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마디로 벤처캐피탈은 기능적으로 금융업이지만 규제적으로는 금융업이 아닌 것이다. 그 이유는 금융적 속성과 실물경제 연계성을 함께 고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금융업은 금융안정과 투자자보호를 위해 규제를 강하게 하는데 볼커룰은 금융안정 면에서 벤처캐피탈이 사모펀드와 구별된다고 본다. 고레버리지와 단기거래로 변동성에 취약한 헤지펀드나 PEF와 달리 벤처캐피탈은 장기 모험자본의 성격이 짙어 금융규제의 필요성이 약하다.
투자자 보호 면에서도 벤처캐피탈은 기관투자자 중심이라 규제 필요성이 크지 않다. 공정거래법은 금산 분리 규제의 취지로 금융의 사금고화 방지를 들고 있는데 투자자보호와 연관이 있다. 금융의 사금고화란 고객 자금이 오로지 고객의 최선 이익을 위해 운용되지 않고 대주주의 이익을 위해 사용되는 것을 말한다. 전문투자자가 수탁자책임에 따라 투자대상을 선별하고 감시하고 분쟁 시 소송을 통해 투자자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하는 벤처캐피탈은 금융의 사금고화에 취약한 불특정 다수의 예금이나 보험료를 취급하는 금융업과 구별된다. 더구나 상법 개정과 강력한 자본시장 개혁 등에 따른 투자자보호 환경의 개선은 사금고화 논의의 실효성을 약화시키며 금산 분리 규제의 틀을 합리적으로 재조정할 필요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한다.
벤처캐피탈 특수성의 다른 측면은 실물경제 연관성일 것이다. 벤처캐피탈은 사모펀드와 달리 투자대상이 혁신이다. 혁신기업만 투자하도록 돼 있다. 창업부터 회수까지 혁신 사이클 전 단계에 걸쳐 인내 자본이 돼 경제 혁신과 산업 성장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어느 나라도 벤처캐피탈을 금산 분리로 규제해 시장을 왜곡하고 혁신생태계의 역동성을 약화시키려 하지 않는다. 모기업의 연구개발(R&D)을 보완하는 핵심 오픈 이노베이션 수단인 CVC 역시 규제하기보다 장려하고 촉진하는 이유다.
CVC 규제 완화는 조달 등 양적 규제를 완화하는 미세조정보다 규제 필요성 자체에 주목하는 규제혁신 관점에서 검토하기를 바란다. 공정거래법의 금융업 정의는 표준산업분류체계라는 통계적 분류 관점을 따르고 있다. 벤처캐피탈은 여기서 세세분류(기타 금융투자업)에 해당해 금산 분리 규제의 대상이 된 것이다. 금융규제 관점에서 적극적으로 검토해 포함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규제 혁신을 위해서는 법상의 금융업 정의를 금산 분리 규제 목적에 부합하는 은행업, 보험업 등으로 한정해 열거하거나 벤처캐피탈을 명시적으로 제외하는 방법, 또는 현 정의 아래 지주회사 CVC의 소유 및 조달 규제를 완전히 폐지하는 방법이 있다. 이렇게 되면 공정거래법상의 대기업집단 두 유형, 모자기업과 지주회사에 대해 차별적으로 규제하고 있는 CVC 규제의 형평도 해소된다. 현재 모자기업 방식의 대기업집단은 벤처캐피탈을 자유롭게 운영하고 있는 반면 일반지주회사는 벤처캐피탈의 소유와 운영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모자기업 방식보다 단순하고 투명한 소유구조로 전환한 지주회사에 대해 더 강한 규제를 적용하는 것은 유인부합적인 규제와 거리가 있다.
CVC 규제를 혁신하는 대신 경쟁제한 행위규제는 강화해야 할 것이다. 계열사 지분 투자 등 사금고화는 제한해야 할 것이며 전략적 투자자로서 특정 분야의 시장지배력을 경쟁제한 수준으로 강화하거나 벤처생태계 전반의 경쟁을 제한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격히 심사해야 할 것이다. 미국은 일정규모 이상의 벤처투자에 대해 그리고 경쟁회사와 관련 있는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 등에 대해 경쟁제한성을 당국이 심사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두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