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강종구기자] 7월 소비자물가는 한마디로 `서프라이즈` 그 자체였다. 두 차례에 걸친 물폭탄과 같은 긴 장마로 인해 채소 등 농산물 값이 크게 올랐을 것이고, 그로 인해 소비자물가도 높은 상승률을 기록할 것이란 상식(?)을 완전히 비껴갔다.
더구나 7~8월은 전통적으로 물가가 오르는 계절이었다. 2002~2005년의 통계를 보면 전달과 비교한 소비자 물가는 연초에 크게 올랐다가 2분기에는 매우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다 7월부터 9월까지 다시 큰 폭의 상승률을 기록해 왔다.
이처럼 여름에 물가가 오르는 것은 7월이후 장마가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특히 8월부터 9월까지는 태풍이 출하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계절적인 특성이 강해 주로 농산물, 그중에서도 과실이나 채소 등 신선식품의 물가가 급등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는 최악의 장마에도 불구하고 전체 농산물은 물론 신선식품들까지도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안정세를 보였다. 농산물은 과거 5년간 7월에 전월비 5~6% 정도 평균적으로 올랐는데, 올해는 오히려 예년보다 훨씬 심한 장마에도 불구하고 떨어졌다.
유일하게 오른 채소도 고작 전월비 0.5% 상승했다. 작황이 매우 좋았던 작년 14%나 재작년 16%는 물론이고 과거 5년간의 평균 상승률 8.6%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안정세다.
고작 전년동월대비 2.3%에 상승한 7월 소비자물가 지수는 그걸로 `게임 끝`이었고, 채권시장은 그 반대로 새로운 게임의 시작이었다.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여전히 압도적이었던 8월 콜금리 인상 기대가 삽시간에 짙은 안개속 국면으로 바뀌었다.
정부와 여당과, 각종 단체와 민간연구소에서 조차 "더 이상의 금리인상은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제조업과 서비스업 등의 각종 경제지표가 일제히 둔화 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8월 금리인상 가능성을 높게 치던 채권시장이었다.
그러나 이데일리가 최근 실시한 두 차례의 콜금리 폴의 결과가 보여주듯이, 사실상 8월 금리인상을 기정사실화했던 채권시장의 심리는 소비자물가가 발표되면서 급변했다. "앞으로는 매달 물가가 오를 것"이라던 이성태 총재의 말이 거짓으로 드러났으며, 경기도 가라앉는 마당에 금리인상의 가장 큰 명분인 물가상승 기대도 낮다는 견해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사실 채권시장이 8월 금리인상 가능성을 높게 봤던 가장 큰 이유는, 경기가 좋다고 생각해서도 아니고, 물가가 위험하다는 판단 때문도 아니었다. 그동안 이성태 총재가 했던 발언들이 상당히 `매파적`이라고 받아들였고, 이는 곧 8월 인상을 시사한 것으로 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외부에서 금리동결에 대한 압박이 그 어느때보다도 심하고, 경기 하강 신호가 출현했다고 보기 어려운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경기하강을 넘어, 경기침체까지 우려하는 상황. 미국 등 세계경기도 하반기엔 둔화될 것이라고 하고, 유가는 배럴당 70달러를 넘어서고, 중동에선 이스라엘과 이슬람권이 한 판 붙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등 커다란 경제하방 위험이 곳곳에 널려 있는 상황에서 물가마저 오르지 않으니 "이제는 한은도 물러날 수 밖에 없을 것"이란 기대가 커졌다.
(주) 한국은행이 8월 금리인상을 시사했다고 볼 수 있는지 여부는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글은 8월 통화정책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니라 7월 소비자물가에 대한 한국은행의 입장을 중심으로 하고 있음을 밝혀 둡니다. 콜금리 정책과 관련해서는 추후에 다시 견해를 밝힐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 7월 채소값은 정말 오르지 않았나
소비자물가가 발표된 직후 한국은행 한 관계자는 "상승률이 2.3%밖에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며 "전반적으로 가격이 안정된 추세라 농산물 가격을 그렇게 높게 보지 않았지만, 기상의 특수성으로 어느정도 오를 걸로 봤는데 너무 안올랐다"고 혀를 내둘렀다.
