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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의 FX 칼럼)믿을 것이 없다

이진우 기자I 2001.11.19 11:42:00
[edaily] 13일(화요일) 발표된 S&P의 뜬금없는(?) 국가신용등급 상향조정(BBB에서 BBB+로 2년만에 한 단계 상향조정), 14일(수요일) 공식출범한 뉴라운드, 15일(목요일) 느닷없이 오사마 빈 라덴이 체포됐다는 루머로 출렁거린 국제금융시장... 지난 한 주간 동안 제법 굵직한 뉴스들과 루머들이 시장을 흔들었지만 지구촌에서 가장 안정적인 달러/원 시장 만큼은 미동도 않는군요. 그 지긋함(?)에 새삼 경의를 표하게 됩니다. 광 두어 장에 쌍피까지 그득한 전설의 7각패를 들고서도 피바가지를 쓸 수 있는 게 고스톱이듯이 거래에서도 아무리 수급상황이나 펀더멘털 요인을 파악하고 기술적 분석 등으로 무장되어 있다 하더라도 시장이 자신의 뷰대로 움직여 주지 않으면 방법이 없습니다. 믿을 것 없는 세상에 더더욱 믿을 것 없는 시장에서 앞으로 뭘 보고 거래를 해야 할까요? ◇왜 믿을 것이 없다고 푸념하는가 하면... Standard & Poor"s Ratings Services(S&P)에서 만 2년만에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을 BBB에서 BBB+로 한 단계 상향조정 하였다. IMF 외환위기를 맞았던 1997년 12월 하순에는 "투자 부적격"에 해당하는 B까지 가차없이 후려치던 그들이 한국의 경제사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니 고맙긴 하다. 그러나 그 해 11월 중순까지도 한국의 신용등급을 늠름하게(?) A급으로 분류하여 놓고 아시아 황인종들을 상대로 백인들이 곧 펼칠 한 바탕 돌려차기 전법에 대해서는 언질도 주지 않았던 전과(前科)가 있는 데에다 이번에도 발표 한 달 전부터 외국인들이 미친 듯이 서울의 주식을 사 모은 타이밍으로 보아서나 필자는 13일 그들의 발표를 접하고는 다소 황당하였다. "이것들이 또 짜고 고스톱을 치고 있구나."... 지난 8월 17일 미국 연방항공청(FAA)에서 우리나라를 항공안정 2등급(낙후국) 국가로 판정하였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최근 미국 내 최대 항공사인(그렇다면 세계 최대 아니겠는가?) 아메리칸 에어라인(AA)의 비행기들이 연속으로 대형사고를 쳤다는 사실은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나? World Trade Center를 들이 받았던 두 대의 여객기가 AA 소속이었으며 며칠 전 뉴욕공항을 이륙하자 마자 추락한 비행기도 AA 소유기였다. 목요일 오후들어 갑자기 오사마 빈 라덴의 체포설이 나돌며 국제금융시장이 한 바탕 요동을 쳤다. 뉴욕 타임즈 1면 톱으로 이미 조판이 끝났다는 둥 그럴듯한 루머가 돌며 달러가 강세를 보이고 마이너스를 보이던 나스닥 지수선물이 플러스로 돌아서며 미 국채선물이 폭락하며 국내 채권시장에도 금리 급등세를 부추겼는데, 알고 보니 빈 라덴은 아직도 멀쩡하단다. 미국의 911 테러사건 이후 전개되는 양상들은 보면 볼수록 의아해진다. 정말 빈 라덴이 한 짓이라면 그가 노리는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지, 미국이 연일 폭탄과 미사일을 퍼부어 대는데도 왜 테러를 자행했던 세력들은 하다 못해 미국의 시골 슈퍼마켓에라도 폭탄 하나 못 던지고 출처 불명의 회색가루로 불안감만 조성하는지, 그리고 정녕 미국이 빈 라덴을 못 잡는 것인지 안 잡는 것인지도 갈수록 헷갈리기만 한다. 검찰은 1년 전에 "별 일 아니다."라고 했던 "진승현 게이트"를 재수사 하겠다고 밝히고 국정원은 1987년 홍콩에서 발생한 수지 金이라는 여인의 피살사건을 왜곡·은폐하였음을 실토하고 "유감스럽다."고 한다. "신문에 났더라."며 우기는 사람이 제일 무식하다더니 언론 보도를 믿고 모 게이트를 그냥 젊은 벤처 사업가의 단순사기 정도로 이해했거나 국정원 같은 국가기관은 진실만 얘기한다고 믿는 사람만 바보가 되는 세상이다. 드라마 "허 준"에서 단아하고 청순한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수많은 팬을 확보했던 황모라는 여자 탤런트는 히로뽕으로 장난치다가 잘 나가던 인생에 종을 치고 말았다. 