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손의연 기자] 직장인이 된 후 맞는 여섯 번째 설 명절. 서울에 사는 쥐띠 김지혜(36)씨는 ‘명절 대피처’로 3박 5일 해외여행을 선택했다. 일찌감치 베트남 다낭행 티켓을 예약해놨다.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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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설, 오랜만에 고향집을 찾았다가 ‘잔소리 폭탄’을 맞았다. “시집은 안 가냐”, “지금 결혼 안 하면 애기는 언제 낳냐”, “누구는 너랑 동갑인데 아들이 벌써 초등학생이더라”. 같이 사는 부모님도 가만 있는데 왜 친척들이 나서서 잔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
설 연휴에 큰집 대신 해외여행을 가겠다는 말에 부모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의외의 반응이었다. 친척들이 나에게 뭐라고 하는 것이 싫어서 그러시는 건가 눈치가 보이기도 했지만 일단은 떠나기로 했다.
회사에서 김씨와 비슷한 또래들은 ‘명절에 시댁 가기 싫다’, ‘결혼 후 명절이 피곤하다’, ‘차 막히는 게 싫다’고 입을 모았지만 남의 일로 느껴졌다.
김씨는 설 명절 교통체증을 걱정하는 대신 베트남 맛집을 찾아보면서 연휴가 오기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 중이다. 쌀국수와 반미, 반쎄오 같은 평소 좋아하던 베트남 음식을 현지에서 맛볼 생각을 하니 업무도 힘들지 않다.
‘인생샷’을 위해 인피니트 풀(끝없이 이어져 보이는 풀장)이 있는 호텔을 선택했다. 하루 정도는 수영을 즐기면서 호텔 바도 이용하는 ‘호캉스’를 할 생각이다. 평소 좋아하던 최승자 시인의 시집도 챙겨가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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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우(36)씨는 결혼 후 두 번째 맞는 명절을 앞두고 벌써부터 골치가 아프다. 결혼을 하고 나니 명절 스트레스가 절로 생긴다.
작년 추석 때 아내와 첫 부부싸움을 했다. 지방에 있는 본가에서 하루 자고 설날 오후 늦게까지 시간을 보내다 보니 아내의 친정인 경기도 OO시에 늦게 도착했다. 아내가 “다음엔 우리 집부터 갈 거지?”라고 물었지만 대답을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그간 형과 형수를 봐왔다. 부모님이 설 전날에 며느리가 와야 한다고 생각하실 게 뻔했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설 연휴가 다가올수록 부부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흐르는 것 같다. 결혼 전 명절 연휴 때 싸웠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남의 일일 거라 생각했는데 직접 겪어보니 더하다.
연휴 기간 드는 비용도 골칫거리다. 결혼 전엔 연휴 때 술값만 썼는데 이젠 돈이 훨씬 많이 든다. 가장의 무게인가. 결혼하며 대출을 받아 전세집을 마련했다. 허리띠 졸라매고 사느라 힘든데 지난 추석 때 70만원 넘는 비용이 들었다. 서울에서 경상도로, 강원도로 가는 연비부터가 적지 않다. 양가에 빈 손으로 갈 수도 없다. 선물을 챙기거나 용돈을 얼마라도 드려야 하는데 이번 설엔 얼마나 드려야 적절한 지 모르겠다.
이젠 집안에서 어엿한 어른이니 세배도 받아야 한다. 아래에 있는 동생과 조카들에게 빠짐없이 용돈을 줘야 하기 때문에 추석 때보다 돈이 더 나갈 것 같다. 얼마 전에 사촌동생이 좋은 대학교에 붙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른 형제들이 주는 돈이랑 비슷하게는 줘야 면이 설 텐데. 그 밑에 줄줄이 달린 다른 사촌동생들과 조카들까지 신경 쓰인다. 처가에도 아내의 조카들이 있으니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아내에게 뭐라고 입을 떼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