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게 깔린 음악 속에서 댄스 테라피 강사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리자 곳곳에서 격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방금 전까지 신나는 음악과 함께 온 몸을 흔들며 에너지를 발산한 뒤였다. 그동안 힘들어도 아이 때문에 내색하지 못하고 벙어리 냉가슴을 앓아왔던 피해학생 학부모들이 비로소 마음 속 응어리를 모두 토해낸 것이다.
지난 5일 강원도 횡성의 한 수양관에서 열린 경기도교육청·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학가협) 주최 힐링캠프에는 피해학생과 학부모 70명이 참석했다. 캠프 초반에는 학부모들이 서로 마음을 열고 하나가 되기 어려웠지만, 시간이 갈수록 표정이 한결 가벼워지면서 서로의 고충을 이야기하고 보듬어주는 시간을 가졌다.
중학교 2학년 딸의 집단 따돌림으로 피해를 입은 김윤아(38·가명)씨는 “그동안 너무 힘들었던 게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났다”며 “피해자가 징계나 조치를 요구하면 학교도 형식에 그칠 뿐 성의있게 하질 않는다. 직접 당사자가 돼보지 않으면 심정을 모른다”고 토로했다.
◇학교측 대응, 형식에 그칠 뿐 무성의로 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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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위원회는 대체로 형식에 그치거나 징계가 결정돼도 경미한 수준인 경우가 많다. 김씨의 경우에는 학급 내 따돌림 발생으로 열린 학교폭력자치위원회에 참석한 뒤 회의록 원본을 가져왔다가 학교 측 요청으로 도로 돌려줬다. 그러나 나중에 재확인한 회의록에는 회의 제목과 내용이 바뀌어 있었고, 결국 사안을 집단 따돌림으로 볼 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김씨는 “학교에 아무리 이야기를 해봐야 소용이 없다. 그나마도 법령을 하나하나 찾아보고 반박해야 겨우 시늉을 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더 힘들게 하는 건 가해학생 학부모의 무성의한 태도와 근거없는 소문이다. 캠프에 참석한 한 학부모는 “가해학생 학부모들은 대부분 사과를 먼저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 선처를 부탁한다’는 말을 한다”며 “학교나 가해학생 학부모 측에 항의하고 조치를 요구했을 때 금전적인 이유 때문일 것이라는 근거없는 험담도 견디기 힘들다”고 털어놨다.
◇‘가해사실 학생부 기재 중간삭제’ 권고에 격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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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학가협에서는 8일 성명을 내고 “인권위 권고는 피해자의 입장과 인권은 전혀 고려되지 않은 결정”이라면서 “학교폭력으로 자살한 많은 아이들 앞에서 가해 학생들의 불이익을 말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분개했다. 학부모단체협의회 역시 같은 날 “소수 가해학생의 인권을 위해 절대 다수 학생의 인권이 학교폭력에 짓밟히는 것을 방관할 수 없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