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A컵은 잉글랜드내 젊은 부호와 귀족들이 모여 중구난방이었던 축구 규칙을 정하고 자기들끼리 즐기면서 시작한 대회였다. 럭비만큼 거칠지는 않았지만 남자들이 몸을 맞부딪히면서 땀을 흘리고 우정을 나눈다는 의미가 컸다. 이런 ‘우정의 무대’에 뛰는 플레이어가 ‘돈을 밝히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극중 무대는 1879년, 노동자 축구팀 다웬FC가 준준결승에 오르면서 스토리가 시작된다. 돈이나 밝히는 천박한 노동자들이 만든 팀이 귀족들의 명문팀 올드 에토니언스에 도전을 하는 ‘큰 일’이 벌어졌다. 당시 팀의 에이스이자 뱅커(은행가)의 아들 아서 키네어드는 이들의 도전에 코웃음을 쳤다.
|
다웬FC에는 에이스 ‘퍼거스 수터’가 있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촌뜨기였던 수터는 패스 플레이를 할 줄 알았다. 초창기 축구에서 스코틀랜드는 ‘패스 연계 플레이’의 정석을 보여주며 축구를 한층 발전시키고 있었다. 수터는 그런 스코틀랜드의 에이스이자 최초의 프로 축구 선수였다.
극 스토리는 우리가 흔하게 봐왔던 ‘스포츠드라마의 엔딩’을 그대로 따라간다. ‘가난한 주인공 수터는 숱한 난관에도 이를 해치고 잉글랜드 축구계 정상에 오른다. 무시받고 천대받던 노동자 축구팀은 콧대 높은 귀족 축구팀을 꺾고 FA컵 정상에 오른다. 최고가 된 수터와, 수터를 보면서 ’각성‘한 아서는 우정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주목할 부분은 시대적 배경이다. 근대 축구가 시작했던 1870년대는 대불황의 시기가 시작하던 때였다. 이탈리아 사회학자 조반나 아리기 등 여러 사회·경제학자들은 1873년부터 1896년까지 약 23년간을 ‘대불황기’로 규정하고 있다. 1930년대 경제대공황 전 최초의 글로벌경기침체 시기였다.
|
생산력의 향상은 필연적으로 비용 절감을 가져오게 된다. 가장 쉬운 방법은 지치지 않는 기계를 가져다 놓는 것이다. 수십에서 수백에 이르는 노동자들에게 급여를 주지 않고도 거의 무한으로 돌릴 수 있다. 물론 전기와 재료, 소수의 관리자가 필요하긴 하다.
조반나 아리기의 사회학저서 ‘장기20세기’(영문명 The Long Twentieth Century)를 보면 한 통계가 나온다. 1813년 영국의 방직 산업에는 20만명 이상의 수동 직기 직공이 있었다. 1860년이 되면 40만개의 동력직기가 가동하게 된다. 수동 직기 직공은 사라진다.
수십년에 걸친 변화지만 기술의 발전은 새로운 산업을 낳지만, 기존 산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효과를 낳는다. 기술의 발전과 생산 효율성의 상승이 일자리 숫자에는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19세기 말 노동자들이나 21세기 월급을 받아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이나, 그들이 맞부딪히는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
19세기 노동자들은 기계의 발달에 따른 일자리의 상실을, 21세기 노동자들은 인공지능과 로봇의 발달로 할 일을 잃을 것이라는 우려를 하고 있다.
|
다웬FC 선수들은 방직공장 노동자들이기도 했다. 드라마에서 다웬FC 구단주는 선량한 중소 자본가라고는 나오긴 한다. 그렇다고 해도 그의 선수들은 낮에는 방직공장에서 일해야 한다. 쉬는 날 혹은 공장주가 특별히 연습 시간을 부여할 때 축구를 할 수 있었다. 귀족들 입장에서는 이런 가난한 이들과 한 운동장에서 똑같은 룰을 적용해 게임을 해야한다는 것 자체가 못마땅했다.
