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한근태 칼럼니스트] 45세에 구조조정 당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은 없다. 길거리에 뛰어나가 누군가를 향해 “내 인생을 책임져 달라고 주장하는” 그런 삶을 살고 싶어하는 사람도 없다. 누군가의 밑에서 눈치 밥을 평생 먹으며 살겠다고 결심하는 사람도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멋지게 폼나게 자유롭게 풍요롭게 살고 싶어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가 없이 그런 삶을 살고 싶어하기 때문에 힘들어 한다. 로또에 목숨을 걸기도 한다. 한 탕 크게 해서 인생역전을 꿈꾸기도 한다. 성공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성공은 훈련의 결과이고 땀 흘린 결과로 얻어진다. 쉽게 대박을 꿈꾸는 사람은 글을 쓰지 않고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과 같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멋지고 폼나는 삶을 살고 싶으면 거기에 걸 맞는 노력을 해야 한다.
무엇이든 자꾸 연습하고 훈련하고 사용해야 한다. 그래야 강해지고, 튼튼해지고, 효용성이 높아진다. 그것이 바로 용불용설 (用不用說)이다. 육체도 그렇고, 정신도 그렇다. 무슨 일이든 연습을 하면 쉬워지듯, 건강한 정신을 유지하는 데도 연습이 필요하다. 행복도 그렇고 전문성도 그렇고 심지어 사랑과 행복도 그렇다.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건망증도 사실은 뇌를 사용하는데 게을렀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훈련을 하지 않고 스타가 된 사람은 없다. 일시적으로 스타가 될 수는 있지만 이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피눈물 나는 훈련이 필수적이다. 방법도 가지가지이다. 일본의 홈런왕 왕정치는 늘 회초리로 좁쌀 때리는 훈련을 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부터 야구공이 수박만하게 보이고 홈런을 많이 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타격왕 이치로는 고교 선수시절 빠른 볼에 적응하기 위해 공을 던져주는 기계 앞에 바짝 다가서 타격을 하는 훈련을 했다고 한다. 농구 황제 마이클 조단은 조언을 구하는 타이거 우즈에게 “모든 사람이 너에게 골프 천재다.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사람이다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을 때 바로 연습장으로 달려가라. 달려가서 이전 보다 더 훈련에 열중하라! “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모두 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이런 업그레이드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힘들다. 어느 시점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지는 것 같지 느껴지지 않을 때도 많다. 일시적으로 실력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면 좌절하거나 당황해 훈련을 포기하고, 예전 방식의 삶을 살게 된다.
하지만 모든 발전은 직선이 아닌 나선형으로 일어난다. 퀀텀식으로 발전하는 경향이 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 역시 그랬다. 99년까지 19개월 동안 한 차례도 우승하지 못했고 사람들은 황제는 맛이 갔다고 놀렸다. 하지만 그리고 99년 5월 긴 터널에서 빠져 나왔고 그 해 14개 토너먼트 중 10개를 휩쓸었고 PGA만 8개를 석권했고 2006년은 연속 5 번을 우승하는 기적을 이루었다.
원래 미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면 왜 내가 그 때 그렇게 고생을 했는지, 그 경험이 지금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래서 “The hindsight is always 20/20”(뒤돌아보면 모든 것이 명확하다) 라는 격언이 있는 것 같다. 나 역시 그랬다. 젊은 시절 앞이 캄캄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일류대학 들어가고 국비로 박사학위까지 땄지만 살림이 펴지지도 않았다. 대기업 임원이 됐지만 삶은 늘 궁핍하고 불만족스러웠다. 이런 생활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면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아무 유산을 남겨주지 못한 부모님을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 열심히 살았다. 열심히 공부했다. 책도 많이 읽고 회사 안에서도 다양한 경험을 했다. 모든 것이 예전보다 훨씬 나아진 지금 나는 과거의 고생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과거에 그런 아픔과 훈련과 인내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풍요로움이 있다는 것도 안다. 그것이 인생이다. 뿌린 만큼 거둔다. 봄에 씨를 뿌려야 가을에 거둘 것이 있는 것이다. 초년에 고생을 하고 노력을 하고 훈련을 해야 중년 이후에 얻어지는 것이 있는 법이다. 인생에는 두 가지 고통이 있다. 하나는 훈련의 고통이고, 또 하나는 후회의 고통이다. 훈련의 고통은 가볍지만 후회의 고통은 육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