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edaily 정명수특파원] ◇소비세
소득세는 복잡하다. 일단 기업들은 법인세를 낸다. 동시에 배당을 받은 투자자들도 자본이득에 대한 세금을 낸다. 이중과세인 셈이다.
소비세는 간단하다. 벌어들인 것 중에서 저축한 것을 제외한 나머지에 세금을 물리는 것이다.
소비세는 판매단계별로 부가되는 가치에 세금을 부과하는 부과가치세(value-added tax:VAT)의 형태가 있고, 최종 판매 가격에 부과하는 매상세(sales tax)가 있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총수입에서 저축과 투자를 제외한 부분에 대해 세금을 무는 것으로 `consumed income tax`가 되는 것이다.
소비세는 정치적으로 잘 선전하면 상당히 매력적이지만, 잘 못하면 치명적인 오해를 받을 수 있다.
소비세의 철학은 이런 것이다. "소득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불공평하다. 당신은 일해서 번 돈을 저축한다. 나는 일은 하지만, 저축하지 않고 모두 썼다. 그래도 당신과 나의 세금은 같거나 당신이 나보다 더 많은 세금을 내게 돼 있다. 불공평하지 않은가"
반면 소비세(regressive)는 역진성을 피할 수 없다. "연봉 1000만달러인 부자가 2만달러짜리 자동차를 살 때나, 연봉 5만달러인 월급쟁이가 2만달러짜리 자동차를 살 때나 붙는 세금이 같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지난 대선 당시 동시에 실시된 남부 캘리포니아 상원의원 선거에서 공화당의 짐 디민트 의원은 23%의 전국적인 매상세 도입에 찬성했다. 민주당 후보인 이네즈 테넨바움은 "디민트는 조제약에서부터 아이들 분유까지 세금을 물려서 값을 올리는데 동조하고 있다"고 공세를 폈다. 디민트는 결국 낙선했다.
소비세는 정치적으로 양날의 칼이지만, 경제적으로는 이점도 많다. 소비세는 잘 조직될 경우 소득세보다 중립성(neutrality)이 강하다. 이는 세금이 뭐냐는 질문과 연관돼 있다. 세금은 일종의 마찰이다. 지구상에서 모든 물체는 운동을 할 때 마찰을 받게 돼 있다. 투수가 멋진 커브볼을 던질 수 있는 것도 마찰 때문이다. 투수의 손가락과 야구공 표면 사이의 마찰 때문에 야구공의 회전 방향이 달라지고, 공의 진로도 달라진다. 마찬가지로 세금이라는 마찰이 존재하기 때문에 인간의 경제 행위도 약간씩 왜곡된다. 세금이 없으면 경제 행위의 왜곡도 없다. 완전한 중립이다.
소득에 세금을 붙이면 사람들은 일을 할 것인지, 더 많은 여가를 즐길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일한 것에 대한 댓가(임금)에 세금(마찰)이 붙기 때문에 노동에 대해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 투자와 저축에서 발생한 소득에도 세금이 붙는다면 투자와 저축도 마찰을 받게 될 것이다.
이번에는 소비에 세금을 붙였다. 소득에서 저축과 투자를 제외한 부분에 세금을 물리기 때문에 저축에 대한 마찰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소득세에 비해 훨씬 중립성이 강하다는 의미다.
실례를 들어보자. 토마스는 연봉이 1만달러다. 세율은 25%, 금리는 5%, 인플레는 제로라고 가정한다.
소득세의 적용을 받을 때 토마스는 2500달러를 세금으로 낸다. 이제 7500달러를 소비하거나, 저축 또는 투자할 수 있다. 토마스가 저축을 했다고 하자. 첫해 375달러의 이자(7500달러의 5%)를 받았다. 그런데 이 이자에 대해서도 25% 세금, 93.75달러를 내야한다. 세후 순이자는 281.25달러로, 원금과 합치면 7781.25달러가 된다. 실질적으로 1년전보다 3.75% 증가했다. 실세 시장 금리는 5%다. 1년간 소비를 하지 않고 저축을 했는데, 그 댓가로 실세 금리 5%보다 훨씬 적은 3.75%의 이자만 받은 셈이다. 저축할 맛이 나지 않는다.
