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사람]"1000억 견미리 팩트, 떨어진 비누서 시작됐죠"

염지현 기자I 2015.12.16 08:26:20

김재경 애경 에이지투웨니스 커버팩트 연구원 인터뷰
물방울 맺히는 제형 얻기 위해 1년간 연구 개발 거듭해
장난감 보며 아이디어 얻고 소비자 감성 알아가

김재경 애경 화장품홈쇼핑마케팅팀 과장
[이데일리 염지현 기자]‘포인트’, ‘에이솔루션’ 등 1990년대 화장품 시장을 주름잡은 애경에 또 한 번의 전성기를 가져다준 제품이 있다. 바로 ‘에이지투웨니스(AGE 20’S) 에센스 커버팩트’다. 이 팩트는 보기엔 고체형이지만 긁으면 액체 에센스가 뚝뚝 떨어지는 독특한 제형으로 여성 소비자들을 사로잡았다. 홈쇼핑 방송에 배우 견미리가 이를 들고나와 ‘견미리 팩트’라고 불리며 40~50대 여성에게 인기를 끌었다.

견미리 팩트는 올해 GS샵 거래품목 전체에서 판매 1위라는 기록을 세웠다. 화장품이 패션을 제친 것은 4년 만의 일이다. 출시 2년 2개월 만인 지난 11월엔 홈쇼핑과 온라인몰에서만 살 수 있다는 제약에도 누적매출 1000억원을 돌파했다.

에이지투웨니스 에센스 커버팩트
일등공신은 이 제품을 개발한 김재경 연구원(애경 화장품홈쇼핑마케팅팀 과장)이다. 김 과장은 에센스가 묻어 나오는 팩트를 만들기 위해 악몽에 시달리고, 퇴사를 결심했을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냈다.

“일본에 시장 조사를 하러 갔다가 사온 비누를 우연히 바닥에 떨어뜨렸는데 바닥을 닦다 보니 물기가 묻어나는 거예요. 홈쇼핑 전용 상품으로 고객의 시선을 끌 수 있는 제품을 만들려 했는데 이거다 싶었죠. 구상은 좋았는데 실현하기가 어렵더군요. 제형 개발에만 꼬박 1년이 걸렸습니다.”

연구 논문을 수없이 찾아 읽었지만 긁었을 때 물방울이 맺히는 고체형 파운데이션에 대한 자료는 없었다. 비슷한 제형을 찾았다 싶으면 때처럼 뭉치는 단점이 발견되는 등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연구 개발을 시작한 지 6개월이 넘어가니 초조해졌어요. 회사에 눈치도 보이고 말이지요. 오죽하면 그만 둘 생각까지 했을까요.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제품 개발에 매달렸는데 기적처럼 황금 배합 비율을 찾게 된 거예요. 삶을 뒤흔드는 아이디어는 그렇게 벼랑 끝에 몰렸을 때 스치듯이 나오더라고요.”

입사 10년 만에 겪은 고난의 시기는 ‘히트 상품’이라는 인생 최대의 선물을 안겼다. 가장 기쁠 때는 공들여 만든 화장품이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때다. 실제로 화장품 관련 블로그나 인터넷 카페를 보면 뭉치지 않고 매끄럽게 발리면서 촉촉함이 오래 유지되는 견미리 팩트의 효능을 칭찬하는 글이 넘쳐난다. 이는 화학을 전공한 김 과장이 화장품 연구개발자의 길을 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정유 개발을 하면 기업을 상대로 제품을 파는 거지 소비자들이 제가 만든 제품을 알진 못하잖아요. 주위 사람들이 내가 만든 제품을 쓰고, 또 이를 통해 그들의 삶이 나아지는 것을 보며 보람을 느껴요.”

물론 든든한 지원군인 아내가 있지만 남자로서 여자들이 즐겨 쓰는 화장품을 연구 개발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다. 특히 ‘과학’에 ‘감성’을 접목해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화장품 산업에서 소비자가 원하는 감성을 잡아 내는 것은 전쟁과도 같다. 그러나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끙끙 싸매진 않는다.

“화장품에 대한 아이디어가 안 나온다고 다른 회사 화장품을 보면 카피(모조) 제품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색조 제품을 만들 때는 장난감 가게에 가서 조립된 레고 장난감 등을 보며 색감과 제형에 대한 영감을 얻거나 산책을 하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봐요. 소비자의 감성을 건드리기 위해선 결국 그들의 삶을 알아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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