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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 당시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뒤 혼수 상태에 빠진 고인은 317일 만에 끝내 숨을 거뒀다. 백씨가 숨진 지난달 25일 경찰은 “정확한 사인 규명을 위한 차원”이라며 부검 영장을 신청했다. 유족과 투쟁본부 측은 “사인은 경찰의 물대포로 인한 외인사가 명백하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법원은 이튿날 이를 기각하자 검·경은 추가 소명자료 등을 보완해 영장을 재청구했다. 법원은 유족과의 협의 등을 조건으로 지난달 28일 영장을 발부했다. 부검 장소와 참관인, 촬영 등 절차를 유족과 협의해 결정하고 시기 및 방법, 절차 등에 관해 유족 측에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라는 게 법원이 내건 조건이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영장 발부 다음 날인 지난달 29일을 시작으로 유족과 백남기 투쟁본부에 6차례에 걸쳐 협의요청 공문을 보냈다. 이들 공문은 모두 “대표자를 선정하고 부검을 위한 협의 일시와 장소를 통보해달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유족과 투쟁본부 측은 “부검을 전제로 한 협의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반대해 통보 시한은 이달 4일에서 지난 22일까지 늦춰졌다.
법조계에서도 고인의 부검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나승철 전 서울지방변호사회장 등 변호사 119명은 지난 7일 유족 동의 없는 부검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은 지난 13일 부검 영장이 유족의 시체 처분권을 침해했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고 영장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가처분도 신청했다.
하지만 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나오지 않았고, 경찰은 유족·투쟁본부 측의 반발에도 6차 협의요청 공문 시한 다음 날인 이날 영장 강제집행을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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