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의료현장에서는 “필수과 의사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필수과 전문의를 배출하더라도 국민이 가장 필요로 하는 분만과 신생아, 간담췌질환 등 고난도 분야에 남지 않는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전국 분만실 15년 만에 절반 이하로 줄어
대표적인 사례가 산부인과다. 전국의 산부인과 의원 수는 2015년 1352개소에서 2025년 1330곳으로 거의 변동이 없었다. 하지만 분만이 가능한 우영기관(조산원 포함)은 2015년 620곳에서 2025년 436곳으로 줄었다.
분만을 하지 않는 산부인과 의원은 대부분 부인과 진료나 난임 시술에 집중하는 의료기관이다. 정부가 필수진료과로 분류하는 산부인과 전문의가 꾸준히 배출되고 있지만 실제 분만을 담당하는 산과 의사는 계속 줄어드는 구조가 굳어진 것이다.
한 산부인과 전문의는 “최근 남성 전공의 대부분은 분만 대신 난임 분야로 가거나 개원을 선택한다”며 “새롭게 산과 의사의 길을 선택하는 사례는 사실상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소아청소년과도 사정은 비슷하다. 어렵게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되더라도 신생아중환자실(NICU)이나 소아응급처럼 야간·휴일 근무가 잦고 의료사고 부담이 큰 분야를 선택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소아심장과 소아비뇨의학, 소아정형외과 등 꼭 필요하지만 업무 강도가 높고 근무 여건이 열악한 세부분과는 지원자 자체가 적을 뿐만 아니라 어렵게 진입한 전문의들마저 세부전공을 포기하거나 개원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실제 대한소아심장학회는 현재 추세가 이어질 경우 소아심장외과 전문의는 2023년 33명에서 2035년 17명으로 절반 가까이(48.5%) 줄고, 소아심장내과 전문의도 같은 기간 129명에서 94명으로 27.1%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에는 소아심장외과 신규 세부전문의가 배출되지 않는 해도 나오면서 후속 인력 단절 우려가 커지고 있다.
소아외과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다. 대한소아외과학회에 따르면 현재 활동 중인 소아외과 전문의는 44명 수준이며, 현재와 같은 추세가 이어질 경우 2030년에는 34명 안팎으로 약 22.7%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상당수 병원에서는 전문의 한 명이 진료와 수술, 응급호출을 모두 맡고 있다.
2014년 약 60명의 전문의가 참여해 설립된 대한소아정형외과학회는 지난해 기준 회원 수가 약 180명으로 3배 늘었다. 하지만 학술대회 참석자는 20여 명에 그친다. 소아정형외과를 선택했다가도 세부전공을 포기하거나 다른 진료 분야로 이동한 전문의가 많다는 의미다.
|
상대적으로 지원자가 많은 내과도 예외가 아니다. 소화기내과는 지원자는 적지 않지만 간암과 담도암, 췌장암 등 중증질환을 담당하는 간담췌 분야는 상급종합병원에서도 전문의가 1~2명뿐인 곳이 적지 않다.
소화기내과 전문의가 인기 많은 이유는 개원하거나 검진센터에서 내시경 검사 중심으로 일하면 비교적 안정적인 근무와 수입을 기대할 수 있어서다. 중증환자의 상태가 갑자기 악화할 수 있어 야간과 휴일에도 병원을 떠나기 어려운 간담췌 분야는 대부분 기피한다.
간암 치료를 담당하는 성필수 서울성모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지역 환자, 특히 전라도 지역 간암 환자가 늘었다”며 “전라도 내 대학병원에서 간암을 진료하는 교수가 1~2명뿐이라 모든 환자를 담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현상은 다른 초소형 필수 분야에서도 나타난다. 두경부암 수술을 담당하는 두경부외과 역시 향후 10년 안에 현재 활동 전문의의 약 25%가 은퇴할 것으로 전망된다. 학회는 신규 인력 유입이 충분하지 않아 은퇴 인력을 제때 대체하지 못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마취통증의학과 내에서도 마취 전공 대신 통증을 선택하는 전문의 비율은 꾸준히 늘고 있다. 대한마취통증의학회 관계자는 “최근 5년간 마취통증의학과 개원은 매년 4~7% 증가 추세”라며 “10년 전보다 개원 수가 70% 이상 증가했다. 상당수가 통증클리닉 중심 개원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정 분야의 인력 부족은 남은 사람의 당직 증가로 이어진다. 당직이 늘면 휴식과 교육 시간이 사라진다. 인력이 부족할수록 의료사고 위험도 커진다.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은 의료진 개인에게 집중하는 악순환의 연속이 되는 점이 큰 문제다.
한 대형병원 분만 담당 산부인과 의사는 “주당 100시간 가까이 일하면서 급여의 상당 부분을 아이를 돌봐줄 사람을 구하는 데 사용했다”며 “내가 이렇게 사는 모습을 본 후배에게 같은 길을 권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의료계 “의료행위·근무기관 기준으로 지원해야”
정부가 지역의사제 등을 통해 의사를 공급하더라도 이들이 지역에서 어떤 분야를 맡을지, 수련 이후에도 대학병원과 필수의료 현장에 남도록 할지는 별도의 문제다. 지역에 배치된 의사가 분만이나 신생아, 간담췌 분야가 아닌 일반 외래나 수익성이 높은 진료로 이동한다면 숫자는 늘어도 중증환자의 치료 공백은 그대로 남아서다.
의료계는 필수과 전공의 정원을 채우는 정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실제 의료행위와 근무기관을 기준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분만실과 NICU, 중증 간질환 등 국가가 반드시 유지해야 하는 분야에는 충분한 팀을 구성할 수 있도록 인건비와 당직비, 교육비를 직접 지원하고 수가 인상분이 해당 의료진의 처우 개선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력이 극히 적은 분야는 모든 병원에 한두 명씩 흩어놓기보다 권역별 거점으로 집중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한 병원에 전문의 한 명을 배치하면 진료과 명칭은 유지할 수 있지만 야간·휴일 진료와 휴가, 후배 교육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반면 한 권역에 네다섯 명이 팀을 이루면 당직을 나누고 한 사람이 환자를 이송하거나 자리를 비워도 진료를 이어갈 수 있다.
이윤석 서울성모병원 외과 교수는 “결국 필수의료 위기를 극복하려면 분만과 신생아, 간담췌, 소아중증처럼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분야에 누가 남아 환자를 보고 다음 세대를 길러낼 것인지가 관건”이라며 “사람을 채우는 정책보다 사람이 남는 정책으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의사는 늘어도 환자가 필요로 하는 필수의료는 계속 비어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