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이데일리 문화대상 심사위원 리뷰
연극 '천 개의 파랑'
이미지 통해 무대 입체화
로봇 `콜리`로 분한 김예은
탁월한 집중·몰입 보여줘
| (사진=국립극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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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표 대경대 연기예술과 교수] 일본에서 반려 로봇 강아지는 단절된 사회에서 고독사를 막아주는 가족 역할을 해내고 있다. 반려 로봇 강아지와 감정을 교감하고 위로를 받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2019년 한국과학문학상 장편소설 부문 대상작인 SF소설 ‘천 개의 파랑’은 분열과 갈등의 시대에 로봇 콜리를 통해 인간을 대신하는 위로를 받을 수 있다. 로봇콜리는 불완전한 인간 내면을 대체한다. 이러한 SF소설의 서사가 현실이 될 수 있는 이야기로 다가왔다. 연극 ‘천 개의 파랑’(원작, 천선란 각색, 김도영 연출, 장한새 4월16일~4월28일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소극장)은 극 중 인물과 교감하며 극을 이끌어가는 중심인물, 로봇 ‘콜리’가 등장하는 이야기다.
인간의 승부욕을 충족하기 위해 달리던 경주마 투데이의 부상과 함께 콜리의 몸도 공중으로 떠올라 부서지는 첫 장면으로 공연은 시작된다. 공중에 떠오른 콜리 눈에 비친 천 개의 파랑의 이미지를 첫 장면부터 시각적으로 무대화했다. SF소설 언어를 천 개의 파랑 이미지로 전환하는 무대 앞 스크린과 언리얼 엔진, 메타 휴먼, 모션 캡처와 가상현실이 결합해 투사되는 영상 이미지들을 연출적으로 활용했다. 판타지적이면서도 현실을 느낄 수 있도록 무대를 입체화한 것이 특징으로 작품에서는 로봇 콜리와 경주마 투데이의 관계 설정이 핵심이다. 인공지능 로봇과 경주마 투데이는 정서를 교감하는 관계이면서도 인간을 뛰어넘는 숭고한 헌신을 느끼게 만든다. 극 중 인물도, 경주마 투데이도, 로봇 콜리도 모두 결핍과 소외의 상태에 있다. 하반신이 마비된 중도장애로 휠체어에 의지한 채 살아가는 은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대상으로 콜리를 대하는 전직 배우였던 엄마 보경, 그리고 가족보다 로봇에 몰두하며 하반신이 부서진 콜리를 수리하기 위해 애쓰는 연재의 가족 관계로 연결된다.
| 김건표 대경대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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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휴머노이드 로봇을 편의를 존재로 바라보는 시선 대신 교감하고 연대할 수 있는 인간 그 이상의 대상으로 수용한다. 경주마 투데이를 살리기 위해 달리는 말 등에서 스스로 낙마해 하반신이 망가진 휴머노이드 기수(騎手)인 로봇 콜리는 실제 로봇이 연기하지만, 콜리의 내면이자 분신 같은 존재는 인간 배우로 설정하고 있다. 휴머노이드 로봇이 인간과 공존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연극 ‘천 개의 파랑’이 원작소설의 재현에 갇히지 않고 연극으로 수용될 수 있었던 것은 콜리로 분한 김예은과 배우들의 충실한 연기, SF소설을 무대화한 연출력 덕분이다. 특히 배우 김예은은 마치 인간이 되고 싶은 로봇의 영혼을 불러들인 것처럼, 연기도 몸의 감각도 대사의 호흡과 리듬도 탁월한 집중과 몰입을 보여주었다. 콜리의 심장을 느끼게 할 정도로 말이다. 이밖에도 원작인 장편소설의 서사를 무대로 풀어낸 각색, 동물의 복지권, 기계와의 교감 등 인간과 비인간의 구분 자체를 무효화시키는 감동을 끌어내려고 한 연출의 시선에서 천 개의 파랑 무대를 읽게 했다.
다만 콜리와 그 내면, 투데이의 마지막 경주에 이르기까지의 필수적인 극적 관계에 공간활용을 집중하고 무대 여백을 살렸다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은 있다. 이야기는 많고 장면의 강조가 크게 느껴졌다. 그러나 개방적인 무대 앞 스크린으로 언리얼 엔진, 메타 휴먼, 모션 캡처와 가상현실이 결합되어 투사되는 영상 이미지들은 SF소설 속 언어를 무대 이미지로 전환하는 표현방식은 흥미로웠다. 로봇 콜리를 통해 인간 내면에 내재한 분열과 불안을 위로하면서 소설의 SF 서사를 연출적으로 자신감 있게 무대로 그려냈다.
| 연극 ‘천개의 파랑’ 공연 사진. (사진=국립극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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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천개의 파랑’(사진-국립극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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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천개의 파랑’ 공연 사진. (사진=국립극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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