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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조직적 사법농단' 부정에 檢 수사 제동…성난 여론이 변수

이승현 기자I 2018.12.09 13:00:00

영장판사들 "혐의소명 부족"…양승태 정점 공모관계 전면 부정
증거인멸 및 도주우려 가능성에도 선 그어
''임종헌서 꼬리자르기'' 의혹 현실화 수순 지적도
여당 "특별재판부 설치 추진"…檢, 전방위 수사 가능성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가 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법원이 박병대, 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과 함께 사법정의마저 기각했다’며 특별재판부 설치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법원이 박병대(61)·고영한(63) 전 대법관 구속영장을 기각하며 양승태 사법부의 조직적 범죄라는 논리를 부정함에 따라 정점으로 향하던 검찰 수사에는 일단 제동이 걸렸다. 다만 법원을 향한 비난여론이 폭발하면서 국회의 특별재판부 도입과 법관탄핵 등 검찰 수사 외 정치적 압박이 가해질 가능성도 커졌다.

◇법원 ‘양승태-법원행정처장-실무진’ 공모 부정

지난 7일 서울중앙지법 임민성 영장전담부장판사와 명재권 영장전담부장판사는 전날 박 전 대법관과 고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사유는 두 사람을 구속할 만큼 검찰이 혐의를 소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임 부장판사는 “박 전 대법관의 범죄혐의 중 상당부분에서 피의자의 관여 범위와 그 정도 등 공모관계 성립에 대해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이는 ‘양승태 - 법원행정처장(대법관) - 법원행정처 실무자’ 등 조직 내 상하관계를 통한 공모를 통해 재판거래와 법관사찰 등이 자행됐다는 검찰의 핵심 논리를 부정한 것이다. 두 전직 대법관이 양승태(70) 전 대법원장의 의중을 바탕으로 임종헌(59·구속기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실무진에게 구체적 지시를 내렸다고 판단할 수 없다는 의미다.

검찰로선 두 전직 대법관 구속을 토대로 가장 윗선인 양 전 대법원장으로 향하려는 계획에 차질을 빚게 됐다. 대법원장과 대법관들 등 전직 수뇌부들의 공모관계를 입증할 문건이나 진술 등 새로운 증거를 찾거나 양 전 대법원장이 재판개입 등에 직접 나섰다는 구체적 혐의를 포착하는 보강수사가 불가피해졌다.

검찰은 법원이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검찰 관계자는 “하급자인 임종헌 전 차장이 구속된 상태에서 상급자들인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은 재판의 독립을 훼손한 반헌법적 중범죄들의 전모를 규명하는 것을 막는 것으로서 대단히 부당하다”고 성토했다.

영장판사들은 “증거수집이 광범위하게 됐다”거나 “주거 및 직업, 가족관계 등을 감안하면 구속의 필요성과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도 판단했다. 구속사유인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없다는 것이다.

법원은 “두 전직 대법관이 혐의 내용을 부인하고 일부 하급자들의 진술과 상당히 다른 진술을 해 구속영장이 불가피하다”는 검찰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검찰이 구속영장을 재청구해도 현재로선 발부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인다.

◇임종헌으로 꼬리자르기?…특별재판부·법관탄핵 촉구

법원으로선 ‘꼬리자르기’·‘방탄법원’ 등 비난 후폭풍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법원이 임 전 차장 선에서 사법농단 사건을 마무리하려는 본래 구상을 결국 실현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나오고 있다.

법원은 사법농단 실무 책임자인 임 전 차장에 대해 혐의가 소명된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을 구속기소하면서 28개 혐의는 박 전 대법관과의 공동범행으로, 18개 혐의는 고 전 대법관과의 공동범행으로 각각 적시했다. 그런데도 두 전직 대법관의 공모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번 사건을 주도한 사람은 현재로선 임 전 차장이 되는 셈이다. 두 전직 대법관은 검찰 조사에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거나 “직원들이 알아서 처리했다” 등 하급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진술을 해왔다.

영장기각을 계기로 국회가 구체적 행동에 나설 지 주목된다. 시민단체 모임인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는 이날 오전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영장기각으로 법원은 제 식구 감싸기가 사법적폐 청산보다 더 높은 가치라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줬고 개혁 대상임을 스스로 증명했다”며 “국회는 즉시 특별재판부 설치를 위한 특별법 제정과 사법농단 관련 법관들 탄핵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이해석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두 전직 대법관 영장기각에 대해 “국민 상식에 어긋날 결정”이라며 유감을 표했다. 이 대변인은 “민주당은 사법농단의 진실규명, 책임자 처벌을 위한 특별재판부 설치를 더욱 강력히 추진하고 사법개혁 완수를 위해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이라고 했다.

검찰로서도 비난여론을 등에 업고 전방위 수사에 다시 박차를 가할 수 있다. 검찰은 전직 대법원장과 전직 대법관은 물론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현직 대법관들 조사도 계획하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이 법관 블랙리스트 등의 진상조사를 부실하게 했다는 의혹까지 조사대상으로 검토하고 있다. 검찰은 “누구든지 필요한 경우 적절한 방식으로 조사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이날 오전 전국법원장회의에서 “사법부가 겪고 있는 지금의 아픔은 투명하고 공정한 사법부, 좋은 재판이 중심이 되는 신뢰 받는 사법부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겪어야 하는 성장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에 관여한 의혹을 받는 박병대(왼쪽), 고영한 전 대법관이 7일 오전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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