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B전성시대, 유통사 新경쟁력]① 추석 연휴 코스트코 가보니 문 열기 전부터 60여명 긴 줄 행렬 "PB커클랜드 때문에 코스트코 찾죠" PB매출 122조원…5년새 1.7배↑ 코스트코 전체 매출 3분의 1 차지 저가 상품 넘어 간판 브랜드 우뚝
[이데일리 한전진 기자] “코스트코에 오면 고기나 견과류 같은 건 커클랜드 제품부터 봐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좋아 믿고 사는 것도 있어요.”
추석 연휴 전날인 23일 오전 10시 코스트코 양평점. 개점 전부터 남녀노소 60여명이 입구 앞에 줄을 섰다. 문이 열리자 고객들이 매장 안으로 쏟아져 들어갔고, 상당수는 곧장 정육 코너로 향했다. 코스트코 자체브랜드(PB) ‘커클랜드 시그니처’ 간판이 걸린 곳이다. 별다른 할인이 없었는데도 매대 앞은 금세 고객들로 북적였다. 영등포동에서 온 주부 A씨는 “(회원)가입한 지 10년이 넘었는데 한 달에 한 번은 와서 장을 본다”며 “커클랜드 때문에 코스트코를 찾는다”고 했다.
2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코스트코 양평점 개점 전부터 고객들이 입장을 기다리며 줄을 서 있다. 이날 개점 전 대기 인원은 60여명에 달했다. (사진=한전진 기자)
추석을 앞두고 장을 보러 온 양천구 거주 60대 주부 B씨는 커클랜드 미국산 소고기 다짐육(100g당 1399원)과 한우 사태(100g당 2999원)를 카트에 담았다. 삼겹살과 블루베리, 올리브유도 커클랜드로 사러 왔다. 그는 “몇 년 전부터 명절 장은 다른 데 안 가고 코스트코에서 본다”고 했다.
PB가 값싼 대체상품을 넘어 유통사의 간판 브랜드로 진화하고 있다. 1995년 출범한 커클랜드는 제조사브랜드(NB)에 뒤지지 않는 품질을 더 낮은 가격에 제공하는 것을 내세워 성장해왔다. 이날 양평점에서도 정육뿐 아니라 수산·채소·즉석식품 등 매장 곳곳에 커클랜드 간판이 걸려 있었고, 제품 라인업도 식품부터 와인, 의류까지 다양했다. 특정 상품군의 저가 PB가 아니라 유통사 자체를 떠올리게 하는 브랜드 자산으로 자리 잡은 셈이다.
추석 연휴 전날인 23일 서울 영등포구 코스트코 양평점 내부가 장을 보려는 고객들로 붐비고 있다. 매장 곳곳에는 자체브랜드(PB) ‘커클랜드 시그니처’ 간판이 걸려 있다. (사진=한전진 기자)
(그래픽=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몸집도 빠르게 커졌다. 글로벌 코스트코의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커클랜드는 2025회계연도(2024년 9월~2025년 8월) 기준 글로벌 연간 매출 약 900억달러(약 122조원) 규모로, 같은 기간 코스트코 전체 매출 2699억달러(약 365조원)의 3분의 1에 맞먹는다. 520억달러(약 70조원)를 넘었던 2020회계연도보다 5년 새 약 1.7배로 커졌다. 코스트코는 커클랜드가 동급 NB보다 통상 15~20% 저렴하면서 품질은 같거나 더 높은 수준이라고 설명한다.
국내 유통업계에서도 PB의 존재감은 커지고 있다. 같은 창고형 할인점 트레이더스의 PB ‘T스탠다드’는 지난해 매출이 전년보다 22.6% 늘었다. 이달 1~21일 매출도 지난해 추석을 앞둔 같은 기간보다 약 16% 증가했다. 이외에도 롯데마트 ‘오늘좋은’, 쿠팡 ‘곰곰’, 무신사 ‘무신사 스탠다드’ 등 대형마트부터 이커머스, 패션 플랫폼까지 저마다 대표 PB를 앞세우고 있다.
PB 확대에 따른 과제도 있다. PB가 매대를 넓힐수록 기존 NB의 판매 공간과 입지는 좁아진다. PB 생산을 맡는 중소 제조사에는 판로를 얻는 기회인 동시에 특정 유통사의 주문과 판매 전략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다는 부담도 있다. 유통사가 상품 기획과 브랜드, 판매 채널을 주도하는 구조인 만큼 시장이 커질수록 유통사와 제조사 간 협상력의 균형을 어떻게 맞출지도 과제로 꼽힌다.
이종우 남서울대 유통마케팅학과 교수는 “PB 확대는 불황형 소비의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저성장 시대의 구조적 변화”라며 “합리적 소비와 유통사의 PB 경쟁이 맞물리면서 이런 흐름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시장이 커지는 과정에서 중소 제조사의 특정 유통사 의존, 빠른 상품 교체에 따른 부담이 나타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23일 서울 영등포구 코스트코 양평점 정육 코너에서 고객들이 고기를 고르고 있다. 개점 직후부터 정육 매대에는 명절 장을 보려는 고객들이 몰렸다. (사진=한전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