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권소현 기자] 지난 93년 미국에서 처음 등장한 이후 전세계 ETF 시장은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특히 전세계 금융자산을 반토막으로 만들어버린 금융위기에서도 ETF는 저렴한 수수료와 장기 성과, 매매 용이성 등을 앞세워 자금을 빨아들였다.
이처럼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ETF가 주목받고 있는 가운데 국내 ETF 시장도 점점 확대되고 있다. 특히 작년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이후 제도적으로 ETF가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 닦였고,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ETF를 인지하기 시작한 투자자들이 속속 ETF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 8년새 13배 성장
글로벌 ETF 시장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금융위기는 오히려 기회였다. 2007년과 2008년 신용위기를 겪으면서 투자자들은 개별 종목 보다는 인덱스 상품에 관심을 돌린 것이다. 그 중에서도 ETF는 포트폴리오 전반에 걸쳐져 있는 리스크를 헤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재빨리 포트폴리오를 변경하는 것이 쉽다는 점에서 각광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도 ETF에 대한 발견이 조금씩 이뤄지고 있다. 지난 2005년에만 해도 일평균 거래대금이 107억원에 불과했지만 2007년에는 534억원으로 늘었고 작년에는 처음으로 1000억원을 돌파, 1239억원을 기록했다. 여기에는 제도적인 개선으로 ETF가 다양해진 이유도 있지만 ETF의 장점을 알리는 홍보와 투자자 교육이 큰 역할을 했다.
처음 한국에 ETF 시장이 개설된 것은 2002년 10월14일. `KODEX200`, `KOSEF200` 등 4종목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낯선 금융상품 ETF는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2006년 섹터 ETF 상장을 계기로 메뉴가 다양해지자 ETF 시장도 꿈틀대기 시작했다. 투자자들은 ETF라는 투자수단에도 조금씩 눈길을 던졌고, 2007년 스타일 ETF와 해외 ETF에 이어 2008년에는 테마 ETF까지 모습을 드러내 2006년 12개였던 ETF는 2007년 21개, 2008년 37개로 늘었다. 이제 ETF만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해외 증시에도 손쉽게 투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 자통법으로 신종 ETF 출시 환경 조성
ETF 시장이 질적으로 한단계 도약한 것은 작년 자본시장통합법이 시행되면서다. 그동안 기초자산이 주가지수에 한정됐던 ETF가 채권, 통화, 상품 지수 등으로 확대된 것이다.
이제 국고채 지수나 환율,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런던금속거래소 금 가격에 연동해 움직이는 ETF가 가능해졌다.
신종 ETF의 첫 주자는 국고채 ETF다. 국고채는 워낙 거래단위가 크고 시장이 폐쇄적이어서 개인투자자들이 접근하기 어려웠지만, 작년 7월 4개 운용사가 일제히 국고채 ETF를 상장하면서 국고채 투자도 쉬워졌다.
현물이 아닌 선물지수를 추종하는 ETF도 등장했다. 삼성투신운용이 작년 8월 코스피200지수 선물을 기초자산으로 선물지수와 반대로 수익을 내는 인버스 ETF를 내놓으면서 투자자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삼성투신은 올해에도 환매조건부 매매를 활용해 레버리지를 일으켜 지수 움직임의 두배 수익률을 내는 2배 레버리지 ETF를 출시했다. 해외에서는 이미 보편화돼 있지만 국내 제도와 규정에 맞는 `한국형` 운용법을 찾아내 2배 레버리지 ETF를 개발한 것이다. 이 2배 레버리지 ETF는 출시될때부터 화제가 되면서, 상장후 지난 15일까지 일평균 거래대금 5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현대인베스트먼트는 금 ETF에 투자하는 재간접 ETF를 국내 최초로 출시, ETF로 금값에 베팅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작년 한해동안 ETF 13개가 새로 상장됐고, 올들어 4개가 추가돼 상장 ETF는 총 54개로 늘었다. 특히 다양한 운용방법을 개발해 투자자들에게 새로운 ETF를 선보이면서 국내 ETF에 대한 관심은 높아지고 있다.
◇ 아직은 걸음마 단계
작년 11월 기준 우리나라 ETF 순자산총액은 31억9000만달러로 ETF 종주국인 미국의 6655억달러에 비해 0.5% 수준에 불과하다. 상장종목수도 미국의 경우 800개가 넘는다.
미국에서는 이미 2002년에 채권 ETF가 상장됐고 2004년에 금 ETF가 등장했다. 2006년에 레버리지나 인버스 ETF가 선보였다. 작년에는 액티브, 130/30, 펀더멘털 ETF 등 신종 ETF들이 등장하는 등 계속 진화하고 있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 ETF 시장은 아직 걸음마 단계다. 박상우 우리자산운용 퀀트운용본부 본부장은 "ETF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한 것은 작년 말부터다"라며 "한국 ETF 시장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글로벌 ETF 시장이 확대되는 가운데 국내 ETF 시장도 빠른 속도로 커질 것이란 기대감이 높다.
이태용 미래에셋맵스 상무는 "미국 ETF 시장은 뮤추얼 펀드 시장규모와 비교해 7% 정도인 반면 우리나라는 펀드시장의 약 1.5%에 그친다"며 "ETF 상품이 갖고 있는 장점을 고려할때 한국에서도 성장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