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사는 경남 합천 해인사, 경남 양산 통도사와 함께 한국의 '삼보사찰(三寶寺刹)'로 꼽힌다. 이 큰 절에 휴대폰이 잘 터지지 않는다는 게 믿기지 않는지 진입로에서 한 중년 부부는 미약한 전파를 낚아보려는 듯 전화기를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이들 틈에 섞여 '전파 낚시'를 몇 분 하다 포기하고 휴대폰 전원 버튼을 꾹 눌렀다. 터지지도 않는데 어쩔 수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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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체험을 위해 지은 작은 방에 짐을 풀고 포교국장인 각안(覺眼) 스님께 인사드리러 갔다. "어떤 일로 오셨습니까." "얼마 전 배 타고 출장을 갔었는데 그 사이 휴대폰과 인터넷을 못하니 너무 불안하더라고요. 휴대폰 집에 두고 온 날 퀵서비스로 배달시킨 적도 있고요. 이쯤 되면 병이 아닐까 싶어서, 휴대폰 안 터지는 절을 수소문해 찾아왔습니다." "그렇지요. 요즘 사람들 휴대폰에 매여 삽니다. 나도 여기 이동통신사 기지국 없단 걸 알면서 가끔 진동이 울리는 듯한 환상을 느낀다니까요."
'아니, 스님도?' 각안 스님 말마따나, 송광사엔 휴대폰 기지국이 없다. '승려들이 수행하는데 자꾸 휴대폰 벨 소리가 울리면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스님들이 설치를 허용하지 않은 까닭이다. 같은 이유로 웬만한 절엔 다 있는 풍경(風磬)도, 주련(柱聯·기둥이나 벽에 장식으로 써 붙이는 글귀)도 없다니 전화 좀 못 쓴다고 투덜대기가 민망해진다. 국사전(國師殿), 목조삼존불감(木彫三尊佛龕) 등 사찰 곳곳의 문화재를 따라 천천히 한 바퀴 돌아보고 숙소로 돌아왔다. "요즘 사하촌(寺下村) 전파가 점점 세져 휴대폰이 종종 터지기도 한다.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스님은 걱정하지만 사찰 전체로 보면 휴대폰 안 터지는 지역이 터지는 곳보다 훨씬 넓다.
작은 방은 너무 조용해서 귀에서 '삐이' 소리가 날 정도다. 수첩 위에 펜 지나는 소리도 칠판에 분필 긋는 소리처럼 선명하게 들린다. 휴대폰을 가방 깊숙이 넣어 버리고 오후 8시30분쯤 자리를 펴고 누웠다. 각안 스님의 '지침'이 떠올랐다.
"이왕 사찰에 오셨으니 조용히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뭘 생각할지 모르겠으면 사찰체험 오는 분들께 제가 드리는 화두, '이 몸을 움직이는 것, 이 뭐꼬?'에 대해 오늘, 내일 생각해보시죠." 생각만으로 시간을 보내는 데 익숙하지 않은, 몸 피곤한 중생에게는 깨달음보다 잠이 먼저 찾아왔다. 인터넷 하고 텔레비전 시청하다 밤 12시 넘어 자던 습관을 비웃듯 고요한 산사의 수면은 오후 9시쯤 살며시 내려앉았다.
다음 날 오전 3시30분. 쨍강대는 휴대폰 알람 소리를 대신한 건 몸을 들어 올리듯 퍼지는 북소리였다. 새벽 예불 시작을 알리는 북소리는 대웅전 앞에서 시작돼 산사의 기왓장과 기둥을 흔든 후 사찰이 자리 잡은 조계산으로 넘실넘실 흩어졌다. 눈곱만 간신히 떼고 향한 대웅전 앞, 회색 승복에 자주색 띠를 두른 승려들이 불그스름한 빛이 새어 나오는 대웅전으로 말소리 발소리 없이 하나 둘 들어섰다. 형광등 못지않게 밝은 커다란 보름달, 백화점 크리스마스 장식보다 초롱초롱한 별빛, 5.1채널 DVD보다 생생하고 입체적인 북소리가 몸 구석구석 찌들어 있는 디지털 앙금을 닦아냈다.
≫사찰체험
송광사는 주말마다 1박2일 일정의 '산사 체험'을 진행한다. 새해부터는 평일에도 '자율형 템플스테이'를 운영할 계획이다. 산사 체험 숙소엔 따뜻한 물이 나오는 세면장과 현대식 화장실이 갖춰져 있다. 새해맞이 법회를 겸한 템플스테이는 12월 31일 오후 4시부터 다음 날 낮 12시까지 열린다. 조계산 대장봉(해발 762m)에 오르는, 겨울 산 새벽 등산이 포함된 일정. 성인 4만원, 중·고생 3만원, 초등학생 이하 2만원.
◎ (061)755-0107
전남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12번지. www.songgwangsa.org
◎ 호남고속도로 주암 나들목으로 나가면 '송광사' 이정표가 계속 보인다. 순천역 옆 순천터미널(061-752-2659)에서 오전 5시50분~오후 7시15분 송광사까지 가는 111번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꼴로 다닌다. 광주터미널(062-360-8114)에선 오전 8시50분·9시55분·10시45분, 오후 2시55분·3시45분 송광사행 버스가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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