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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인사수석 신설이 성공하려면[이근면의 사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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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기자I 2025.10.02 05:00:00

권한·책임 일원화해 ''책임지는 권력'' 필요
전문성·도덕성·국민 눈높이 세 원칙 지키고
독립적 검증 강화하고 비선 개입 차단해야

[이근면 초대 인사혁신처장]이재명 정부가 대통령실에 인사수석 직제를 신설했다. 표면적으로는 반복되는 인사 잡음을 해소하고 비선 개입설을 차단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보인다. 인사 문제는 어느 정부에서나 가장 민감한 사안이고 국민이 정부를 평가하는 신뢰의 첫 단추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대통령실 차원에서 전담 창구를 두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인사수석 신설이 과연 문제 해결로 이어질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잡음과 부작용의 출발점이 될 것인가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인사는 본질적으로 ‘사람의 문제’다. 대통령의 철학과 국가 운영의 방향이 인사를 통해 드러난다. 하지만 지금처럼 여러 추천 창구와 검증 라인이 얽히고설킨 구조에서는 책임 소재가 희석되기 쉽다. 누구는 추천만 했다고 하고 누구는 검증만 했다고 한다. 결국 문제가 생기면 “내 책임이 아니다”라는 말만 남는다. 이 과정에서 원칙과 기준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인사 시스템은 투명성을 잃는다.

‘숟가락을 얹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밥상은 더 빨리 상한다. 인사수석 직제가 신설되면 당장은 권한 집중을 통해 혼선을 줄일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또 다른 권력의 창구가 생기는 셈이다. 누가 최종 책임자인지 모호해지고 비선·측근·정치적 이해관계자가 그 자리를 새롭게 포장해 들어올 여지가 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사수석 신설을 단순한 ‘자리 늘리기’로만 볼 수는 없다. 나름의 필요성과 기대효과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대통령실 차원에서 인사 업무를 총괄하는 자리를 신설함으로써 인사 절차의 체계화가 가능하다. 지금까지는 각 부처·정당·개별 참모 라인을 통해 산발적으로 인사 의견이 전달되면서 혼선이 빚어졌다. 인사수석이 이를 단일화하면 절차의 흐름을 명확히 하고 추천부터 검증, 최종 결정까지 일관된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

둘째, 인사수석은 대통령의 철학과 원칙을 제도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동안 대통령이 직접 개입하거나 주변 참모의 영향력이 과도하게 작용하면서 ‘측근 인사’, ‘편향 인사’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인사수석제를 통해 공정성·전문성·도덕성이라는 세 가지 기준을 제도화하면 대통령의 인사철학이 보다 구체적이고 일관되게 집행될 수 있다.

셋째, 인사수석제는 위기관리 기능도 있다. 인사 실패는 곧바로 정권 신뢰 하락으로 이어진다. 특정 후보자의 도덕성 논란이나 비위 의혹이 불거질 때 이를 조기에 걸러내고 대응할 수 있는 조직적 장치가 필요하다. 인사수석은 그러한 ‘초기 방어선’으로서 작동할 수 있다. 즉, 대통령이 직접 나서기 전에 불필요한 상처를 예방하는 방파제 역할이다.

넷째, 인사수석은 국민과의 소통 채널로 기능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인사 잡음이 불거져도 국민에게 제대로 된 설명이나 해명이 이뤄지지 않았다. 인사수석이 있다면 인사 정책 방향, 기준, 검증 절차를 국민에게 주기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다. 이는 투명성을 높이는 동시에 ‘인사 불통’이라는 비판을 완화하는 효과를 낳는다.

즉, 인사수석 신설은 단순히 권력의 보완 장치가 아니라 체계화·일관성·위기 대응·소통 강화라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제도적 시도다.

하지만 그 기대효과는 제도가 운영되는 방식에 달렸다. 더 큰 문제는 인사수석제가 ‘비선 개입 방지책’이 아니라 ‘비선 보호막’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대통령실 내부에 인사수석이란 직함이 존재하면 모든 비선 의혹은 그 자리를 통해 합리화할 수 있다. 누가 개입했든 “인사수석이 검토했다”는 한마디로 면피가 가능하다. 그동안 수면 위로 드러났던 비선 관련자의 영향력이 오히려 제도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할 위험이 있다.

즉, 본래 잡음을 줄이기 위해 만든 제도가 오히려 ‘안전판’이 돼 비선을 보호하는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의 공식 직제가 ‘방패’ 역할을 하게 되면 국민이 제기하는 의혹은 더욱 묻히고 실질적 검증은 힘을 잃는다. 그야말로 ‘공식화한 불투명성’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인사수석제는 어떻게 해야 성공할 수 있을까. 몇 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첫째, 권한과 책임의 일원화다. 인사수석이 단순히 조정자나 절차 담당자가 아니라 결과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는 자리로 자리매김해야 한다. 그래야만 ‘책임 없는 권력’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있다.

둘째, 투명한 기준의 공개다. 인사 원칙을 명확히 세우고 국민 앞에 밝힘으로써 불필요한 오해를 줄여야 한다. 전문성, 도덕성, 국민 눈높이라는 세 가지 원칙은 말뿐이 아니라 구체적 지표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

셋째, 독립적 검증의 강화다. 대통령실 내부 라인만으로는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민간 전문가, 독립 기구 등이 참여하는 보완적 장치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인사수석 직제가 권력의 ‘보호막’이 아니라 투명성의 ‘안전망’으로 기능할 수 있다.

넷째, 비선 차단 장치다. 대통령실 내부 규정을 통해 친인척, 측근, 비선의 개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절차가 기록으로 남고 책임이 공개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인사수석 신설은 제도적 변화지만 그것만으로는 인사의 잡음을 해소할 수 없다. 제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제도를 어떻게 운영하느냐가 본질이다. 권력 주변의 비선과 측근 문제는 자리를 하나 더 만든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직제가 그들을 감싸주는 울타리로 작동할 수도 있다.

결국 관건은 사람을 세우는 철학이다. 인사는 정권의 철학과 비전을 국민 앞에 증명하는 행위다. 대통령이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에 따라 인사를 실행한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일 때만 국민은 신뢰를 보낸다. 인사수석이 진정 ‘잡음을 줄이는 제도’로 기능할지 아니면 ‘비선 보호막’이 될지는 앞으로 최종 책임자의 약속과 의지 그리고 시스템적으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렸다. 결국 인사는 만사의 출발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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