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은 7월10일 금융통화위원회가 끝난 직후 기자회견에서 차후 금리인상을 하겠다는 신호를 강력하게 보냈다. 한은 총재가 올해 초 한은을 호민관에 비유했던 만큼 물가상승은 서민생활의 기반을 해치기 때문에 한은 본연의 임무인 물가에 초점을 맞춘 결정이다. 한은은 이런 정책기조를 호기롭게 계속 밀고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아마 그렇지 못할 것 같다.
◇유가상승은 한국에 상대적으로 강한 실물충격
유가상승은 일반적으로 물가를 전반적으로 상승시키는 충격으로 작용한다. 물가가 화폐적 요인에 의한 것이므로 우리는 유가 충격도 명목 충격으로 생각하려 한다. 즉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유가상승은 실물충격(real shock)의 측면에서도 중요하다.
만일 석유를 수입해야 하는 우리나라에서 유가가 작년에 비해 두 배 올랐다고 하자. 우리가 소득 중에서 매월 30만원을 석유에 지출했다고 하면 유가가 두 배 오르면서 60만원을 지출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노동으로 살 수 있는 석유의 양이 줄어들었으며 이것은 결국 실질 임금이 하락한 것이다. 즉 유가상승은 실질임금 하락이라는 실물충격인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충격을 우리나라가 특히 크게 받고 있다는 점이다. 표에서 보듯이 GDP대비 원유수입 비중이 일본이나 미국 등은 2% 남짓하고 중국도 2%대에 불과하나 우리나라는 6%를 넘어서고 있다.
◇ 실물충격에 대한 긴축정책은 불확실성 확대
실질임금이 하락하면 저축이 줄어들든지 소비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 가계 저축률은 외환위기 전후 14%대에서 계속 하락하여 지금은 4%대에 머무르고 있으므로, 줄어든다면 저축보다는 소비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그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노동조합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자영업자와 비정규직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실질임금 하락을 방어하기가 쉽지 않은 환경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8년 6월 현재 1600만 명이 임금근로자이고 자영업자는 600만명에 이른다. 임금근로자 중에서 임시 근로자가 500만명이며 일용직은 200만명에 이른다. 2200만명 중에서 상용 임금 근로자는 약 40%정도에 불과한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유가인상에 따른 실질임금 하락이라는 실물충격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크며, 이를 실질임금에 전가할 수 있는 노동시장도 아니다. 따라서 금리인상으로 수요를 줄이는 것은 수요위축을 가중시킬 수 있다. 안정을 지향하되 경제가 축소되는 것이며 축소되는 속도는 불행하게도 불확실하다. 왜냐하면 부채가 높고 자산가격들이 높은 가격에 형성되어 있으므로 이들이 환경변화에 따라 어떻게 진행될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 인플레 기대를 안정시켜보려는 신호
한은이 이를 모르는 바는 아닐 것이지만 당장 한은의 목표인 물가에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에 어쩔 수는 없는 것 같다. 특히 우리나라는 도매물가 상승률이 10%에다가 근원 소비자물가(Core CPI) 상승률이 4%를 넘어 계속 오르고 있기 때문에 한은으로서는 곤혹스러울 수 밖에 없다. 또한 공공요금 인상, 제품가격 인상 등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고 이에 따른 임금인상이 기다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대 인플레이션을 막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따라서 한은이 조만간 금리를 인상한다면 그것은 인플레이션을 직접적으로 억제하겠다는 것보다는 기대 인플레이션을 안정시켜보려는 신호라고 해석하는 것이 올바를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금리정책도 일반적으로 통화정책의 변경 이후 지속적으로 금리를 인상 혹은 인하하는 것보다는 단발성에 그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본다. 오는 8월경에 금리를 한차례 인상하고 나서 9월과 10월에 한차례 더 인상하지 않으면 이후에 인상할 기회는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이며, 그렇다고 해서 자산가격 하락과 실질임금 하락으로 내수가 타격을 본격적으로 받는 9~10월에 추가로 인상하기도 쉽지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은은 인플레를 막기 위해 이르면 8월경에 금리 인상 칼을 뽑아 들지 모르지만, 그 이후는 마땅히 계속 휘두를 일도 없이 칼집에 도로 넣어야 하는가를 고민하는 좀 ‘뻘쭘’한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 궁색한 선택
한은은 올해 초에 실물 경제가 나쁘지 않았지만, 서브 프라임 사태 등으로 인해 금리인하를 고려하는 신호를 보냈다. 중앙은행의 행태로는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여기에 대해 한은은 선제적인 통화정책이란 말을 했다. 이런 정책기조는 불과 3개월 정도 지나자 반대가 됐다. 그런데 8월에 금리 인상을 하고 나서 4~5개월 지나고 금리를 인하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얘기가 나올까 걱정된다면, 이것은 나만의 기우일까?
우리나라는 양극화되어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소득 계층간, 임금 소득자간 등등. 통계학에 이런 말이 있다. 머리는 냉장고에 넣고 발은 불 속에 넣고, 배는 따뜻하다고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평균만 보고 판단하는 오류를 말한 것이다. 양극화된 경제에서 매크로 평균수치만 보고 움직이는 정책은 자칫 예기치 못한 부작용을 가져올 수도 있다. 긴축정책이라도 금리라는 매크로한 것 만이 아니라 마이크로한 것들에도 창의성을 발휘할 때인 것 같다. 예를 들어 전기세 누진제를 강화하는 것은 서민들보다는 고소득층에 해당되므로 전체 에너지 소비를 줄이지만 서민들에 대한 타격은 크지 않은 것이다.
기업들은 이번 기회에 제품값을 충분히 올려보려고 하는데, 이미 실질 임금이 하락해 타격을 받은 근로자들에게 중앙은행은 금리를 올려서 기대 인플레를 잡으려고 하니 임금을 자제해달라고 호소할 것인가? 부동산 투자 등으로 가계의 부채가 충분히 많아진 상황에서 여기에 대한 이자비용 증가를 통해서 소비를 위축시키자고 할 것인가?
호민관의 7월 선택은 이리저리 좀 궁색한 것 같다. 미국의 버냉키도 한 달 만에 발표내용을 바꿀 정도로 경제가 불확실하게 돌아가는 것이 사실이고, 중앙은행의 고민도 커지는 것은 사실이다. 한은의 고민과 그에 따른 정책적 선택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어째 지금 시점은 인플레를 향해 금리인상 칼을 호기롭게 뽑아야 할 때 같아 보이지만, 뭔가 모르게 좀 어색한 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