그러던 중 이들의 경기력이 급속히 떨어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영국 섬유산업의 업황 부진 때문이었다. 물건이 팔리지 않자 공장주들은 임금을 삭감하기로 결의한다. 공장주들의 길드에서 ‘10% 삭감합니다. 땅땅땅’하면 끝이었다.
왜 영국의 섬유 산업은 업황 부진에 빠졌을까. 앞서 언급했다시피 기술의 발전은 생산량의 증가를 불러온다. 수요 이상의 공급이 시장에 들어올 수 있다는 얘기다. 과잉 생산에 따른 수요 부족을 겪게 된다.
공급되는 물품은 많은 데 사줄 사람은 한정돼 있으니 물건은 남게 된다. 게다가 그 물건을 사줄 사람들 중에는 일자리를 잃어 구매력이 현저히 떨어진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시장에 물건이 남아돌게 된다. 다시 말해 그 재화를 덤핑해서 팔거나, 그렇지 않으면 공장이 문을 닫아야한다. 디플레이션이라는 악순환의 시작이다.
만성적인 수요 상황에서 경쟁국들의 도전까지 받게 되니 영국 경제는 휘청일 수 밖에 없다. 새로운 수요를 찾아 식민지를 개척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디플레이션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실제 이 시기는 서구 열강들의 식민지 쟁탈전이 극에 달했던 때다. 이 쟁탈전은 후에 1차 세계대전의 단초가 된다. (1차대전을 사실상 일으켰던 독일 입장에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한 식민지가 없었다. 남이 가진 것을 빼앗는 수 밖에 없었다.)
대불황기였던 1873년부터 1896년까지 영국은 물가 하락을 피하지 못했다. 이 기간 영국의 물가가 40% 하락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 때 또 한가지 특징점이 있다. 영국 주도의 국제 질서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서구 유럽 세계에서는 미국과 독일의 도전에,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부상에 직면했다. 1873년부터 1896년까지 겪었던 대불황은 이런 체계 변화를 가속화시켜줬다.
1873~1896년 대불황이 우리에게 갖는 의미는 분명하다. 호황과 불황으로 이어지는 경제 순환의 구조는 19세기나 21세기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경제 순환기 속에 국제적인 질서가 바뀐다는 점이다.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는 구조적인 장기 침체에 들어와 있다. 가장 큰 요인은 수요 부진이다. 기업들이 생산하는 재화를 소비자들이 전부 사줄 수 없다. 시장에 공급이 남아도니, 기업이 생산한 물건의 가격은 더 떨어질 수 밖에 없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기술 발전에 따른 고용없는 성장은,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더 떨어뜨리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월급이 오르지 않거나, 혹은 깎인 상태에서 일을 해야하는데, 더 소비를 늘릴 수 있겠는가.)
작금의 국제 현실도 19세기 영국 상황과 비슷하다. 그때 영국은 미국과 독일의 도전을 받았지만, 21세기 미국은 중국의 도전을 받고 있다.
미국의 20세기 도전자였던 소련은 광대한 영토와 국방력을 갖고 있었지만 경제력 면에서는 한계가 있었다. 또다른 20세기 도전자 일본은 우수한 제조업 역량을 갖고 있었지만 국방력과 국제적인 영향력면에서 미국에 상대가 안됐다.
그런데 중국은 광대한 영토에 엄청난 인구, 제조업 역량까지 갖추고 있다. 최근에는 국방력까지 신장하고 있다. 이전 도전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도 사실이다. 미국과 중국 간의 다툼이 단순한 ‘투닥거리’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여기에 있다.
|
그런데 진짜 승자는 아서 키네어드가 아닐까. 그는 드라마 상 게임에서는 졌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영국 프로축구를 지배했다. 20세기초까지 FA 회장을 하면서 축구계를 쥐락 펴락했다.
이런 아서의 모습은 몰락하는 영국 제조업, 노동자들의 현실과는 대비가 된다. 금융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영국의 당대 현실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면서도 금융요법(제로금리, 양적완호)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최근의 구조적 불황과도 맞닿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