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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스크리팔 부녀에게 쓰인 신경작용제 ‘노비촉’이 1970~1980년대 러시아가 개발한 화학무기라는 점을 들어 러시아를 배후로 지목하고 영국 땅에서 벌어진, 자칫 대량 인명 피해를 낳았을 수도 있는 살상무기 공격을 강력히 비난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이에 대해 여전히 강력히 부인하며
영국은 자국 땅에서 벌어진 무시무시한 화학무기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영국 주재 러시아 외교관들을 추방했으며 이에 더해 유럽 집단안보체제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협력하는 미국과 유럽연합(EU) 회원국들에 해당국에 주재하는 러시아 외교관들을 추방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독일, 프랑스, 미국 등은 즉각 러시아 외교 인력 추방에 동참했죠.
러시아에 대한 단합된 서방의 대응은 동맹인 영국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이기도 하겠지만 러시아가 자국에서도 이처럼 노골적인 화학무기 공격을 단행할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에 “공격하면 서방 전체가 단합해 보복할 것”이라는 선제적인 경고를 날리기 위한 측면이 더 큽니다.
영국의 동맹국들이 영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러시아 외교관들을 추방하자 러시아 역시 러시아에 들어와 있던 영국 외교관들뿐만 아니라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했던 국가의 러시아 주재 외교관들을 추방하며 보복을 단행했죠.
이중스파이 암살시도를 둘러싸고 서방과 러시아의 외교전쟁이 격화되자 일각에서는 ‘신 냉전시대’가 도래했다는 말까지 나옵니다.
영국과 러시아가 냉전 이후 가장 심각한 수준의 외교전을 치르는 모습입니다만 그렇다고 양국 간 모든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는 것은 아닙니다.
해외 주재 대사관, 영사관이 해당국 정보 수집에 첨병 역할을 하는 점 등으로 미뤄 양국의 상대방 외교 인력 추방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양국의 정보력에 타격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영국과 러시아 간 관련 사업은 계속되고 올여름에 러시아에서 열리는 월드컵에 영국이 참여하는 등 스포츠 교류도 계속됩니다. 어떤 식으로든 대화의 창구와 여지를 남겨놓는 것이 적을 관리하는데 효율적이라는 학습효과 때문이겠죠.
EU 회원국들도 영국의 안보 관련 대응에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1~4명의 소수의 자국 주재 러시아 외교관들을 추방하는 태도를 취했지만 이와 더불어 여전히 자국의 이익을 위해 러시아 활용 기회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프랑스 외무부에 따르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서방과 러시아 간 긴장이 커지는 상황에서도 5월 예정된 러시아 방문을 단행합니다. 장 이브 드리안 프랑스 외무장관은 “영국에서 벌어진 스파이 사건의 러시아 연루 의혹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 대화를 유지하는 것은 중요하다”며 마크롱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 계획을 확인했죠. 마크롱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고 이후 상페테르부르그에서 열리는 경제포럼에도 참여할 예정입니다.
또한 미국으로서는 북한 비핵화라는 문제도 있습니다. 러시아는 북한의 동맹이자, 국경을 맞대고 있으며 중국과 더불어 북한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가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4월말 남북정상회담, 이후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북한 고위 관료가 러시아를 방문해 관련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의견을 구할 것으로 보입니다. 푸틴이 여기서 내놓는 메시지가 향후 한반도 정세, 북핵 문제 향방을 읽는데 중요한 가늠자가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미국은 북핵 해결을 위해서 러시아의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영국발 스파이 암살 시도 사건으로 러시아를 벼랑 끝으로 내몰 정도의 자극은 꺼릴 것으로 보입니다.
러시아 이중첩자 암살 시도, 북핵 문제 등 세계 정세가 바쁘고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한국으로서는 미국과 영국 등 서방과 러시아 간의 갈등이 북한과의 대화와 북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더욱 분주히 외교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