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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th WSF]진념 前부총리 "소통만 잘해도 정책비용 10분의1로 줄인다"

이정훈 기자I 2014.05.16 09:24:25

[일문일답]"국민 대통합? 긍정적 방향으로 못가고 있다"
"세월호 사건, 기본 안 지켜진 탓..통일정책 일관성 필요"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5개 부처의 장관과 경제부총리, 대기업 회장, 대학교수 등을 두루 거친 원로답게 진념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인터뷰 내내 한국 사회와 현 정권에 대해 ‘`몸에 좋은 쓴 소리’를 거침없이 쏟아냈다.

지난 13일 동대문구 홍릉에 있는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연구실에서 기자와 만난 진 전 부총리는 우리 사회의 소득계층 간, 세대 간 갈등, 세월호 사건 등을 안타까워 하면서도 법과 원칙, 소통과 신뢰 등 ‘기본’을 바로 세워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정책에 이름을 잘 붙이고 그렇게 만든 정책을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체계만 잘 만든다면 정책비용을 지금보다 10분의 1 수준까지도 낮출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진 전 부총리와의 일문일답.

-최근 한국 사회는 소득과 이념, 세대 등 다양한 갈등 양상이 첨예화되고 있다. 이런 갈등 양상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한국 경제는 지난 1960년대 개발연대 이후 눈부신 발전과 성과를 보여왔고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도 세계에서 가장 잘 극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소득계층 간, 세대 간 갈등은 임계점에 이르고 있다. 게다가 여전한 시대착오적 이념 논쟁이 국론을 분열시키고 경제 효율을 제약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지도층의 도덕적 해이와 정치의 실종은 국민 불신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국민 갈등을 봉합하고 조정해야 할 막중한 책임을 진 정치권은 그런 큰 목표를 위해서 노력하기보다는 오히려 갈등구조를 부각시켜 이익을 추구하려는 자세를 보이고 있어 안타깝다.

-이 같은 갈등이 사회 통합이나 안정적인 경제 성장에 어느 정도 위협 요인이 되고 있다고 보는가.

▲천성산 터널과 밀양 송전탑,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갈등은 정부와 이해당사자들이 소통과 대화를 통해 해결점을 찾지 못하고 극한 대립으로 치닫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이런 마찰과 갈등으로 인해 경제적 손실은 실로 엄청났다. 사실 지난 50년간의 경제 발전과정을 봐도 숱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우리는 위기를 기회로 삼아왔다. 이는 국가를 이끌어가는 리더십과 국민이 다함께 잘 살고 선진경제를 실현하자는 큰 뜻이 하나의 힘으로 모인 결과였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는 ‘나는 옳고 반대편은 틀렸다’는 이분법적 사고만 횡행하다 보니 사회통합 기능이 취약해지고 이것이 사회적 갈등을 부채질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국내외 경제 환경도 만만치 않은 시기인 만큼 어떻게 하면 서로 소통하고 믿고, 힘을 모을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시스템과 정신적 개조가 매우 절실한 시기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당시부터 사회 대통합을 최우선 정책과제로 제시했었다. 그러나 실제 사회 양상은 통합과 소통보다는 분열로 가고 있는 듯하다.

▲2년 전 대선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 모두가 국민 대통합을 제1의 가치로 내걸었다. 많은 국민들이 희망을 가졌지만,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 이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지 않은 듯하다. 정치의 기본인 조정능력이 사라졌다. 우리 정치의 후진성이 경제 발전에 제1의 공적이 되고 있다. 오죽하면 일부 교수나 기업인들은 ‘경제는 정치인이 잠잘 때 성장한다’고 말한다. 오늘날 우리 국회나 정치권의 행태를 보면 희망을 찾아보기 어렵다. 서로 상대방을 인정하고, 같이 소통하고 해결책을 찾는 노력은 거의 없다. 경제 발전과 함께 사회적 자본을 확충해 성장과 상승작용을 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사회적 자본의 핵심은 법과 원칙을 존중하고 서로 소통하고, 신뢰를 쌓는 일이다.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복지 확대와 경제 민주화 조치도 후퇴하고 있는 모양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또 현재 경제 여건하에서 이를 강행해야 한다고 보는지, 아니면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고 보는지.