소비세의 적용을 받으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토마스가 1만달러를 모두 소비하면 2500달러를 세금으로 내야한다. 실질적으로 7500달러의 물건이나, 서비스를 살 수 있다. 토마스는 소비대신 저축을 택했다. 첫해 이자는 500달러(1만달러의 5%)인데, 역시 비과세다. 원리금은 1만500달러가 됐다. 이제 이 돈을 모두 소비한다고 하자. 25%의 소비세율을 적용받아 2625달러를 세금으로 내고 실질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돈은 7875달러가 됐다. 1년전 저축하지 않고 소비했을 때(7500달러)보다 정확하게 5% 소비 능력이 커졌다. 시장 실세 금리 5%를 고스란히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세금 때문에 발생하는 현재와 미래의 소비력 왜곡이 전혀 없다.
소득세의 경우 세금은 첫 해에 2500달러, 두번째 해에 93.75달러로 총 2593.75달러였다. 소비세의 경우 세금은 첫 해에는 제로(0)지만, 두번째 해에는 2625달러였다. 국가 입장에서도 세수가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소비에 세금을 물리는 방식에 대해서 많은 경제학자들이 긍정적이다. 그린스펀 의장도 "소비세는 저축률을 높이고, 자본을 형성하는데 도움을 줌으로써 경제 성장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소비세 도입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동일한 세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우 높은 세율이 불가피하다. 앞서 예에서도 2년간의 세수는 소비세 쪽이 많았지만, 첫해 소비세는 제로였다.
소비세는 저축과 노동에 대해서는 중립성이 강하지만, 소비에 대해서는 중립성이 현저하게 약하다. 다시 말해 소비를 강력하게 억제하는 마찰 요인으로 작용한다. 소득세가 근로를 억제하는 것보다도 훨씬 강하다. 미국 경제의 3분의 2는 소비다. 소비가 과도한 것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소비를 억제해서는 쇼크를 받지 않을 수 없다. 저축과 투자에서 오는 득이 소비 감소를 충분히 상쇄시킨다는 주장도 있지만, 어느 쪽의 임팩트가 큰 지 가늠하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소비세의 역진성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소비세 도입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철학적, 정치적으로 자유주의적 사고를 바탕에 깔고 있다.
"소득은 노동과 자본의 산물이다. 이것은 사회에 일정 부분 기여를 한 것이다. 이처럼 사회에 긍정적인 기여를 한 데 대해 과세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소비는 사회로부터 무엇인가를 가져간 것이다. 소득 혹은 소비 어디에 과세하는 것이 더 형평에 맞는 것인가"
◇부시는 무엇을 노리나
소비세 도입 논쟁도 소셜 시큐리티 논쟁과 비슷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부시는 "세금을 줄이고, 저축과 투자를 늘리는 것이 경제 회생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궁극적으로 부시는 자본 이득에 대해 세금을 물리지 말자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것은 누가 봐도 `가진 자`를 위한 제안이다. 부시의 구호를 따른다면 이미 오너(Owner)인 사람들을 위한 세법이다.
부시의 세제 개혁은 같은 공화당 출신의 레이건 대통령보다도 노골적이다. 1986년 레이건은 세제의 기본 구조는 유지하면서 탈세 구멍을 막고, 세금 유예 조치를 없앰으로써 세율을 낮추는 정책을 구사했다.
반면 부시는 대대적인 세금 감면과 유예 조치로 소비를 한껏 자극해 놓고, 이제와서 저축을 장려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소비세 도입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부시는 소비세를 도입함으로써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이다. `벌어들인 돈(the money people earn)`에 과세하는 것에서 `쓰는 돈(the money they spend)`에 과세하는 것으로 시스템 자체를 바꾸려는 전략이다.
