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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난 전투기와 70분간 사투…"민가피해 막으려 산으로"

최선 기자I 2013.10.19 13:02:09

추락 F-5E 전투기 조종사 이호준 대위 인터뷰

공군의 F-5E(일명 타이거Ⅱ) 전투기. (사진=연합뉴스)
[이데일리 최선 기자] 임관 8년차 공군장교 이호준(31·학군33기) 대위는 평소처럼 훈련에 나서기 위해 복장을 갖추고 F-5E 조종석에 올랐다. 정비사들과 굿사인(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우는 동작)을 한 뒤 이륙했다. 지난달 26일 오전 10시 48분의 일이었다.

하지만 조종간이 말을 듣지 않았다. 오른쪽 수평 꼬리날개 이상 때문에 조종간을 앞으로 밀어도 전투기 머리는 하늘을 향했다. 기체는 오른쪽으로 살짝 기울어진 채 치솟았다. 이 대위는 조종간을 오른쪽으로 틀어 전투기의 상승현상을 막아보려 애썼다.

이호준 대위. (사진=공군)
이 대위(사진)는 18일 <이데일리>와 전화통화에서 “당시에 너무 당황했다. 항공기 컨트럴이 평소와 달랐다. 훈련도 많이 했고 비상훈련도 했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며 “항공기 착륙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그렇게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이호준 대위는 민간인 피해를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평소에도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연습했다. 주변에는 청주시청, 대학, 과학단지 등이 있었다. 연료를 가득 채운 항공기가 추락하면 화재피해는 불을 보듯 뻔했다. 그가 이날 70분 동안 충북 청주 공군비행장 상공을 숱하게 선회한 이유는 연료를 모두 비운 뒤 탈출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비상상황에서도 침착할 수 있었던 이유는 F-5E전투기에 새로 교체된 비상탈출 좌석(사출시트) 덕분이었다. 이 대위는 “4차례 착륙을 시도했지만 어려웠다. ‘기왕 이렇게 된 것 비상탈출을 해보자’고 마음 먹었다. 시트도 개조됐고, 최대한 민가 쪽으로 가지 않도록 조종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공군의 F-5E전투기는 1970년대에 도입된 구식 항공기다. 사고 항공기의 경우 1978년에 도입돼 35년동안 6610시간을 비행했다. 1982년에 태어난 이 대위보다 네살이 많다.

하지만 비상탈출 좌석만큼은 달랐다. 공군은 지난해 3월부터 올해 5월까지 460여억원을 들여 F-5E의 모든 좌석을 국산 신형 좌석으로 교체했다. 대당 2억원이 넘는 좌석을 왜 교체해야 하느냐는 지적도 있었지만, 결국 이런 조치로 조종사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전투기 조종사 양성에는 한명당 평균 120억원 가량의 비용이 소요된다고 한다.

이 대위가 탈출을 시도하며 선회한 흔적. (사진=공군)

이 대위는 같은 F-5E를 몰고 옆을 지키던 이상택 소령(공사 49기)의 조언에 따라 전투기를 몰았다. 이 소령은 한 때 이 대위의 교관이기도 했다. 전투기 고개가 들려 앞을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이 대위가 믿을 것은 추적기로 자신을 쫓고 있는 선배 조종사의 지시 뿐이었다.

“탈출해도 좋다”는 사인이 떨어지자 이 대위는 기수를 산으로 향하게 한채 조종석에서 비상탈출했다. 비상탈출 시 강한 압력 때문에 이 대위는 기절했다가 낙하산이 펼쳐진 뒤에야 깨어났다. 그는 “이상하게 목이 마르더라. 떨어지는 중간에 조종을 해야 하는데 팔을 들기도 어려웠다. 몇 번 시도하다가 눈 앞이 깜깜해지면서 다시 정신을 잃었다”고 했다.

이 대위는 정신을 차린 뒤에서도 민가 피해를 걱정했다. “민가 피해는 없었습니까?” 다행히 민가 피해는 없었다. 긴급한 상황에도 기지를 발휘한 이 대위에 대해 공군은 표창을 내릴 계획이다. 사고 결과를 보고 받은 김관진 국방부 장관도 이 대위를 크게 칭찬했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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