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범준 기자] “개인회생, 취지는 좋지만 저희 입장에서는 솔직히 부담됩니다. 채무 탕감에 따른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고 이를 악용하는 사례도 많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만난 한 저축은행업계 관계자는 ‘개인회생제도’ 이야기를 꺼내며 하소연했다. 채무를 상환하지 않기 위해 악의적으로 법원에 채무조정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많은데다 실제로 받아들여지는 사례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이다. 특히 ‘채무자회생법’ 개정을 통해 개인회생 변제기간이 종전 5년에서 3년으로 단축되면서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더욱 늘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관계자는 “대형 저축은행들의 개인부실채권률은 5~6% 수준으로 전체 채권 중 비중이 적지만 최근 조금씩 늘고 있다”며 “변제기간이 줄면서 ‘3년만 버티자’며 악용하는 차주들이 더욱 많아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달 대법원이 발간한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전국 법원에 접수된 개인회생 신청은 총 8만1592건이었다. 이 중 4만2270건이 받아들여져 지난해 전국 평균 51.8%의 면책 인용률을 보였다. 특히 서울회생법원의 인용률은 매해 90%를 웃돌았다. 법원은 심사를 통해 10억원 이하의 담보 채무액과 5억원 이하의 신용대출 등 무담보 채무액을 신청자의 기초생활비 및 상환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최소 채무액으로 조정해준다. 경우에 따라 원리금이 많게는 90%까지 감면되기도 한다.
개인회생 절차에 들어가면 채무 면제뿐 아니라 변제기간 동안 채무자의 안정적인 채무이행 및 경제활동 보장을 위해 이자 가산과 추심도 ‘올스톱’ 된다. 이에 따른 금액적 손실과 부담은 고스란히 대출을 해준 금융기관들의 몫으로 돌아온다.
이 과정에서 △개인회생 신청 직전 고의로 소득 또는 자산 가치를 낮춘 채무자 △신청을 염두에 두고 대출을 받아 소비해버린 채무자 △신청 전 높은 신용등급을 이용해 고액 무담보 신용대출을 받은 채무자 △신청 직전 자산을 처분해 현금을 챙긴 채무자 △채권자의 강제집행 혹은 권리행사를 피하기 위해 신청을 반복하는 채무자 등 수많은 악용사례가 발생하기도 한다.
악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저축은행업계를 중심으로 특히 높다. 개인회생 혹은 파산 단계까지 갈 정도면 1금융권(은행)보다 2·3금융권(저축은행, 상호금융 등)을 이용하는 저신용자 등 경제적으로 어려운 서민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 보호와 서민경제 회복이라는 대의(大儀)는 좋지만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만 요구하다 보면 또 다른 문제로 곪을 수 있다. ‘돈’ 앞에서는 채무자뿐 아니라 모두 작아질 수밖에 없는 채권자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