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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석호필' 독립운동가 스코필드 박사 특별전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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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운 기자I 2016.02.27 11:58:47

독립기념관 ''3월의 독립운동가'' 스코필드 박사 선정
독립기념관 특별기획전시장에서 3월 한달 특별전 개최

1958년 스코필드 박사의 귀국 환영회 모습(사진=독립기념관)
[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독립기념관은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독립운동가 스코필드(1889~1970) 박사를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하고 다음달 1일부터 31일까지 관내 특별기획전시장에서 ‘한국을 조국처럼, 한국인을 동포처럼 사랑한 캐나다인’ 전을 연다. 이번 전시에는 스코필드 박사의 가족사진 등 관련자료 11점을 선보인다.

스코필드 박사는 1889년 3월 15일 영국 워릭셔주에서 태어나 1907년 캐나다 토론토로 이주해 세균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과의 인연은 1916년 11월 캐나다장로회 선교사 자격으로 부인과 함께 내한해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에서 세균학을 가르치면서 시작되었다.

스코필드 박사는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한국인들을 적극적으로 돕고, 만세운동 현장을 기록으로 남겼다. 일제의 잔혹하고 비인도적인 탄압에 맞서 싸웠다. 특히 1919년 4월 6일 일제가 자행한 수원(현재의 화성지역) 수촌리마을 방화현장과 15일 제암리교회 방화 학살사건 현장을 방문해 사진을 촬영하고 보고서를 남겨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폭로했다. 캐나다장로회 해외선교부는 스코필드 박사의 반일적 태도를에 부담을 느껴 1920년 3월 세브란스 근무 계약기간이 만료되자 귀국 조치를 취했다.

스코필드 박사는 광복 이후 1958년 8월 국빈자격으로 한국에 왔다. 이후 서울대 수의과대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고아원 두 곳과 직업학교를 후원했다. 스코필드 박사는 생전 한국 이름인 ‘석호필’을 좋아하고 즐겨 사용했으며 정부는 1968년 스코필드 박사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다. 스코필드 박사의 유해는 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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