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찾아서)⑫일자리가 희망이다.

김세형 기자I 2008.12.30 10:13:57
[이데일리 김세형기자]  '가동중단, 감산, 감축, 공포, 추락, 비상경영···'
한국 경제 현장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말들이다. 그만큼 경제흐름이 만만치 않다.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옮겨가면서 산업 현장의 고통은 가중되고 있다. 수출과 내수 모두 빨간 불이 들어오면서 IMF 외환위기 이후 10년여만에 찾아온 위기라는 말을 실감나게 하고 있다. 모두들 내년이 더 걱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위기를 직시하되 희망을 잃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도 높아가고 있다. 우리는 달러가 없어 부도 직전까지 몰렸던 나라를 수년만에 세계 5대 외환보유국으로 바꾼 저력을 발휘했다. 세계개발은행은 이를 '기적'이라고 평가했다. 

기적은 또 있다. 전쟁 폐허를 겪은 세계 최빈국을 수십년만에 메모리반도체· LCD· 디지털TV· 조선 세계1위, 조강(철강)생산 세계5위, 자동차생산 세계6위의 10대 세계경제대국으로 탈바꿈시키는 힘을 보여줬다. 

희망이 없으면 노력도 없다고 했다. 희망만 가지면 그곳에서 행복의 싹이 움튼다고도 했다. 위기가 불러오는 불안속에서도 우리가 '희망'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외환위기를 극복해 낸 경험이 축적돼있고, 10년전에 비해 크게 개선된 산업경쟁력과 기술력, 우수한 인재를 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다.

이제 그 자산을 써 볼 '기회'가 왔다. 위기는 곧 기회다. 희망을 이야기하고, 희망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땀 흘린다면 위기극복이라는 알찬 열매가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편집자>
 

대학원 졸업을 앞둔 A씨는 요즘 후회막급이다. 2년 전 학부 졸업때 대학원 진학을 하지말고 취업을 했어야 했다는 생각에 머리에 가득하다. 그는 최근 극심한 불황에 따른 취업난으로 원하는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지 고민중이다. 
 
A씨의 경우는 그래도 좀 나은 편이다. 자신이 원하는 전자 대기업 연구원 자리에 취업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기 때문이다.
 
직종불문하고 제대로 된 일자리 자체를 얻을 수 있을지 없을지 불안한 시간을 보내는 취업준비생들도 부지기수다. 이들은 학과 공부는 일단 제쳐놓고 취업에 유리한 '업무기능', 예컨대 파워포인트 등을 익히는데 몰두하기도 한다.
 
하루벌어 하루먹고 사는 일용직은 일용직대로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돼 버렸다. 건설경기가 꽁꽁 얼어붙으면서 인력시장에서는 새벽 찬바람 속에 일자리를 구하러왔다 헛걸음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한탕주의를 부추기는 사행산업 광고만 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인터넷도박 사이트를 소개하는 스팸 문자메시지가 흔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휴대폰 문자, 이메일 등을 통해 무차별 살포되고 있다.
 
직장인 B씨는 "하루 10여건이 넘게 도박안내 문자가 들어오고 있는데, 올 하반기 들어 부쩍 심해졌다"고 말했다. 
 
일자리에 대한 희망이 약해지다보니 한탕주의의 유혹에 넘어가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인터넷 도박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박의 꿈을 안고 복권을 찾는 사람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는 노력보다는 손에 잡힐듯잡힐듯 하는 한탕을 더 선호하게 되고, 계속 여기에 몰두한다. 한마디로 근로의욕 저하다.
 
◇ 일자리 상실, 사회적 불안요소

 
이 모든 것들이 희망을 잃은데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그래서 일자리는 희망이라고들 한다. 희망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일이 시급하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않다. 경기침체가 본격화면서 전세계적으로 불고 있는 감원바람에 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니다. 금융권에서 시작해 공공기관으로 바람은 확산되고 있다. 중소기업에서는 소리소문도 없이 감원이 진행되고 있다. 대규모 인력 조정이 단행된 IMF 때 못지 않은 조정이 있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실직은 인생단절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회안전망이 취약한 현실에서 경제위기에 따른 일자리 상실은 희망의 상실이나 다름없다. 이는 큰 사회불안요소로 작용한다. 

올 6월 한국노동연구원과 한국경제학회가 공동 주최한 국제 고용포럼에서 발표된 경제학회 회원 574명 대상 설문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가장 심각한 문제로 `노동시장의 양극화와 부족한 사회안전망`이 지목됐다.

