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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서울 집값? 남 얘기"…미분양 늪에 갇힌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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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지 기자I 2026.08.06 04: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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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푸르지오 990가구가 전부 미분양...신축이 파격가 월세로
텅 빈 대단지 신축…분양가 할인·전월세 전환 속출
"서울은 오르는데"…'가격 하락세' 주민들 '울상'
전문가 "지방 부동산 시장 교란…수도권 쏠림 가속화"

5일 오전 대구 달서구 상인동 상인푸르지오센터파크 정문에 '홍보관 가는 길' 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사진=정윤지 기자)
5일 오전 대구 달서구 상인동 상인푸르지오센터파크 정문에 '홍보관 가는 길' 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사진=정윤지 기자)
[대구=이데일리 정윤지 기자] 정부의 부동산 세제개편안이 발표된 지 이틀째인 5일, 대구 달서구 상인동 상인푸르지오센터파크 앞. 990가구 규모 대단지 아파트 앞은 평일 오전임을 감안하더라도 사뭇 조용했다. 정문 출입구에는 입주 축하 현수막 대신 ‘홍보관 가는 길’ 표지판이 크게 설치돼 있었고 공사 흔적도 곳곳에 남아 있었다.

단지 내부로 들어가니 이 단지가 최근 입주를 시작했다는 사실이 무색했다. 101~109동 중 절반은 출입문 보호 테이프조차 떼지 않은 채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공동현관 유리를 넘어 내부를 들여다 보니 현관문에는 단단한 박스 종이로 된 보양재가 여전히 붙어 있었다. 맞은 편 아파트에 사는 장모(65) 씨는 “대단지가 들어서서 그래도 활기가 생길 줄 알았는데 사람이 없어 주말이나 출퇴근 때도 달라진 게 없다”고 했다.

이른바 ‘악성 미분양(준공 후 미분양)’이 지방 부동산 시장을 짓누르고 있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준공 후 미분양 물량이 쌓인 대구에서는 신축 아파트의 분양가 할인이 일상이 됐다. 전세나 월세로 전환되거나 주인을 찾지 못해 공사가 중단되는 사례도 잇따른다. 미분양이 장기화하면서 신축뿐만 아니라 기존 아파트 거래까지 위축되는 모습이다. 집값 상승에도 제동이 걸리자 이곳 주민들은 “서울 집 값은 남 얘기”라고 입을 모았다.

5일 오전 집 주인을 찾지 못한 대구 달서구 상인동 상인푸르지오센터파크 101동 1층 한 현관 문에 보양재가 붙어 있다. (사진=정윤지 기자)
5일 오전 집 주인을 찾지 못한 대구 달서구 상인동 상인푸르지오센터파크 101동 1층 한 현관 문에 보양재가 붙어 있다. (사진=정윤지 기자)
분양가 할인에 ‘마피’까지 붙은 신축…아파트가 원룸 가격

상인푸르지오센터파크는 대구 미분양 사태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단지다. 지난 2024년 준공된 이 아파트는 같은 해 11월 일반분양에 나섰지만 990가구 중 50여가구만 청약 신청을 했다. 전용면적 84㎡ 기준 분양가가 6억 3000만원이었다. 텅 빈 유령 아파트로 1년간 방치되자 시행사는 결국 기업구조조정(CR) 리츠를 활용해 미분양 물량 일부를 전세로 전환하는 방식을 택했다. 현재는 105~109동을 중심으로 전세 입주가 시작됐다. 나머지 절반 물량에 대해서도 올 하반기 전세 입주를 받을 예정이다.

상인동에서 차로 20여분 떨어진 본동 일대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인근 공인중개사들은 이곳 사거리 일대가 “대구에서도 악성 미분양이 몰린 동네로 통한다”고 했다. 달서롯데캐슬센트럴스카이아파트(481가구·48실), 더샵달서센트엘로(272가구)가 모두 미분양인 탓이다. 당초 올 6월 입주가 예정됐던 더샵달서센트엘로는 분양 부진으로 공사가 한 차례 중단됐다가 최근에야 재개됐다.

5일 대구 달서구 본동 대표적인 악성 미분양 단지인 달서 롯데캐슬센트럴스카이의 홍보관에 각종 혜택이 적혀 있다. (사진=정윤지 기자)
5일 대구 달서구 본동 대표적인 악성 미분양 단지인 달서 롯데캐슬센트럴스카이의 홍보관에 각종 혜택이 적혀 있다. (사진=정윤지 기자)
사거리 대로변에 자리한 빌리브클라쎄 상가 1층에는 롯데캐슬센트럴아파트 분양홍보관이 크게 들어서 있었다. 건물 외벽에는 ‘역대급 할인’, ‘준공 후 미분양 수혜단지’ 등 현수막이 대문짝만하게 내걸려 있었고 홍보관에는 분양가 16% 할인과 잔금 2년 유예 등 각종 혜택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하지만 파격적인 조건에도 홍보관과 바로 옆 입주안내 사무실을 찾는 발길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웠다. 본동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여기서 도보로 15분쯤 떨어진 달서푸르지오시그니처는 분양가보다 7000만원 낮은 ‘마이너스 프리미엄(마피)’ 급매 매물도 나왔다”고 했다.

