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패션에 푹 빠진 한 고등학생의 온라인 커뮤니티였다. 2001년 조만호 대표는 ‘무진장 신발 사진이 많은 곳’(무신사)이라는 이름의 게시판을 만들었다. 스트릿 패션을 좋아하는 이들이 모여 취향을 나누던 그 공간은 점차 입점 브랜드가 늘어나며 소비자와 브랜드를 잇는 쇼핑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커뮤니티에서 출발한 이 실험은 어느새 국내 패션 생태계의 흐름을 바꾸는 산업의 축으로 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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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성장의 배경에는 콘텐츠 중심 전략이 자리한다. 무신사는 후기, 사이즈 추천, 스타일링 팁 등 실용 정보를 커뮤니티 문화에 접목해 온라인 패션 소비의 허들을 낮췄다. 상품 자체보다 ‘입는 방식’을 제안하는 콘텐츠는 소비자 체류시간을 늘렸고, 스타일링 영상과 셀럽 콘텐츠는 SNS를 통해 자연스럽게 확산했다. 고객의 행동 데이터를 누적하고 피드백을 반영하는 과정은 곧 무신사만의 브랜드, 소비자 연결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무신사는 후기와 콘텐츠를 통해 스타일링 실패, 사이즈 고민이라는 이커머스의 구조적 약점을 보완했다”며 “커뮤니티를 정보 기반 큐레이션(선별 추천) 플랫폼으로 전환한 점이 주요했다”고 평가했다.
이 전략은 자연스럽게 신진 브랜드의 성장 기반으로 이어졌다. 커버낫, 디스이즈네버댓 등 감도 높은 브랜드들은 대형 유통망에선 찾기 힘든 스타일과 감성을 무신사에서 구현하며 충성도 높은 팬층을 형성했다. 단순 입점에 그치지 않고, 룩북 촬영과 마케팅, 고객 응대 전략 등 무신사가 함께 수행해온 운영 방식은 브랜드 입장에서 플랫폼 이상의 파트너로 기능했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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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사 스탠다드를 필두로 한 오프라인 사업도 본격화됐다. 현재 전국 28개 매장을 통해 월매출 100억원 이상을 올리고 있고, 지난해에만 10개 넘는 신규 매장이 열렸다. 주요 백화점, 복합몰 입점을 통해 대중 접점을 확장했고, 이는 온라인 중심으로 쌓아온 브랜드 신뢰를 오프라인에서 실현해보는 실험이기도 했다.
편집형 매장 ‘성수@대림창고’는 디자이너 브랜드의 실물 반응을 검증할 수 있는 쇼룸 역할을 하고 있다. 외국인 방문 비중도 절반에 달한다. 올 상반기 무신사의 오프라인 매장 방문객은 1000만명을 넘어섰다.
이 같은 구조는 입점→브랜드 실험→오프라인 검증→자체 성장이라는 선순환을 가능하게 했다. 이는 단순 커머스가 아닌, 패션 브랜드의 성장 경로를 설계하는 인프라에 가까운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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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진출도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 싱가포르, 호주 등 13개국에서 운영 중인 무신사 글로벌 스토어는 지난해 하반기 첫 분기 흑자를 이뤄냈다. 오는 8월부터는 국내외 플랫폼을 연동해 브랜드가 한 번 입점하면 최대 20여 개국 소비자에게 자동 노출되는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다. 판매부터 물류, CS(고객 응대)까지 무신사가 통합 관리하는 구조로, 브랜드 입장에선 해외 진출 장벽을 낮출 수 있다. 특히 이달 말에는 중국 ‘샤오홍슈’를 시작으로 10월까지 ‘티몰’, ‘더우인’ 등 현지 플랫폼에 순차 입점하고, 같은 달 상하이에는 오프라인 편집매장을 연다.
중국, 유럽, 중동 등으로 운영 지역을 확대하는 것도 브랜드 액셀러레이팅 구상의 연장선이다. 특히 중소 디자이너 브랜드가 단독으로 수출망을 개척하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하면, 무신사의 유통 통합 전략은 K패션 생태계의 ‘공용 채널’로 기능할 수 있다. 브랜드 입장에선 감도 높은 이미지를 유지하면서도, 판매 인프라를 통합 위탁하는 방식이다. 무신사는 이를 통해 ‘K패션 수출 플랫폼’으로서 입지를 굳히겠다는 구상이다.
이 교수는 “무신사는 단순히 트렌드를 전하는 쇼핑 플랫폼이 아니라, 브랜드가 시장과 구조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왔다”며 “SPA(제조·유통일괄) 와 명품 사이에서 자리를 잃은 중소 브랜드에 대안을 제시한 유일한 플랫폼”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앞으로 프리미엄 시장을 어떻게 해석하고 안착시키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며 “그 고지를 넘는다면 무신사는 K패션 생태계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확고히 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