딴에는 머리를 쓴다고 내뱉은 변명이 "최음제인줄 알고 먹었지 마약인줄은 몰랐다."라니 그녀의 외모가 90점 정도라면 지능지수는 5점 정도 되는 것 같다. 이 땅의 청소년들이나 젊은 남자들 입에서 나올 얘기가 짐작이 간다. "세상에 믿을 X 없구나."... 선물거래소는 11월 16일에도 전산장애로 인해 16일(금요일) 12시부터 오후 1시 20분까지 거래를 중단하는 사고를 쳤다. 달러선물이야 금요일 장세로 보아서는 하루 종일 거래가 중단되었다 한들 별다른 항의가 들어 올 일이 없었겠지만 요즘 한참 불 난 호떡집같은 국채선물 같으면 얘기가 다르다. 제 때 환매수나 전매도를 못한 투자자들이 입게 된 손실이 얼마이겠는가? 때가 어느 땐데 요즘도 선물거래 포지션을 잡다가 전산장애로 불의의 손실을 입게 될 경우까지 걱정하며 살아야 한단 말인가? 믿을 놈 없고 믿을 것 없는 세상이다. ◇또 다시 정체상태에 빠진 외환시장은 뭘 보고 거래를 해야 하나? 주식 저거 믿어도 될까? 우선 뉴욕부터 살펴보자. 나스닥이나 다우존스 지수 등은 지난 번 칼럼에서 필자가 지적하였던 의미있는 저항선들(나스닥의 경우 1860, 다우존스의 경우 9780)은 이미 딛고 올라섰다. 9월 11일 발생한 테러사건의 충격을 벗어나는 데에 열흘이 걸렸던 뉴욕의 투자자들은 9월 21일부터 주식상승 랠리(Rally)에 불을 지폈고 특히 11월 들어서는 이렇다 할 조정 한 번 없이 거침없는 상승세를 이어 왔음에 주목해야 한다. 일간 차트(Daily chart)상으로는 단기급등에 따른 조정이 임박했음을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조정(correction)이 큰 낙폭을 보이는 방식이 아니라 차익실현을 하는 세력들은 나름대로 팔고 추격매수에 나서는 세력들은 또 그들대로 열심히 사는 와중에 지수가 보합권에서 옆으로 기는 "기간조정"의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14일 주말 장세에서 장 중 하락폭을 급격히 회복하고 소폭하락(나스닥 -1.99, 다우존스 -5.40포인트 하락)으로 양 지수가 마감한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미국의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급격히 부상하면서 이제 미국 금리도 더 이상 떨어지기보다는 오를 여지만 남았다는 견해가 피력되는 시점에 미 국채가격은 연일 급락세를 보이고 있고(이는 수익률(금리) 급등을 의미함) 채권시장을 빠져 나온 자금들이 증시로 흘러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같은 논리가 여의도에도 적용된다. 종합지수 600을 지지선으로 한 소폭 조정을 거친 뒤 상승세를 이어 갈 공산이 크고 채권시장의 급랭과 함께 주식시장으로 유입될 유동성이 더 풍부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미 살 만큼 사 버린 외국인투자자들에게서 추가적으로 폭발적인 매수세를 기대하긴 어려운 시점이나, 그들의 Global portfolio구성 측면에서 여전히 한국 증시는 매력적인 곳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그들이 갑자기 "Sell Korea"로 돌아서리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다음으로 요즘 한참 위로 쭉쭉 뻗어가는 중인 달러/엔 환율을 믿어도 될까? 엔화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요즘 달러는 웬만한 통화들에 대해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선 간헐적으로 발표되는 경제지표들이 조금씩 호전된 모습을 보이면서 미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고 아프간 전쟁에서도 일부에서 우려하였던 것과는 달리 미국이 중심을 잡아가고 있어 그다지 길게 갈 전쟁이 아닐 수도 있다는 분석에 힘을 입은 결과이다. 