신축 아파트를 원룸 수준 월세로 내놓는 경우도 있다. 서구 비산동에 있는 힐스테이크서대구역센트럴(762가구·75실)은 지난해 7월 준공했지만 분양률이 30%에도 미치지 못했다. 시행사는 결국 미분양 물량을 월세로 전환해 방 3개·욕실 2개를 갖춘 전용면적 84㎡를 보증금 3000만원 미만에 월세 60만~90만원 수준으로 내놨다. 이 주변 A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대구에서 같은 면적 신축이면 월세 100만원은 넘을 것”이라며 “파격적인 조건으로 월세를 공급하다 보니 젊은 층의 문의가 주로 들어온다”고 했다.

이 같은 풍경은 대구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6월 주택통계’에 따르면 전국 미분양 주택은 6만 7464가구로 전월보다 3.4% 증가했다. 수도권 미분양은 1만 8770가구인데 지방은 4만 8694가구로 집계돼 전체 미분양 확대를 지방이 주도했다. 준공 후 미분양은 전국에서 2만 9786가구고, 대구가 3575가구로 가장 많았다. 뒤이어 부산(3292가구)·경남(3226가구)·경북(2973가구)·충남(2372)·강원(1275가구) 순으로 지방에 집중돼 있다.

서울 집값 오르는데 대구는 하락…“악성 미분양, 시장 교란”

악성 미분양은 신축 단지를 넘어 기존 아파트 시장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건설사들이 할인 분양과 각종 금융 혜택을 내걸자 기존 구축 아파트는 상대적으로 가격 경쟁력을 잃고 거래가 더욱 위축되는 것이다.

실제 집값 흐름도 대조적이다. 한국부동산원이 공개한 올 1월~6월 월간 매매가격지수 변동률을 보면 올해 상반기 서울과 전국 주택종합 매매가격은 매달 상승세를 이어간 반면 대구는 6개월 연속 내림세를 기록했다. 6월에는 서울이 전월보다 1.03% 상승했지만 대구는 0.08% 하락했다.

이 때문에 대구 주민들은 서울과 지방 부동산이 다른 세상이라고 입을 모았다. 상인동 주민 황모(67) 씨는 “대구는 집이 안 팔려서 고민이다”며 “새 아파트가 할인 분양을 한다고 하니까 구축은 제 가격도 못 받고 있다”고 했다. 대구 중앙로역 인근에서 만난 최진철(55) 씨는 “집을 팔아야 노후 자금도 마련하는데 급매로 내놔도 문의가 거의 없다”며 “서울은 집값이 오른다고 하지만 이곳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고 토로했다.

상인동에서 5년 째 부동산을 운영하는 60대 B씨는 “손님들도 문의를 하러 왔다가 가격이 더 떨어질 거 같다고 기다리는 경우도 많다”며 “계속 ‘마피’가 붙은 매물이 나오니 손님 입장에선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5일 악성 미분양 단지인 대구 서구 비산동 힐스테이트서대구역센트럴 아파트 앞 부동산에 35평 매물을 2700/82로 거래한다는 홍보 전단지가 붙어있다. (사진=정윤지 기자)
5일 악성 미분양 단지인 대구 서구 비산동 힐스테이트서대구역센트럴 아파트 앞 부동산에 35평 매물을 2700/82로 거래한다는 홍보 전단지가 붙어있다. (사진=정윤지 기자)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단순히 미분양이 남아있는 수준을 넘어 지역 부동산 시장 전반을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송원배 대한부동산학회 대구경북지회 부회장은 “악성 미분양은 주변 아파트 값과 전셋값이 함께 흔들리고 결국 역전세까지 벌어지는 악순환이 돼 지역 부동산 시장을 교란한다”며 “서울 집값은 계속 오르는데 지방 자산 가치가 떨어지면 ‘나도 서울로 간다’는 심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며 “지방 미분양이 장기화하면 결국 수도권 쏠림 현상까지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악성 미분양이 대구 집값 전체를 끌어내린다고 일반화할 수는 없다는 의견도 있다. 이영민 한국공인중개사협회 대구광역시회장은 “미분양은 입지가 상대적으로 열악한 단지에 집중된 경우가 많아 핵심 지역 집값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며 “실제 미분양이 발생한 곳은 주요 일자리와의 접근성이 떨어지고 수요 기반도 약한 지역이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그러면서도 “미분양 단지와 입지가 비슷한 인근 구축 아파트는 신축 할인 분양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결국 대구 안에서도 핵심 지역과 비선호 지역 간 집값 양극화는 더욱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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