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문기환 칼럼니스트] 최근 우리나라 언론사에 남을 만한 두 가지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미국산 수입 쇠고기를 음식점에서 맛있게 구워 먹는 사진 속 주인공들이 손님이 아니라 취재하러 그곳에 간 언론사 기자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41년 전 겨울, 김포 공항에서 벌어진 일이다. 미국에서 도착한 비행기의 트랩을 짧은 치마를 입은 채 당당히 내려와 ‘우리나라 미니스커트 1호’라는 애칭(?)을 얻게 된 유명 가수가 이제 와서 돌연 당시의 언론 보도가 ‘오보’임을 고백한 것이다.
어느덧 60대가 된 그녀의 말을 빌려보면, “귀국 당시(1967년 1월 새벽)는 겨울이라 털 코트에 장화를 신고 있었고 추워서 미니스커트는 입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이 오보 사건은 며칠 뒤 모 언론사의 당시 자료 검색을 통해 결국 해프닝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그 신문에 따르면 그녀의 공항 귀국 장면을 신문이나 방송에서 보도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단지 미국에서 귀국한 지 몇 달 후 그녀가 어느 패션쇼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나왔다는 기사가 몇몇 신문에 보도되었고, 얼마 후 발행된 노래 앨범 재킷에도 미니스커트를 입은 모습의 사진을 썼기 때문에 그녀가 우리나라의 “미니스커트 1호’라는 상징성이 강했다는 얘기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오보라는 말이 나왔을까? 단초는 바로 10여 년 전 제작된 한 편의 TV CF로 보인다.
모 유명 백화점에서 그녀의 상징성을 테마로 삼아 ‘미니스커트 1호’를 소재로 한 기업광고를 TV에 내보낸 적이 있었다. ‘1967년’이라는 큼지막한 자막이 떠오르고 ‘꿈과 용기가 있는 새로운 세계’를 만들자는 멋진 멘트와 함께 화면에 비치는 장면은 빛 바랜 흑백 영상이었다. 거기엔 환한 대낮에 미니스커트 차림의 젊은 여자가 외국인 승객들 틈에서 활짝 웃으며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고 있었다.
매우 그럴 듯 해서 40년 전에 촬영된 영상 자료를 용케도 찾아내서 CF에 사용한 것으로 착각한 사람은 필자뿐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광고 대행사에서는 당시 상황을 상상해서 재현했으며 그녀와 비슷하게 생긴 대역을 써서 촬영한 일종의 드라마 식 연출 화면이었다는 얘기였다. 우리 모두가 그 연출된 화면을 기억해 내고는 오보 사건에 잠시 휘말리게 된 것으로 보인다.
생각해 보면 미디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연출 사진, 연출 화면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다. 특히 이윤을 추구하는 민간기업들은 제품 홍보나 기업 홍보를 할 때면 이에 적합한 사진과 영상을 언론 보도용으로 제공하기 위해 혹은 피치 못해 아니면 의도적으로 연출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글로 쓰는 기사와 달리, 사진과 화면에는 반드시 사람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감 시간에 쫓긴 언론사의 요청으로 애꿎게 홍보실 직원들이 보조 엑스트라로 출연하게 되는 일도 다반사이다.
5~6년 전 필자가 모 유통기업의 홍보 임원으로 재직할 때의 일이다. 당시 패션 의류 유통을 전문으로 회사에서는 신규사업 확대의 일환으로 패밀리 레스토랑을 막 오픈 하였다. 이에 따라 홍보실에서도 신규 레스토랑의 언론 홍보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모 방송국의 아침 프로그램 제작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신문 기사를 봤는데, 회사의 신규 레스토랑이 자신이 맡고 있는 주부 대상의 프로그램에 적합할 것 같아 취재를 하고 싶다는 얘기였다. 메뉴, 디자인 등 레스토랑의 특성 상 신도시 대단지 아파트 촌의 젊은 주부들이 주요 고객 층이기 때문에 쌍수(?)를 들어 적극 협조하겠다고 응대했다.
방문 취재가 결정되자, 서둘러 레스토랑의 지배인과 직원들에게 인터뷰 요령 및 주의 사항 등 소위 언론 홍보 교육을 실시했다. 그리고 취재 당일에는 홍보실 직원을 현장에 파견하여 적극 지원을 하도록 하였다.
거의 한 나절이 지난 후에야 현장에 파견된 직원이 사무실로 돌아 왔다. ‘잘 진행되었냐’는 질문에 그녀는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표정으로 다짜고짜 ‘본인이 드디어 방송에 데뷔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무슨 얘기인가 좀 더 들어보았다.
방송사의 외주 제작 업체 촬영팀이 레스토랑에 도착한 때가 당초 예정 보다 많이 늦어져 오후 4시경이었다고 한다. 점심 시간이 많이 지난 탓인지 손님들이 뜸했다고 했다. 해서 레스토랑 내외부 전경 촬영과 지배인의 인터뷰는 무난히 마쳤지만, 정작 레스토랑을 이용하는 고객과의 인터뷰 섭외가 만만치 않았다는 얘기였다.
다행히, 점심 식사 후 별도 모임을 갖고 있는지 커피를 마시고 있는 4~50대 주부들이 있어 인터뷰 하나는 마쳤는데, 정작 레스토랑의 주요 타깃인 젊은 주부의 섭외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초조해진 홍보실 여직원은 촬영팀의 권유도 있고, 본인도 맡은 바 임무를 반드시 완수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자기가 신세대 주부 인양 인터뷰를 했다는 보고였다.
그런데 촬영팀 직원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그 흔한 NG 한번 없이 단 번에 인터뷰를 마쳤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여직원은 ‘이 참에 방송계로 진출해 볼까 한다’ 고 농담까지 하며 성취감에 도취된 듯 흡족한 미소를 짓는 것이 아닌가.
며칠 후 오전, 예정대로 그 프로그램이 시작되자 필자는 홍보실 직원들과 함께 TV를 시청했다. 이윽고 여직원의 인터뷰 장면이 나온다. “신세대 주부들의 취향에 딱 들어 맞아서 평소 이 레스토랑을 자주 이용하고 있어요!”
문기환 새턴PR컨설팅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