미국과 일본을 비교하였을 때 달러/엔이 강세를 보일 것은 자명한 이치인 것 같은데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금 달러/엔은 1달러당 123엔이라는 Critical level에 이르러 추가상승과 하락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중인데 그나마 지금 보는 122엔 후반대 레벨도 일본 관료들의 꾸준한(?) 구두개입이 크게 작용한 결과이다. 기술적으로는 123엔이 조만간 돌파되면 달러/엔 환율은 추가적으로 상승할 여지가 충분해 보이며, 그래서 서울 외환시장참여자 일부는 1050원 아래로 내려선 엔/원 환율을 보아서나 오랫동안 단단한 지지선으로 작용하고 있는 달러/원 환율인 1280원 레벨 가까이 다가왔다는 점에서 달러매수 기회를 엿보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100엔당 1050원이라는 엔/원 레벨에 그다지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IMF 외환위기 이전에는 740원 혹은 780원 정도의 엔/원 환율 하에서도 우리 경제는 그럭저럭 굴러 갔었고, 하다못해 지난 7월 초만 해도 우리는 1025원이라는 엔/원 환율을 이미 보았다. 달러/엔이 125엔을 가고 엔/원이 1025원이 되려면 우리 환율이 1281.25원이 되어야 한다. 이래저래 1280원은 만만치 않은 레벨이다. 그리고 달러/엔에 관해 꼭 덧붙이고 싶은 얘기가 있다. 같은 달러/엔 환율의 상승세라도 그 시기에 따라 다가오는 의미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작년 말 달러가 하루 자고 나면 1~2엔씩 오르고 그에 따라 우리 환율도 10~20원씩 오를 때는 그 시절이 "불안한 시기" 였다. 국내외 증시가 폭락을 거듭하고 한참 불황에 대한 공포감에 시달릴 무렵, 제2의 IMF 운운할 때의 달러/엔 상승과 미국이 좋아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상황에서의 달러/엔 상승은 엄연히 우리 환율에 미치는 영향력에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다음으로 살펴 볼 재료들은 무엇이 있을까? 유가는 의외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OPEC은 감산조치를 통해서라도 유가의 추가하락을 막아 볼 심산인 듯 한데 러시아를 비롯한 비회원국들의 협조가 신통치 않은가 보다. 돌아가는 폼이 각국의 이해가 엇갈리는 가운데에 수 틀리면 가격경쟁으로 서로를 죽이겠다는 생각도 해 볼 수 있는 상황이라 당분간 유가의 급등을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반도체 가격이 최근의 단기급등에 따른 조정양상을 보이고는 있다 하나 바닥은 본 듯 하다. 최근 겁나게 치솟는 삼성전자나 하이닉스의 주가가 이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는데, 반도체로 먹고 사는 나라인 한국으로서는 나쁠 것 없다. 역외의 동향도 관심거리인데, 아직도 달러/엔에 집착하는 세력들로서는 실망스럽겠지만 밤 사이에 달러/엔 환율이 좀 오른다고 해서 예전처럼 역외가 달러/원을 팍팍 땡겨주지 않는다. 필자가 보기에는 역외도 요즘 국채선물 시장의 고민거리인 "표 안나게 잘 털어내기"의 과제에 부닥친 건 아닌지 모르겠다. 결론적으로 오늘도 필자는 당장은 아니라 하더라도 환율의 점진적인 하락추세 쪽으로 전망이 기울고 말았다. 평소 숏이나 롱을 고집하지 않고 뷰가 탄력적인 한 후배가 들려 준 얘기가 새삼스럽다. "저는 도도한 장강(長江)의 흐름을 믿습니다."... 그렇다. 발원지에서 시작하여 먼저 남쪽으로 흐르는 듯 하다가 다시 북쪽으로 방향을 튼 것 같기도 하지만 양쯔강은 결국 동쪽으로 도도히 흘러 동지나해(East China Sea)로 흘러 든다. 지난 4월 4일의 1365.30원을 발원지로 한 江은 남북을 오가다 동쪽으로 한참 긴 몸통을 이어 왔지만 지난 11월 7일을 기점으로 다시 원래의 방향인 동남쪽을 노리고 있는 중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필자의 개인적인 믿음일 뿐, 믿을 것 없는 이 세상에서 독자 여러분들은 이 칼럼의 내용을 너무 믿어서도 아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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