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장종원 기자] 1900년대 초에 활동했던 심리학자 칼 구스타브 융은 그의 성격발달이론에서 35~40세 전후로 ‘중년의 위기’가 찾아온다고 주장했다. 이 시기에 이른 사람은 외향적 목표와 야망이 그 의미를 잃고 내면으로 시선이 돌려지면서 정서적 혼란을 겪게 된다는 것이다.
등장한 지 100년이 넘은 이 이론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요즘 나이 마흔 즈음을 ‘중년의 사춘기’라고 부르는 것만 봐도 그렇다. 청소년·청년기를 거치면서 대학 진학, 취업, 결혼 등 성취해야 할 목표를 위해 정신없이 달려야 했던 이들이 중년에 접어들 때면 삶의 의미를 고민하기 시작한다. 1990년대 초 대학을 다닌 사람들에게 ‘중년의 위기’는 조금 더 심각하다.
김보아 중앙대병원 정신과 교수는 “지금의 40대 초반 중년들은 수학능력시험 도입, IMF 외환위기와 그에 따른 취업난, 2000년대 디지털 시대 등 급변하는 환경에서 에너지를 바깥으로 쏟다 이제는 ‘번 아웃’(탈진·소진)된 세대”고 말했다.
특히 이들 세대는 사회적 성취를 위해 직장과 사회에 ‘올인’하다 가족과 친구에게서 소외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들은 가족을 위해 온몸이 부서져라 일했건만 가족들에게서 외면받는 현실에 참담함을 느낀다. 가족을 떠나보낸 기러기 아빠가 실직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대표적이다.
김 교수는 “최근 들어 정신과를 찾는 중년이 많은데 대부분 자녀나 아내와의 갈등, 회사 동료와의 갈등 등이 이유”라며 “하지만 면담을 해보면 결국 중년의 위기 문제로 귀결된다”고 설명했다.
최근 ‘흔들리지 않고 피어나는 마흔은 없다’는 책을 낸 김병수 서울아산병원 정신과 교수는 90년대 초반 학번 세대를 ‘가치를 잃어버린 세대’라고 진단했다. 평생 직장 개념이 사라지면서 언제든지 구조조정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과, 줄어든 기회 속에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 없이 일에만 매진하면서 삶의 가치를 상실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가족으로부터 소외감을 느끼는 중년들은 자신의 일이 인생의 가치에 부합하는지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 일만 했다”고 지적했다. 돈만 많이 벌어오면, 사회적 성취가 높아지고 ‘가족의 화목’도 자연스레 따라올 것으로 착각하고 살았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중년의 스트레스와 정서적 혼란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보아 교수는 “개인적으로는 명상이나 이완요법이 도움이 되겠지만,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가정 및 직장내 갈등을 해결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김병수 교수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을 인식하고 각오도 다져야 한다”며 “자신의 삶과 하는 일에 가치를 부여하는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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