사실 비록 발표는 하지 않지만 한국은행 내부적으로는 매달 소비자물가에 대해서도 예상을 해오고 있다. 정확한 수치를 언급하지는 않지만 7월의 경우 2.6% 정도의 상승률을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데일리폴 결과였던 2.7%와 비슷한 수준이다.
물가상승률을 낮춘 농산물 가격의 상승 실패(?)의 이유를 어디서 찾아야 할까. 크게 보면 세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지난해부터 이어져 온 작황호조이고, 둘째는 물가조사 시점이다. 마지막으로는 휴가철의 지연효과가 있다.
그중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지난해 물가를 사상 최저로 끌어내린 일등공신인 농산물 작황호조다. 비도 별로 오지 않고, 태풍에서도 자유로왔던 매우 좋은 기상여건으로 과실과 채소뿐만 아니라 축산물과 곡물 등의 작황이 모두 좋았고, 이로 인한 영향은 7월 중순까지 이어졌다는 것이 한은의 관측이다.
특히 올해 채소와 과실류의 작황이 좋았다고 한다. 여기에 작년 하반기부터 쌀시장이 개방되면서 미국 쌀이 수입돼 쌀값도 올해 5월까지 매달 떨어졌다.
다음은 조사시점. 통계청은 다른 품목과 달리 농산물 가격에 대해서는 한달에 3차례 가격조사를 하는데 조사했던 시점이 가격이 낮았을 때라는 것이다. 5일과 14일, 23일이 낀 주에 하루씩 조사를 하는데, 집중호우가 제헌절인 17일을 전후해 시작됐기 때문에 월초와 월중순 조사시점에는 출하도 많았고 가격이 낮았다.
한은 다른 관계자는 "집중호우때문에 가격이 급등했다가 비가 잦아들면서 출하가 다시 늘었다"며 "실제 하순 가격은 농수산물 유통가격을 조사해 보면 상당히 올랐다"고 말했다. 결국 세번째 조사에서는 고점은 아니어도 가격이 상당히 오른 수준에서 조사가 됐지만 평균을 내보니 상승률이 낮게 나왔다는 것이다.
장마가 길어지면서 7월 해수욕장들이 헛장사를 했던 것도 물가가 오르지 않은 이유다. 음식숙박업, 여행업, 항공서비스업 등을 주로 매년 7월부터 가격을 올린다. 이때부터 휴가철이 시작되면서 수요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는 오르지 않았다.
한은 관계자는 "개인서비스 요금이 7월에 보통 전월비 0.2~0.4% 오른다"며 "그런데 올해는 장마때문에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0.1%밖에 오르지 못했다"고 말했다.
◇ 7월 하락은 8월 급등 예고편인가
한국은행이 채소값을 보고 금리를 조절하지는 않겠지만, 7월 물가에 대한 충격이 컸으니 8월을 짚어보자. 결론적으로 "못 올랐던 것까지 오를 것"이라는 게 한은의 예상이다.
물가조사가 끝나고 월말부터 두번째 집중호우가 다시 이어졌다. 한은이 내부적으로 조사해 보니 이렇게 한달동안 내린 비가 전국 평균 600mm에 달한다고 한다. 사상 유례가 없는 말그대로 `물폭탄`이었던 셈. 그로 인해 강원도와 중부지역에 상당한 피해가 속출했음은 주지의 사실. 작황이 온전할리 만무하다.
8월은 농산물가격이 연중 가장 치솟는 달이고 그로 인해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매우 높다. 과거 5년 평균 소비자물가의 8월 상승률은 전월비 0.6%에 달하고, 신선채소의 경우 17%나 급등한다. 바로 태풍 때문이다. 8월 농산물값 예측의 가장 큰 변수로 지금으로서는 예측불허다.