좋은 일자리를 그만큼 얻기가 힘들다는 것이고, 실직했을 경우 기댈 곳이 없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통계로 본 상황은 일자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난 11월 신규 취업자가 7만8000명으로 두달 연속 10만명을 밑돌았고, 내년에는 신규 취업자가 감소세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된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전대미문의 위기라고 표현되는 이번 위기에서 실직 공포는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 대규모 고용 나서는 기업, 감원 나서야 할 기업
 
일자리 창출의 견인차는 결국 기업이다.  기업들이 인력투자를 꺼리게 되면 고용은 최악의 상황에 빠진다.  전문가들이 계속 기업규제 완화를 외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자리 감소는 결국 국민소득 저하로 이어지고, 소비침체, 다시 기업들의 투자저하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일으킨다.
 
최근 일부 대기업들이 대규모 인위적 구조조정을 하지 않겠냐는 방침을 밝히고 나선 것은 다행스럽기는 하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어렵다고 사람을 내보내면 안 된다"고 밝혔고, 삼성그룹 현대차그룹도 인위적 구조조정은 없다고 했다. SK그룹 역시 최태원 회장이 "어려운 때가 오히려 기회다"며 "중장기적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인력과 신기술 개발과 투자를 늘리는 방안을 모색해 달라"고 당부했다. 
 
대규모 투자를 통해 고용창출에 적극 나서고 있는 기업들도 있다.
 
현대제철의 일관제철소 건설사업에 투입되는 인력은 8600명을 넘어섰고 내년에는 1만명이 넘는 건설인력이 공사현장에 투입될 전망이다. 
                                                                                                                   
현대제철은 부지조성공사가 시작된 지난해부터 고로 2기 건설공사가 마무리되는 오는 2011년 3월까지 약 700만명의 건설인력을 현장에 투입할 예정이다.
 
향후 3년간 월 평균 15만여명, 일일 평균 6200명에 가까운 인원이 새로운 일자리를 얻게되는 셈이다. 2009년에는 연인원 320만명에 가까운 인력이 투입될 예정이어서 일일 투입인원으로 평균 1만600여명의 건설인력들이 현대제철 현장에 참여하게 된다. 

그런 한편으로 인력구조조정 없이는 현 위기상황을 타개할 수 없는 업종과 기업들에서는 대규모 감원이 단행될 가능성이 높다. 
 
◇ 노사 대타협, 임금양보하고 일자리 지키는 방안도 검토해봐야

전문가들은 이런 경우에도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고용 유지방안에 대해 노사가 고심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임금을 동결 또는 삭감하되 고용인력을 그대로 유지하는 노사간 대타협을 현실적으로 검토해 볼만하다는 것이다.
 
과거 네덜란드는 1, 2차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경제는 뒷걸음질 치고 실업률은 OECD국가중 가장 높은 12% 가까이 치솟았던 나라다. 그랬던 네덜란드가 최근까지 실업을 극복한 모범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임금인상 억제와 일자리 창출이 그 핵심이다.

지난 82년말 새로 들어선 루드 루버스 총리 내각은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작은 도시 바세나(Wassenaar)에서 노·사·정 타협을 이끌어 냈다. 노동조합은 임금 동결을 결의하고, 경영자측은 노동시간 단축 등을 통한 고용 창출을 약속했다. 정부는 최대한 노사간 갈등에 간섭하지 않되 동결 등 임금 자제를 이끌어 내는 기업에는 조세와 사회보장분담금 등을 감면해 줬다.

임금 동결에 따른 기업의 인건비 부담 감소로 기업은 수익성 높은 사업에 투자할 수 있게 돼 결과적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 수 있게 됐다. 동시에 적어진 비용 부담은 가격경쟁력을 회복시켜 매출액 증가에도 기여했다. 타협이 이뤄지던 82년 네덜란드는 역성장을 했지만 83년 이후 플러스 성장을 지속했다. 실업률은 83년을 정점을 꾸준히 하락했다. 2000년대 중반에 와서 실업률은 3.5% 수준 까지 내려갔다. 

이를 우리 실정에 직접 대입하기는 어렵겠지만 노사정 3자간의 사회적 합의가 오늘날의 네덜란드를 일궜다는 점만큼은 본받아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책개발에 주력해야 한다. 
 
대운하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4대강 정비사업의 경우 일자리 창출에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재정을 활용한 일자리 만들기다. 
 
3년간 19만명이 4대강 정비사업 건설인력으로 고용될 예정인데, 일당 8만원 안팎의 일자리가 물길을 따라 생겨나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일단 "일자리 창출도 창출이지만 지역경제 활성화효과도 기대된다"며 "건설업의 고용창출효과가 제조업의 2~3배 정도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일자리는 결국 희망이다. 희망은 한국경제를 다시 끌어올리는 힘이 될 것이다. 일자리의 중요성은 그래서 더욱 커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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