그러나 단일 소비세는 앞서 살펴본대로 정치적 위험 부담이 크다. 워싱턴 정가에서 최근 논의되고 있는 것은 소비세와 소득세를 절충시키는 방안이다. VAT를 도입하고, 동시에 소득세율을 약간 낮추자는 것. 시스템을 혁명적으로, 전격적으로 바꾸지 않고, `세법의 철학`을 바꾸면서 점전직으로 소비세를 도입한다는 전략이다. 철학의 변화는 실체의 변화보다 더 무섭다. 궁극적으로 미국의 세법 시스템은 소비세 체재로 바뀔 수 밖에 없다.
또 다른 전략은 소셜 시큐리티와 연계시키는 것이다. 당초 부시의 초점은 세법이 아니라 소셜 시큐리티에 있었다. 그러나 공화당 의원들은 세법 개정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소셜 시큐리티 문제의 중요한 부분이 세금이기 때문에 세제를 고치면 둘 다 잡을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있다. 정치적으로도 세제 개혁이 더 현실적이다. 세금은 지금 당장 유권자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고, 소셜 시큐리티는 미래 유권자들의 일이다. 공화당은 소셜 시큐리티와 세법을 놓고 민주당과 협상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망한다"
합리적 선택이 파국으로 간다고 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잘못된 것은 없다. 공화당도 민주당도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할 뿐이다. 부시의 감세 정책도 그 순간 최선의 선택이었다. 유권자들이 부시 정책의 허상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했을 때 미국의 재정적자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악화됐다.
사실 부시의 정책은 엉터리다. 세금을 깎아줬지만, 재정지출을 줄이지 않았다.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어떻게 정부 빚을 갚을 것인가. 세금을 더 내는 수 밖에 없다.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누가 이 세금을 내느냐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뉴저지 플레인즈보로에 살고 있는 이보나 안자도는 부시의 감세 정책 덕에 연간 1446달러의 세금을 덜 내고 있다. 그만큼 쓸 돈이 많아진 것이다.
그는 "(재정적자가) 문제는 문제죠. 그렇지만 즉각적인 욕구를 채우지 못하는 것보다는 부채를 지는게 더 낫지 않을까요"라고 말한다. 빚을 좀 지더라도 지금 쓸 것은 쓰겠다는 것.
부시가 소득이 아니라, 소비에 세금을 붙인다고 할 때 이들의 반응은 어떨까.
"모든 사람들이 정직하게 세금을 내는 것은 아니죠. 불법 노동자들은 아예 세금을 내지 않죠. 소비세가 도입되면 이런 사람들도 다 세금을 내야하지 않겠습니까. 옷을 사거나, 약을 살 때 반드시 세금을 내야하니까"
욕구를 줄이느니, 차리리 빚을 지겠다는 생각, 소득세가 더 공평하다는 생각이 부시의 자유주의적 정책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그러나 안자도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고 있다. 불법 노동자들이 세금을 내지 않는 대신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턱없이 싼 임금으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저소득층은 세금을 내지 않는다. 그러나 극소수 부유층은 내야할 세금을 합법적으로 내지 않음으로써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다. 현재의 누진세율 체제하에서도 부자들은 실질적으로 낮은 세율을 적용받고 있다. 임금에는 세금이 꼬박꼬박 붙지만, 배당세와 자본이득세가 낮아지면서 역진성이 나타나고 있는 것.
실제로 미국 최대의 갑부 400명은 실질 연간 소득세율이 18%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부자들은 배당과 자본이득이 부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반면 연봉 10만~20만달러인 사람들의 실질 세율은 20.6%였다.
찰스 로소티 전 IRS 청장은 "IRS가 소득의 원천을 추적하는 능력을 공평하게 사용하고 있지 않다"며 "과세 행정의 수요와 자원이 서로 엇갈린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부자들의 소득원천은 점점 더 찾기 어려운 곳으로 숨어들고 있는데, IRS의 예산과 인력은 월급쟁이들의 소득을 추적하는데 더 많이 쓰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로소티는 "이런 현상이 미국 경제의 가장 중요한 기반을 체계적으로 무너뜨리고 있다"고 실토했다.
안자도처럼 평범한 미국인들은 자신이 공평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전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안자도가 언젠가 그것을 깨닫는 순간, `거대한 분열`은 검은 아가리를 벌리고, 미국 전체를 삼켜버릴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