한은 관계자는 "태풍 영향이 통상적인 수준이라고 가정을 한다면 7월에 강우량이 많았던 영향이 8월에 이연돼서 나타날 것이고 그로 인해 8월 물가는 예년보다 높을 수 있다"며 "이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의 판단을 들어보면, 실제 여름철 농산물 생산지역인 강원도 고랭지 채소 등의 피해가 막심해 공급이 부족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작년부터 좋았던 작황호조로 물가가 낮았던 영향이 7월 중순까지 이어졌지만 두 차례에 걸친 사상 유례없는 집중호우가 상황을 반전시키는 영향을 한 것 같다"며 "새로 재배해 출하가 되기 까지는 시차가 있기 때문에 7월 하순부터 시작된 가격상승 효과가 8월과 그 이후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절묘하게도 수입개방 영향을 크게 받던 쌀값도 상승세로 돌아섰다. 6월부터 시작해 두달 연속 상승했다. 농산물중 비중이 상당하고 가격대비 소비탄력성이 낮은 것이 쌀임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 한은 관계자 말이 "미국쌀을 사서 먹어 보니 맛이 없더라는 시장의 기대가 반영되면서 쌀값이 올랐다. 수입개방에 따른 효과는 거의 반영됐다고 본다"고 말했다.
◇ 기업 가격결정 능력이 살아나고 있다
한은이 물가에 긴장하는 진정한 이유는 경기회복과 함께 그동안 잠재해 있던 수요측 상승압력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하늘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유가와 기타 원자재값 급등을 생산성 향상과 채산성 악화로 흡수하던 기업들의 가격전가가 시작됐다는 게 한은의 판단이다.
한은에 따르면 기업의 가격결정력 회복은 경기회복이 시작된 지난해 2분기 직후부터 시작됐다. 묘하게도 물가상승률이 급속도로 낮아지는 때이기도 하다. 전체적으로는 물가가 안정적인 환경에 들어섰지만 중앙은행이 가장 무서워 하는 수요측 압력이 현재화되고 있었던 셈이다.
또 기업들이 가격을 올리지 못했던 큰 이유중 하나가 저가 중국산 소비재 수입 급증으로 인한 이른바 `미꾸라지 물가`라고 보면, 그 효과가 약해지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의심을 해 볼만한 일이기도 하다.
1993년부터 2001년까지 비용상승의 가격전가율은 평균 107%에 달한다. 그런데 그 이후 작년까지는 고작 81%다. 특히 2004년 2분기까지 비용상승기는 유례없이 길었다. 1년이나 반년이면 끝나던 것이 2년반을 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격전가율은 고작 70%에 그쳤다.
그러나 물가가 안정되면서 가격전가율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100%를 훌쩍 넘어섰고, 올들어서도 지속적인 가격인상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게 한은의 관측 결과다.
한국은행에서 물가분석을 주로 담당하는 문소상 박사는 "공산물 가격이 2004년 이후 하락하다가 지난해말부터 상승세로 돌아서, 확대 추세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며 "소비가 살아나면서 그동안 올리지 못했던 것들을 전가할 유인은 충분하다고 본다. 결국 물가지수에도 반영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시장 전문가들의 의심과 달리 최근의 소비회복이 일시적이 아니라는게 한은의 판단이고 보면, 기업의 가격전가가 향후에도 상당기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는 것이 당연하다.
문 박사는 "기업활동을 영속적으로 하려면 최소한 손해는 보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2003년 이후로 3년간 원자재가격 뛴 것을 보면 상당한 압박이 있었을 것이고, 최근에는 채산성 악화가 심각하다는 말도 들린다"며 "과거처럼 만큼은 힘들겠지만 분명히 가격전가 기회를 모색하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박광민 한은 물가분석팀장은 이제부터 본격적인 가격전가가 시작된다고 예상했다. "작년 하반기부터 경기가 살아났다고 볼 때, 수요측 물가상승 압력이 현재화되는 것은 대략 1년의 시차를 갖는다. 올해 하반기부터 경기를 고려한 가격전가가 슬슬 나타나기 시작할 것"이란다.
