 우연찮게 그 때 한국이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그 장면이 국민들에게 큰 인상을 남긴 것 같다. 그래서 더 기억을 많이 해주시는 것 같다”

-지금 한국경제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어렵다. 이번에 좋은 성적 내면 좋겠다.
“한국경제가 어려워 나도 안타깝다. 우연이지만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

-올해가 LPGA 데뷔 10년차다.
“벌써 그렇게 됐다. 98년 루키로 나갔으니까 올해로 꼭 데뷔 10년차다”

-그동안 박 선수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지 않았나. 소위 말하는 박세리 키즈가 지금 LPGA를 휘젓고 있다. 후배들을 보면서 어떤 느낌이 드는가.(박세리 키즈란 박세리 선수가 US오픈 타이틀을 거머쥘 무렵인 98년을 전후로 박세리를 롤 모델로 골프채를 잡은 한국의 여자골프 유망주들을 말한다, 편집자주)
“너무도 뿌듯하다. 후배들을 보면서 대단히 자랑스럽고 든든하다. 한국 여자 골프가 여전히 세계 최정상급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점에서 기분 좋다. 후배들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지금 그대로만 해주면 좋겠다. 너무 잘하고 열심히 하고 있다”

-어린 선수들이 연습하는 것을 보니 안쓰럽다는 생각도 들던데.
“선수들 자신은 그렇게 생각 안한다. 약간 아쉬운 게 있다면 20대 초반 나이에 그 또래들만의 추억을 갖기 힘들다는 점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다소 아쉽긴 하지만 인생은 언제나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는 법 아닌가. 그래도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고 있으면 되는 거다”


-후배들과는 주로 어떤 얘기를 하는가.
“골프는 철저한 개인 운동이다. 또 정신력이 크게 좌우한다. LPGA 투어는 체력적으로도 대단히 힘들다. 자신과의 싸움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후배들한테 ‘열심히는 하되, 짬을 내서 즐기라’고 충고해준다.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그래야 한다. 나도 못한 부분인데, 외국선수들과 비교해보면 한국선수들은 그런 점에서 확실히 떨어진다”

<박세리 인터뷰 2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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