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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쌀수록 잘팔린다…건조기 '200만원 시대’

김상윤 기자I 2022.01.01 13:00:00

10만대에 불과한 시장..올해 260만대 전망
아무리 비싸도 잘팔리는 ''명품'' 현상 나타나
시장 키운 LG·삼성..가격 인상 끌고 나가

[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204만원.

‘건조기 200만원 시대’가 열렸다. LG전자·삼성전자 등 가전업체들이 5~6년간 ‘건조기’라는 새로운 시장을 키웠고, 충분한 시장 지배력이 생기자 고가 전략에 나서고 있다. ‘혁신의 과실’을 수확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LG전자는 최근 오브제컬렉션 디자인과 인공지능 기술을 적용한 차세대 건조기(20kg)를 184만~204만원에 출시했다. 고가 브랜드인 ‘오브제 컬렉션’이 200만원을 넘었다. 삼성전자가 최근 비스포크 그랑데 건조기 AI(19kg) 199만원에 출시된 점을 고려하면 ‘200만원’이라는 벽을 LG전자가 뚫은 셈이다.

가격이 올라간 것은 그만큼 고성능 기능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차세대 건조기에는 세탁기에서만 쓰였던 DD모터가 처음으로 탑재됐다. DD모터는 LG전자가 1998년 업계 최초로 세탁기에 적용한 핵심 부품이다. 벨트로 세탁통과연결하는 일반 모터와 달리 세탁통과 모터를 직접 연결해 드럼의 회전속도를 정교하게 조절할 수 있고, 열효율도 올라간다는 게 LG전자 측의 설명이다. 여기에 의류의 재질을 감지하는 인공지능 기술과 접목해 드럼의 회전속도를 정교하게 조절하면서 최상의 건조상태를 만들 수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펜트업(억눌렸던 수요가 폭발하는 현상) 효과가 사실상 끝나면서 가전제품 시장이 침체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위기지만, 건조기 가격은 계속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건조기 시장이 ‘초호황’을 맞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건조기 판매량은 지난해 사상 처음 200만대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는 그 추세가 더 가팔라져서 연간 판매량이 260만대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된다. 2016년에 10만대 판매에 불과했던 건조기 시장이 5년 만에 20배 이상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5년 전만 해도 건조기가 꼭 필요한 가전제품인지 모두가 의문을 던졌던 상황이었지만, 이제는 가전 필수품이 된 지 오래”라면서 “그간 끊임없이 기술력을 발전시켰고, 이제 완연하게 시장이 열렸다”고 설명했다.

LG전자, 삼성전자는 국내 건조기 시장 90% 이상을 양분하고 있다. 월풀, 베코 등 외산 건조기가 있긴 하지만 시장 점유율은 거의 없을 정도로 국내 기업들이 압도적으로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눈높이가 높은 국내 소비자들의 취향을 노리면서 혁신을 하면서 시장을 잠식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먼지부터 옷감손상 까지 매우 까다로운 국내 소비자 취향에 맞추면서 기술개발을 계속해왔다”면서 “일반적인 건조기를 만든 외산업체들이 따라올 수가 없었고 자연스럽게 시장을 장악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혁신의 성과는 달콤하다. 가전업체들은 이제 건조기 가격을 올리면서 혁신의 과실을 수확하기 시작했다. 업계에서는 가전제품도 ‘아이폰’처럼 제품 자체가 명품 브랜드가 됐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가격이 아무리 비싸도 잘 팔리는 제품이 된 것이다.

고가 건조기 인기는 ‘베블렌 효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미국의 사회·경제학자인 베블렌은 “소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려는 심리적 만족감이 경제활동에서 매우 중요하다”며 말한 바 있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부부들이 고가 건조기 등 가전제품을 사면서 ‘세련된 사람’임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고가 가전제품을 원하는 수요층이 단단하기 때문에 첨단 기능을 가미하면서 제품 가격도 올라가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면서 “물론 고가 수요를 충분히 예상하지 못하면 실패할 수도 있는 전략”이라고 귀띔했다.

일각에서는 건조기 시장의 경쟁이 충분히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하지만 특별한 ‘진입 장벽’이 있는 것도 아니다. 삼성, LG전자가 에어컨, 냉장도 등 여러 가전제품을 한데 묶어 ‘패키지’로 판매하면서 다른 경쟁사들이 단제품 만으로 승부를 보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쓸모없는 제품을 끼워파는 것도 아니고 궁극적으로 소비자 후생을 위한 할인정책이라 정부가 개입할 여지는 없다.

신영호 백석대 경상학부 겸임교수는 “특정 사업자에게 유리한 ‘진입 장벽’이 없기 때문에 시장을 잠식한 것은 혁신의 결과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면서 “혁신의 결과는 곧 이익 창출이기 때문에, 소비자 수요에 맞춰 기업들이 고가 가격 정책을 끌고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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