가격전가를 그동안 못했다가 이제 막 하려고 하는 물가라면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공공요금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올해 하반기 상당폭의 인상을 예상하고 있고, 정부도 인상의 불가피성을 숨기지 않고 있다.
박 팀장은 "공공요금은 정부가 언제 얼마나 반영할 것이냐의 문제가 남아 있지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정부의 의사표현도 있었고,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 인상이 이루어질 것으로 본다"며 "공공요금은 다른 물가보다 높은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보며 당초 계획대로만 인상이 이루어지면 한은 전망이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인상이 일시에 몰리는 경우"라고 말했다.
평균 2년 주기로 조정된 교통요금의 최근 인상시기는 2004년 하반기였다. 지방자치단체들도 지난 5월 선거 때문에 인상시기가 미루어져 하반기에 몰리게 됐다. 이밖에도 원가보전도 못해 올라야 한다는 공공요금은 줄줄이다. 공공요금은 아니지만 담배값 추가 인상 시점으로 한국은행이 잡아 놓은 때도 4분기다.
◇ 수요측 상승 압력을 반영하는 물가들의 요즘 흐름은?
헤드라인 소비자물가는 예상을 빗나갔지만 수요측 요인을 보다 더 잘 반영하는 근원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한은이 2.2%를 딱 맞췄다. 수요요인으로 인한 물가상승은 한은이 예상한 경로를 밟아가고 있다는 것. 박 팀장은 "수요요인에 의한 전망은 별 차이가 없을 것 같다. 앞으로 급속한 경기 급변동이 없는 한 기업의 가격인상 페이스는 유지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말마따나 수요측 압력을 잘 나타내주는 품목들은 전체적으로 물가가 오르고 있다. 근원 소비자물가는 최근 몇달새 고개를 바짝 들었다. 공공요금이야 정부당국의 의지에 의해 인상이 좌우되지만, 개인서비스 물가는 지난해 까지의 낮은 수준을 완전히 벗어났다.
석유류제품은 그렇다 치고 다른 공산품들도 2%대 소비자물가와는 차원이 다른 상승률 수준을 가리키고 있다. 특히 개인서비스와 석유류제품을 제외한 기타 공산품의 경우 원재료 부담과 인건비를 가격에 얼마나 반영하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품목에 속해 한은으로서는 의미가 적지 않다.
주목해야 할 것중 하나가 집세다. 주지하다시피 1만여가구를 대상으로 조사시점에 실제 부담하고 있는 집세를 대상으로 하는 통계청의 집세 통계는 현실의 거래와는 상당한 괴리를 보인다.
극단적으로 1만여가구중 그달에 전세계약을 한 가구가 없으면 전세값은 전혀 오르지 않은 것이 된다. 실제로 전세 거래가격을 바탕으로 하는 국민은행의 전세가격과 통계청의 집세는 완전히 다른 흐름을 나타낸다. 전세계약을 2년만에 하기 때문일까, 통계청의 전세가격은 국민은행 전세가격의 24개월 이동평균과 엇비슷해 상당히 후행하는 모습이다.
국민은행의 전세 거래가격은 주택가격에 7개월 정도 후행하며 이미 지난해부터 완연한 상승세를 보여왔다. 그러나 통계청의 집세는 2004~2005년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고 결과적으로 물가상승률을 낮추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그랬던 통계청 집세도 올해부터 상승세로 돌아섰다. 물가상승에 기여하거나 최소한 까먹지는 않는다는 것. 특히 2년 내내 마이너스를 보였던 월세가 상승반전 했다.
한은 관계자는 "통계청이 집계한 월세는 주택에 대한 것이기는하지만 개인서비스 등의 부문에서의 월세도 비슷하게 가지 않겠나. 그렇게 되면 장사가 되니까 월세를 올린다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며 "월세의 상승반전은 중요한 전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