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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용익의 록코노믹스]앨범 발표 없이 공연만 하는 속사정

피용익 기자I 2018.01.20 12:23:06
건스 앤 로지스가 지난해 1월21일 일본 오사카 공연에서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사진=GUNS N‘ ROSES 공식 홈페이지)
[이데일리 피용익 기자] 지난해 1월 미국 헤비메탈 밴드 건스 앤 로지스(GN´R)의 공연을 보기 위해 일본 오사카에 다녀왔다. 티켓 가격이 1만3000~2만8000엔에 달했지만 교세라돔에는 3만여명이 운집했다. 탈퇴했던 슬래쉬(기타)와 더프 맥케이건(베이스)이 액슬 로즈(보컬)와 다시 만난 ‘이번 생애에는 다시 없을 순회공연(Not In This Lifetime Tour)’을 보기 위해서였다.

이보다 앞서 2015년 2월에는 일본 나고야에서 미국 헤비메탈 밴드 머틀리 크루의 공연을 관람했다. 공연이 열린 닛폰가이시홀 1만석이 꽉 찼다. 인구 226만명인 작은 도시라는 점을 생각하면 상당히 큰 공연이었다. 머틀리 크루의 ‘마지막 순회공연(The Final Tour)’이라는 점이 메탈 팬들을 공연장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머틀리 크루는 2014년 7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진행된 순회공연(투어)을 끝으로 공식 해체했다. GN´R은 2018년 유럽에서 열리는 록 페스티벌 등에 참여하는 것 외에는 일정이 공개되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두 밴드가 앞으로 새 앨범을 낼 가능성은 작다는 점이다. 이들의 마지막 정규앨범은 모두 2008년에 발매됐다. 그 후로 10년 가까이 신곡 발표 없이 공연 활동만 해왔다는 얘기다.

머틀리 크루의 리더이자 베이시스트인 니키 식스는 한 인터뷰에서 신보를 발표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투어를 하지 않는 밴드는 어떤 의미에서 밴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음악은 공연장에서 들어야 하는데, 해체를 공식화하고 마지막 투어를 한 마당에 단지 집에서 듣기 위한 앨범을 만들 이유가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속사정은 다르다. 앨범을 만들기 위해서는 작사·작곡을 해야하고, 악기 연습을 해야 하며, 유명 엔지니어를 섭외하고, 좋은 시설이 있는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해야 한다. 모두 노력과 돈이 드는 일이다. 앨범이 만들어진 후에는 홍보와 영업에 추가 비용이 든다. 문제는 막대한 돈과 노력을 들여 만든 음반이 요즘엔 잘 팔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런 이유에서 음악 전문지 롤링스톤은 GN´R이 새 앨범을 발표할 가능성에 대해 “극단적인 아이디어”라며 “고된 작업과 끝없는 타협을 통해 새로운 앨범을 만드는 것은 지금 시점에선 과도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음반 제작은 돈도 안 되면서 고되기만 한 경우가 많다. 미국 록 밴드 세미소닉의 드러머 제이콥 슬릭터는 2004년 출간한 책을 통해 대중음악 시장의 충격적인 수익구조를 공개한 적이 있다.

세미소닉이 신보에 들어갈 곡을 녹음하기 위해 스튜디오를 빌리는 값은 하루 2000달러였다. 그런데 녹음은 하루에 끝나는 게 아니다. 길게는 수개월이 걸릴 수도 있는 작업이다. 프로듀서와 엔지니어에게 지불해야 하는 돈은 총 10만달러였다. 교통비와 숙박료도 들었다. 세미소닉이 일렉트라 레코드로부터 받은 선금 25만달러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렇게 어렵게 만들어진 앨범의 판매 수익도 뮤지션에게 몇푼 돌아오지 않는다. 음반 판매를 통한 총수입이 100이라고 치면, 일렉트라 레코드는 홍보비용으로 25%를 먼저 가져간다. 나머지 75%에 대해선 세미소닉이 13~15%를 받고, 나머지는 다시 일렉트라 레코드 몫이다. 밴드가 13~15%를 다 갖는 것도 아니다. 이 가운데 2~4%는 프로듀서에게 줘야한다. 이제 밴드에게 남은 것은 10% 정도이다. 이 돈을 멤버들끼리 나누고 매니저 몫도 챙겨줘야 하며, 심지어 세금도 내야 한다.

음반 제작에 비해 공연은 인기 밴드들에게 있어서 짭짤한 돈벌이 수단이다. GN´R의 경우 2016년 4월부터 진행한 ‘Not In This Lifetime Tour’ 순회공연을 통해 지금까지 4억9000만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음반 판매량이 정확하게 집계되지 않은 마지막 앨범 ‘Chinese Demorcay’를 통해 번 돈의 수십배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슬래쉬와 다시 합치느니 빨리 죽겠다”던 액슬 로즈가 1년도 훨씬 넘게 슬래쉬와 함께 월드 투어를 다니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공연 수익은 대부분 뮤지션이 가져간다는 점이 장점이다. 미국 공연 티켓 가격 평균이 55.65달러라면, 이 가운데 34~47달러는 뮤지션에게 돌아간다. 공연 매출의 평균 74%가 아티스트 몫이란 뜻이다. 공연장에서 판매하는 티셔츠 등 머천다이즈에 따른 수익 배분도 이와 비슷하다. 뮤지션의 인기가 높을수록 배분되는 수익 비율이 높아진다.

피어 팩토리의 디노 카자레스는 한 인터뷰에서 “투어는 언제나 필수적이다. 특히 익스트림 메탈 밴드들에게 있어선 그렇다”며 “왜냐하면 팝 밴드나 라디오에 많이 나오는 밴드들과는 달리 (익스트림 메탈 밴드들은) 음반 판매만으로는 먹고 살기 어렵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앨범 발표 없이 공연 활동만으로 돈을 버는 것은 2시간 짜리 세트리스트를 가득 채울 히트곡을 가진 유명 밴드들에만 해당하는 얘기다. 공연을 하기 위해선 히트곡이 필요하고, 히트곡을 만들기 위해 지금도 수많은 밴드들이 돈도 안 되는 음반을 만들고 있다. 물론 부자가 되기 위해 록 음악을 하는 뮤지션은 드물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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