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노희준 기자] 검찰이 수사 중인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의 핵심은 결국 청와대 ‘윗선’의 관여 여부와 적법성 여부다. 환경부 산하기관 인사에 청와대의 개입이 있었는지, 있었다면 정당한 인사 협의 차원이었는지 아니면 직권남용이었는지에 따라 사태의 파장이 결정될 전망이다.
최근까지 정황을 보면 환경부 산하기관 인사에 청와대 관여 자체가 없었다고 보긴 어려운 실정이다. 검찰이 환경부 관계자들로부터 블랙리스트 문건과 관련해 청와대 인사수석실의 지시를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압수수색 과정에서 관련 내용이 담긴 문건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볼 것이냐다.
청와대는 산하기관에 대한 일상적 관리감독 차원의 정상적인 업무 일환이라는 입장이다. 논란이 되는 리스트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배제와 사퇴를 위한 이전 정부의 ‘블랙리스트’와는 성격이 다른 단순한 점검을 위한 ‘체크리스트’라는 것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지난달 20일 “청와대 인사수석실이 하는 일은 환경부를 비롯한 부처가 하는 공공기관의 인사 방향에 대해 보고를 받고 협의하는 것”이라며 “공공기관 기관장 등에 대한 임명권자가 대통령이기에 인사수석실이 장관의 임명권 행사가 적절하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일상적으로 감독하는 것은 너무도 정상적인 업무절차”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산하기관 임원들의 사퇴 동향 파악에 그치지 않고 표적 감사 등을 통한 사퇴 압박이나 종용에 나섰다면 직권남용 혐의가 성립할 수 있다는 견해가 나온다.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가 없는 일을 행하게 하거나 다른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범죄다. 징역 5년까지 처할 수 있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박근혜 정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처벌한 것이 현 정부에 자승자박이 되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 1급 공무원(실장) 3명에게 사직을 강요한 혐의(직권남용, 강요)로 재판에 넘겨진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사건의 항소심 재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는 국가공무원법상 공무원의 신분 보장 대상에서 제외된 1급 공무원이라 할지라도 이유 없이 면직시킬 수는 없다고 봤다. 이는 1심이 김 전 실장에게 직권남용과 강요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판결을 뒤집는 근거였다. 당시 1심은 “1급 공무원 임면에 관해서는 임용권자인 대통령에게 광범위한 재량권이 부여돼 있다”며 “사직을 요구해 면직한 것이 1급 공무원에 대한 임면권 행사에서 재량권을 일탈해 직무권한을 불법하게 행사한 것으로 보기 부족하다”고 봤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1급 공무원을 직권면직함에도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처분의 근거를 갖춰야 한다”며 “근거 없이 임용권자의 자의에 따라 1급 공무원을 그 의사에 반해 면직할 수 있다고 해석하는 것은 헌법에서 보장하는 직업공무원 제도를 형해화 해 채택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청와대가 친정부 인사를 앉히기 위해 합리적 근거 없이 자의적으로 사직서 제출을 요구하는 등 사퇴 종용을 했는지, 이를 위해 표적 감사 등을 실제 활용했는지 등을 검찰이 어떻게 입증하느냐에 따라 수사 성패가 달려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