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전설'' 조차 푸. 르. 다.

조선일보 기자I 2009.06.11 12:00:00

전남 담양 금성산성

[조선일보 제공] 옛날 옛적 축대 하나를 쌓아 올리라는 명을 받은 어린 형제는 작업을 마치지 못하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규칙 때문에 쉴 새 없이 일했다. 주변에서 쉬라고 권하는데도 축대를 완성하지 못하면 늙은 부모에게 그 일이 맡겨질 것을 걱정하며 천신만고 끝에 작업을 마친다. 그러나 너무나 지친 형제는 축대가 완성되는 순간 쓰러졌고 결국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견고해서 아름다운 전남 담양 금성산성을 쌓기 위한 '아픈 사연'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핏빛 역사'로 이어진다. 단단한 산성에서 1894년 동학군과 관군의 혈전이 벌어졌고 동학군 수령 전봉준은 부하의 배신으로 잡혀갔으며 한국전쟁 때는 빨치산들의 거점으로 여러 차례 불길에 휩싸였다(담양 답사여행 안내서 '푸르름을 보려거든 담양으로 오라' 중).
 

경이로운 풍경 속엔 종종 슬픈 이야기가 숨어 있다. 금성산성(金城山城)이 그렇다. 산성의 남문(南門) 격인 충용문(忠勇門)에서 바라본 성곽 끄트머리 보국문(輔國門)은 아가씨 손바닥같이 맨드르르하고 도도한 돌벽을 짙은 녹음 위로 단정히 치켜들고 눈길을 유혹한다. 미끈한 호리병처럼 보인다. 붓으로 내쳐 그린 듯한 겹겹의 산과 둥둥 흐르는 흰 구름, 묵직한 물이 고인 담양호의 구불구불한 테두리가 배경을 꽉 채우면 그림 하나가 완성된다. 어쩌면 그 처절한 얘기들은 산성의 아름다움을 역설적으로 더 돋보이게 하는지도 모른다.

아름답기는 해도, '담양 하면 대나무'라는 명성이 높아 금성산성까지 굳이 찾아오는 이들이 그다지 많지는 않았다. 그러나 방송 중인 MBC 드라마 '선덕여왕' 1·2회의 공개 화백회의 장면이 금성산성에서 촬영됐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물어물어 찾아오는 이들이 늘고 있단다. 화려한 배우들의 의상과 최적화한 조명으로 치장한 HD(고화질)TV 속 금성산성이 원색적 유화(油畵) 같았다면 6월 초 찾아가본 산성은 색 적게 쓴 담채화처럼 잔잔하다.

한강 남쪽에서 유일하게 남한산성에 비길 만한 큰 규모를 자랑하는 금성산성은 둘레가 6486m. 정확히 언제 만들어졌는지 전해지진 않지만 고려 시대 역사 책인 '고려사절요'에 '고종 43년(1256년) 몽골군이 담양에 주둔했다'는 기록이 전하는 것으로 보아 이전에 산성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짐작할 따름이다.

아픈 역사에 입을 다문 듯, 수도권 산성 주변이 식당으로 붐비는 것과 달리 금성산성 주변은 썰렁하리만큼 조용하다. 산성 옆에 으레 있어야 할 듯한 백숙 집 하나 없다. 나쁘게 말하면 허전하고 좋게 말하면 고즈넉한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쉽게 자신의 '멋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비교적 용이하지 않은 접근성이 한몫했다.

차로 진입할 수 있는 부분은 금성산 입구 주차장까지다. 주차장에서 보국문까지 닿는 데는 내리 오르막을 40분 정도 걸어야 한다. 그늘도 별로 없어 충용문에 닿을 즈음이면 땀으로 셔츠가 흠뻑 젖는다.

보국문 아래를 지나 3분 정도 걸으면 금성산성 안내 지도와 충용문이 나온다. 숨 고르며 '호리병 산성'의 자태를 카메라에 담기 좋은 '1차 포인트'다. 그런대로 괜찮긴 한데 약간 납작해 보이는 게 조금 답답해 땀이 식어갈 때쯤 조금 더 올라가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충용문에서 약 30분 정도 걸리는 철마봉에서 산성은 '궁극의 몸매'를 드러낸다. 거리로는 약 1.4㎞로 엄청 멀진 않지만 이전 길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굴곡이 험해 다리가 뻐근해 온다. 팔 뻗으면 닿을 정도로, 성곽을 바로 옆에 두고 능선을 따라 걷는 길엔 그늘이 없어 얼굴이 따갑다. 인간의 '땀'에 산성은 장쾌한 풍경으로 화답한다. 철마봉으로 한 걸음 다가갈 때마다 성곽과 담양호의 곡선은 한결 선명해진다.

철마봉에 오른 후 발길은 세 가지로 갈린다. 온 길을 다시 내려가거나, 성곽을 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돌거나, 성곽 따라 조금 더 걷다 중간에 가로질러 내려오는 중에 선택할 수 있다. 왔던 길 돌아가긴 어쩐지 시시하고 경사 심한 긴 성곽 한 바퀴 돌기는 웬만한 근력으론 버겁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철마봉에서 서문까지 갔다가 보국사 터 지나 내려오는 '제3의 길'을 선택한다.

철마봉부터는 성곽에서 약간 떨어져 걷는 시원한 숲 속 그늘 길이다. 온갖 새와 곤충들이 찌르르 꽥꽥 쪼이쪼이 하면서 수천 개 '자연 스피커'로 사람 발길 드문 산길을 수놓는다. 서문 지나 조금 더 걷다 보면 계곡이 나온다. 계곡 지나 오른쪽으로 난, 좁지만 잘 닦인 흙길을 따라 20분 정도 걸으면 보국사 터에 닿는다. 지금은 텅 빈 폐허뿐인 휑한 '터'를 지나 20분 정도 더 걸으면 다시 충용문이다.

풍경과 역사와 현재를 아울러 보듬어주는 건 시간을 끌어안고 언제 그랬냐는 듯 무성하게 자라난 나무들이다. 보국사 터에서 충용문으로 이어지는 보드라운 숲 길 주변엔 가까운 두 나무가 합쳐져 한 나무가 된 '연리목' 십여 그루가 줄지어 서 있었다. 연리목은 보통 같은 종이 합쳐지기 마련인데 이 산성의 숲에선 미끈한 피부의 팽나무와 거친 줄기를 가진 물푸레나무가 짝을 이룬 모습이 눈을 휘둥그렇게 한다. 손 꼭 잡듯 하나로 합쳐져 어우러지는 구불구불한 나무들이 사연 많은 이 단단한 산성의 굴곡을 쓰다듬고 있는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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