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지난 12일 주요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가 끝나자마자 내년 개최국인 프랑스는 `기축통화 개편`에 군불을 지피고 있다. 프랑스는 이번 주부터 G20 의장국이 됐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서울 정상회의 직후 기자회견에서 “내년 G20 정상회의에서 글로벌 기축통화 문제를 주요 의제로 설정하겠다”고 밝혔다. 기축통화 개편에 중국, 브라질 등 신흥국이 공식적으로 호응하면서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전임 의장국인 우리나라는 G20에서 `기축통화 개편`처럼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거대 담론보다는 금융안전망, 개발 등 실현가능한 의제를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한편 프랑스는 이르면 11월말 각 국에 내년 G20에서 다루게 될 주요의제 및 논의계획 등을 담은 워크프로그램을 보낼 예정이다. 워크프로그램을 통해 기축통화 개편 방향을 엿볼 수 있을 전망이다.
◇프랑스 `기축통화 개편` 공론화할 듯
프랑스는 내년 G20회의에서 기축통화 개편을 본격 추진키로 했다. 정부 관계자는 “프랑스는 국제통화제도 개편 논의를 위해 워킹그룹을 만들 것”이라며 “기축통화 및 국제통화기금(IMF)의 SDR(특별인출권)도 함께 논의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12일 기자회견에서 “2년 전에는 아무도 우리 주장에 귀 기울이지 않았지만 G20 회원국 모두가 이 의제를 다루는데 동의했다”며 기축통화 개편에 다수의 국가가 지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프랑스에 공식적인 동의를 보낸 것은 중국과 브라질이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글로벌 기축통화 메커니즘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내년 봄에는 중국에서 프랑스와 공동으로 통화시스템 개편을 위한 세미나도 개최할 것으로 알려졌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디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국제 무역거래에서 달러화를 대체하는 방안을 협의해야 한다”고 밝혔으며,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당선자는 “달러화 대신 IMF의 SDR을 국제 무역결제수단으로 쓰자는 제안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양적완화 추가조치는 기축통화인 달러의 위상을 약화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했고 기축통화 개편을 공론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특히 G20회의를 통해 입김이 세진 중국, 브라질 등 신흥국들이 프랑스를 지지하면서 기축통화 개편에 힘이 실리고 있다.
◇한국 “G20에서 거대담론은 현실성 없어”
신흥국들이 기축통화 개편에 지지 의사를 표명한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좀 더 다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전임 의장국으로서 훈수를 두는 차원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기축통화 개편은 너무 거시적인 논의라 현실성이 없다는 시각이 많다”며 “차라리 우리처럼 금융안전망, 개발 등 손에 잡히는 것을 논의하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축통화라는 것이 재무장관들이 만나서 합의한다고 다음날부터 통화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타결 불가능한 거대담론을 얘기하려고 하는데 이렇게 되면 G20 존재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며 “G20회의가 어떤 결론을 도출하는 회의가 아니라 일종의 토크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정부는 프랑스가 기축통화 개편에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명확한 의견을 제시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정부 관계자는 “국제통화시스템이 좋은 방향으로 바뀌면 우리로서도 좋겠지만 아직은 프랑스의 정확한 생각을 모르겠다”며 “프랑스가 워크프로그램을 주면 그 때서야 우리도 입장을 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전임의장국 자격으로 프랑스, 멕시코(차기 의장국)와 함께 트로이카 체제로 G20의제를 조율하게 된다. 그러나 G20 의제는 당해 의장국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