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완 매일홀딩스(매일유업 지주사) 회장은 “지난 50년은 도전과 창의의 연속이었다”면서 “앞으로 다가올 미래는 위대한 내일을 여는, 또 한 번의 시간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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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유업은 근대화가 한창이던 1969년 한국낙농가공주식회사(매일유업 전신)로 출범했다. 함경도 실향민 출신으로 자수성가한 고(故) 김복용 매일유업 회장이 50%, 정부가 50% 출자해 설립했다. 당시 김복용 회장은 민간주주 형태로 참여했다.
1971년 김 회장은 한국낙농가공 사장으로 경영권을 확보했다. 경영권 확보 후 그가 제일 처음 한 일은 젖소 확보였다. 김 회장은 국제개발협회(IDA) 차관을 빌려 1972년에는 배편으로, 1973년 이후에는 비행기로 젖소를 수입해 농가에 입식했다. 당시 3년간 김 회장이 수입한 젖소는 5000두가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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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우유’ 브랜드를 달고 나온 첫 제품은 전지분유였다. 전지분유는 우유를 그대로 건조시켜 분말 형태로 만든 우유 가루다. 물을 부으면 다시 우유로 환원되는 제품다. 요새 먹는 흰 우유와 비교해 맛과 신선도가 떨어지지만 운송과 보관이 편했다.
1974년부터는 조제분유를 본격 생산·시판했다. 당시 신생아 수가 연 100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분유에 대한 수요는 높았다. 국민 건강을 위해서라도 양질의 분유는 필요했다. 김 회장은 “단 한 명의 아이도 건강한 삶에서 소외되어서는 안 된다”며 분유 생산에 박차를 가했다.
1980년 3월 김 회장은 회사 이름은 ‘매일유업주식회사’로 개명했다. 이후 선진국 낙농 기술을 따라잡기 위한 수순에 들어갔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네덜란드와 뉴질랜드, 독일 등 낙농선진국 기업들과 제휴하고 요구르트 등 고급 유제품을 생산했다. 1989년에는 방글라데시와 북 예맨에 아기용 조제분유를 수출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는 매일유업의 고속성장기였다. 1998년에는 유가공협회 회원사 중 매출 1위(4341억원)을 달성했다. 커피 사업에도 뛰어드는 등 유제품을 중심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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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50년…“진정성 있는 제품만 살아남아”
지난해 매일홀딩스는 연결기준 매출 1조4907억원, 영업이익 670억원을 기록했다. 다만 성장세는 둔화된 상태다. 2016년 매출 1조6221억원 찍은 후 감소세다. 주된 소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영유아·청소년 수가 감소하고 있는 원인이 크다.
김정완 매일홀딩스 회장은 지난 17일 기념식에서 진정성 있는 제품을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구 감소 시대에 그가 제시한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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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성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장(場)으로 김 회장은 상하농원을 꼽았다. 김 회장은 “상하농원은 농민들과의 상생을 통해 건강하고 맛있는 먹거리를 고객들에게 제공할 것”이라면서 “식품 영역에서 매일그룹의 새로운 성장 축을 담당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어 “6차 산업 모델로서 상하농원을 성공시키기 위해 또 하나의 도전을 이어가고자 한다”고 말했다.
뒤이어 김선희 매일유업 대표는 성인영양식과 가정간편식(HMR) 등 새로운 카테고리 진입 추진을 천명했다. 해외 사업을 강화하면서 수평적이고 창의적인 기업 문화 등도 구현하겠다고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