▲복지 확대 공약은 잘못된 것이다. 복지는 돈 없이 못하는 일이다. 경제적으로 돈을 어떻게 확충할지 보다는 분배부터 고민했다. 복지 공약이 너무 남발됐다. 정치권이 너무 많은 것들을 약속했다. 현실적으로 지켜지기 어려운 약속들이다. 이것이 이제는 어느 정도 정리돼야 한다. 물론 한국은 상대적으로 낮은 복지수준을 ‘중(中) 복지’로 높여야 하지만,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저(低) 부담’을 ‘중 부담’으로 국민 부담을 높여야 한다. 결국 ‘중 복지, 중 국민부담’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다만 이는 5~10년 정도의 계획을 세워야 하는 것이다. 국민부담을 내버려두고 복지 확대만 얘기하다 보니 어려운 것이다. 국민도 추가 복지는 환영하면서 부담을 조금만 높이자고 해도 반발한다. 이래서는 풀어낼 도리가 없다. 이를 정리, 조정하는 일이 필요하다. 관건은 복지 확대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하며, 이에 대한 세련된 정책을 마련하고 국민부담 확대를 고민해야 한다. 어떤 정당이 됐든 ‘우리는 앞으로 복지를 이렇게 높여야 한다. 그러니 이만큼 도와달라’며 진정하고 솔직한 대화를 국민과 해야 한다. 공짜 점심은 없다. 이런 환상만 만든 것은 정치권의 책임이다. 성장과 복지가 서로 선순환하는 과정을 만들기 위해서는 좀 더 세심한 계획, 절도있는 추진, 정부와 국민의 소통이 필수적으로 전제돼야 한다. 또 경제 민주화라는 말 자체는 선거용이라고 본다. 경제용어가 아니다. 경제학 교과서에도 없다. 경제 민주화를 잘 모르는 정치권이 이를 선거용 이슈로 만들어 국민에게 환상만 줬다. 굳이 그 정신을 따지자면, 자유스럽고 책임지는 시장경제를 만들고 공정한 시장규율과 법 적용을 만들고, 부의 세습을 투명하게 하자는 것이다. 대기업 발목 잡아서 중소기업을 살리는 이분법적 접근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물론 대기업도 공정 경쟁을 지키고 중소기업 업태를 존중해줘야 한다. 경제 민주화라는 캐치 프레이즈 자체가 대표적인 경제의 정치화라고 본다.

-다양한 대립과 갈등으로 인해 정책 당국자로서 이해 당사자 간 충돌을 완화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는데 어려움이 클 것 같다. 여러 부처 장관을 거치고 경제 부총리까지 역임하셨는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조언한다면.

▲세계는 글로벌화되고 민주화되고 있다. 상황에 걸맞은 소통의 시스템과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트위터니, 페이스북이니 하는 채널들이 넘쳐나면서 다변화된 사회에서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정책 전달체계(policy delivery)라고 이름 붙였는데, 정책을 세울 때부터 국민에게 이를 어떻게 알리고 소통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주민들에게 기지 건설의 불가피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밀양 송전탑 문제는 저렇게 시끄러웠는데, 인천 송전탑 문제는 비교적 원만하게 해결됐다. 그 차이를 만든 것이 바로 소통이었다. 기초연금은 일종의 수당인데, 수급권을 뜻하는 ‘연금’이라는 용어를 붙여 국민에게 혼동을 줬다. 이런 점에서 정책을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하고 이름을 제대로 붙인다면 정책 비용을 10분의 1 이하로 줄이고도 효율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

-얼마 전 세월호 침몰이라는 끔찍한 사고가 발생했다. 어린 생명들을 잃었다는 아픔도 크지만, 이로 인해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에 금이 가는 어려움도 있었다. 사건의 본질과 문제점을 어떻게 보고 있나.

▲세월호 사건은 우리 사회와 어른들이 통절하게 반성해야할 일이다. 고귀한 생명을 잃은 젊은이들의 죽음 앞에 우리가 무릎을 꿇어야 한다.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일어났고, 수습과정에서 신뢰가 바닥까지 떨어진 것은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기본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고 발생이나 수습과정에서 기본을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선장부터 선원들까지 원칙과 역할만 제대로 지켰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경제규모만 가지고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사회적 자본이 갖춰져야 한다. 원칙과 신뢰가 지켜지기 위해서는 상호 신뢰가 있어야 한다. 법과 원칙을 지키면 내가 손해본다는 인식들이 여전하다. 우리가 이것부터 고쳐나가야 한다.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문화도 바로 잡아야 한다. 사회 규칙과 안전의식 등이 새롭게 확립되는 전기가 마련돼야 한다.

-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으로 최근 남북통일 문제가 새로운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보는가.

▲통일 문제에 있어서는 독일을 배워야 한다. 현재 우리보다 더 큰 경제적 격차를 보이던 동서독이었지만, 흡수통일보다는 동독과 서독의 다름을 인정하고 관계를 우선 복원하는 동방정책을 추진했다. 통신과 사람 왕래, 투자 등 3통(通) 정책이 그렇게 나온 것이다. 특히 동방정책은 사회민주당이 만든 것이지만, 이후 정권을 이어받은 기독민주당도 이를 그대로 유지했다. 이 같은 정책 일관성이 오랜 숙원인 통일 독일을 만들어낸 것이다. 반면 우리는 과거 정권 정책은 모두 뜯어 고친다.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일이 없다. 통일정책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바뀐다. 이런 관행은 하루속히 고쳐야할 퇴행적 정치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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