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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말 한진해운 자산을 인수해 해운사업을 공격적으로 확대한 우오현 SM그룹 회장은 최근 서울 마곡동 SM R&D센터에서 가진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현 정부의 해운업 정책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우 회장은 “지금까지 현 정부와 해양수산부가 추진해온 해운 정책 및 지원책들을 보면 해운사에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된다는 게 업계 생각”이라며 “부채비율 개선 등과 같은 근본적인 해결책 없이는 한국 해운업은 사면초가에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같은 구조에서는 머스크 등 거대 선사와의 가격 경쟁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라는 것이 그의 냉정한 진단이다.
우 회장은 올초 청와대에서 열린 ‘2019 기업인과의 대화’ 자리에 해운업 대표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국내 해운업계는 현재 산소호흡기를 쓴 것처럼 어렵다”며 회계처리 기준 완화를 촉구한 바 있다. 해운 업황 회복을 위해서는 선박 투자 과정에서 부채비율이 높아지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게 요지다. 이미 건설업계에서는 임대 후 분양주택에 대해 부채를 자산에 포함시키는 회계 기준 예외 조항도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우 회장은 “선박을 취득할 때 통상 해운업체들은 80~90%를 금융권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데 이게 다 부채로 잡혀 부채비율이 급격히 높아진다”면서 “영업을 위해 필수적인 선박을 구입하기만 하면 금융권과의 추가 거래가 어렵다. 자칫 부실기업 취급을 받아 역으로 고객사로부터 신뢰를 잃어 영업이 어려워질 때도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 정부가 해운업을 살리겠다며 수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해도 이 같은 구조를 해결하지 못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불과하다”며 “결국 악순환을 되풀이하는 꼴”이라고 했다. 그는 또 “국적 원양선사인 현대상선이 수조원의 혈세를 지원 받으면서도 좀처럼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유”라고도 꼬집었다.
우오현 회장은 “지난해 4월 정부가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3년간 8조원을 투입, 신규 선박 200척 건조를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해운사들이 이에 적극 호응할 수 없는 사정도 여기에 있다”며 “돈을 지원해달라는 게 아니다. 현실적인 정책을 내달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 해운사들이 제대로 영업할 수 있는 여건만이라도 만들어달라는 것”이라면서 “규제 일부만 개선해도 일어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해수부에 확인한 결과, 우 회장의 이 같은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해수부 관계자는 “기업인과의 대화 이후 금융위원회가 산하기관인 회계기준원과 함께 회계기준 개편 여부를 검토했는데 결과적으로 안 됐다”고 말했다. 해수부 측은 “선박건조를 위한 대출금을 부채가 아닌 자산에 넣을지 말지는 금융위 소관”이라며 “국제 스탠다드가 있는 회계기준을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는 게 금융위의 입장인 것으로 안다”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이 요청이 반영되기 어렵다면, 다른 대책을 강구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입장이다. 올해부터 시행된 신 국제회계기준의 리스기준서(IFRS16)에 따른 매출 감소라도 막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금융위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회계기준 자체를 바꿀 수는 없지만 장기 계약과 관련한 금융리스를 부채로 인식할 때 경감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