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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고온천서 ''행방불명된 센과 치히로''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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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기자I 2007.09.13 10:40:00

일본 온천여행 - 마쓰야마

▲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이 됐던 바로 그곳, 도고온천 본관의 전경.

 
[조선일보 제공] 당신은 왜 떠나는가. 나는 종종, 그리워지고 싶어 떠난다. 그리움의 대상은 '지금 이곳'이 아닌 '그때 그곳'이다. 실핏줄 속에 기억이라는 이름의 은밀한 무늬로 각인되어 있는 곳. 그것이 다시는 돌이키지 못할 시간대임을 알기에 더 아련한지도 모른다. 시코쿠 에히메현의 작은 도시 마쓰야마에 들어서는 순간, 그 절대적인 시간의 개념이 휘청 흔들렸다.

마쓰야마 공항을 출발한 리무진 버스가 시내로 진입하자, 중·장년의 한국인 여행객들이 여기저기서 탄성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창 밖으로 펼쳐지는 고즈넉한 풍경들이, 그 동안 잊고 살아온 1960년대 서울 거리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리라. 도시를 구불구불 가로질러 이어진 전찻길. 몇 량 객실의 작고 오래된 전차는 이곳 시민들의 주된 이동수단이다. 일터로 나가는 현지주민들과 배낭을 멘 관광객들이 평화로운 모습으로 뒤섞여 뭉게뭉게 천천히 실려 간다. 


▲ 소설가 정이현

다음날 아침 일찍 찾아간 곳은 이시테지사. 홍법대사가 창시한 일본 전역의 88개 순례 코스 중 51번째 순서에 해당한다. 순례자들이 입은 흰 승복의 등판에 쓰인 '동행이인'이라는 글귀가 인상적이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홀로 걷지만 마음에 부처를 모시고 걷는다는 뜻도 되겠고, 홀로 걷지만 옆을 둘러보면 다른 순례자들이 함께 걷고 있다는 뜻도 될 것이다. 노인들뿐 아니라 20,30대 젊은이들도 적지 않다. 무엇을 구하고 또 버리기 위해 그들은 이토록 힘든 여정에 나선 것일까.

불단 앞에 선 이들이 소원을 빌기 위해 색색의 종이 학을 매달고 초에 불을 붙인다. 학업성취, 소원성취, 신체건강, 가내안전 등의 그 수많은 지복의 문구들 앞에서 단 하나 뭘 골라 들어야 할지 몰라 나는 몹시 당황했다. 내 속세의 욕망들이 허공에서 충돌하는 광경을 물끄러니 바라보았다. 여행이 던져주는 짧은 성찰의 찰나다.

마쓰야마의 자랑거리인 마쓰야마 성에 올라서면 생각보다 꽤 큰 규모의 시내 전경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몹시 아름답다는 봄날에 또 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 기분 좋을 정도의 산행을 끝낸 뒤 적당히 피로해진 몸을 담그기 위해 도고온천으로 향했다. 일본에서 가장 유서가 깊다는 도고온천 거리는 '봇짱(나쓰메 소세키 소설 '도련님'의 주인공) 시계탑'으로 시작된다. 한 시간에 한 번씩 '도련님'의 등장인물 캐릭터 인형들이 시계 속에서 튀어나와 짧은 공연을 벌이면, 유카타 차림으로 노천 족욕탕을 즐기던 사람들이 박수를 친다. 마쓰야마는 '도련님'의 실제 무대가 된 지역이며, 그에 대한 후대인들의 자부심이 충만하다. 도고온천 본관의 가장 전망 좋은 방을 '봇짱의 방'으로 지정해 놓았을 정도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모델이기도 한 도고온천은 수질이 좋기로 유명하다. 대중적인 '가미노유'와 고급스런 '다마노유'로 나눠지며 온천입욕과 차 서비스 등을 1시간에 걸쳐 받을 수 있다.

등산과 온천욕, 그 다음엔 시원한 맥주를 들이킬 차례임이 당연하다. 이 지역 맥주인 도고맥주 역시 봇짱, 마돈나, 소세키라는 유머러스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근처 특산물인 도미 한 마리를 넣어 지은 찰진 밥과 전갱이 회 등으로 구성된 온천 료칸의 가이세키 요리, 직접 재배한 소박한 야채들을 최고의 솜씨로 튀겨 내놓는 '이사다타미의 집'의 풋풋한 식탁, 밤 한 개가 통째로 들어있는 달콤한 '타르토 과자' 등도 마쓰야마에서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이다.

마쓰야마 시내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의 우치코초는 전쟁 전 옛 일본 읍내의 모습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곳으로 요즘 일본 내에서도 새로운 관광지로 각광 받는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의 고향이기도 한 이곳의 안내를 맡은 이는 70대의 구보씨. 자신이 오에 겐자부로의 동급생이었다고 자랑스레 또 조금은 수줍게 말했다. "학생 때 이미 그는 대단한 사람이었고, 나는 저 밑에서 근처에도 가지 못했지요." 그는 멀리서 온 손님들에게 마을 이곳 저곳을 하나라도 더 보여주기 위해 땀을 뻘뻘 흘렸고, 지나가다 동네 주민을 만나면 반가이 정담을 나누곤 했다. 30여 년 교사생활을 마치고 이곳에 돌아와 봉사하고 있다는 그의 노후가, 세계적으로 인정 받는 대작가의 그것에 비해 덜 행복하다고 그 누가 단정할 수 있을까. 해가 쨍쨍 내리쬐는 9월, 낯선 이국의 시골마을, 내가 결국 '사람'을 만나기 위하여 길 위에 서 있음을 다시 한 번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 (좌)이시테지절 입구의 종이학 (우)"봇짱"열차


▲ 우치코초에 있는 가부키 극장


▶ 여행수첩

아시아나 항공이 매주 화·금·일요일 인천-마쓰야마 직항을 운항한다. 공항서 시내까지 리무진 버스는 하차 지점에 따라 300(약 2500원)~450엔(3700원).

마쓰야마 젠닛쿠 호텔은 시내의 현대식 호텔. 1만6000엔(약 13만2000원). 81-89-933-5511 www.anahotelmatsuyama.com 호텔 야치요는 도고온천 지역에 있는 일본 전통 스타일의 호텔. 1박 1만1700엔(약 9만6000원·2인 기준) 81-89-947-8888 www.e-yachiyo.co.jp 호텔 가격은 기간에 따라 크게 변한다. 일본 호텔 예약 사이트 ‘라쿠텐 트래블(http://kr-travel.rakuten.com)’참고.

빈비야 본점(81-89-932-6506)은 엄청 큰 초밥으로 유명하다. 하레야(81-89-935-4488)는 ‘고쿠죠 스키야키’가 일품이다. 오케젠(www.dogobeer.co.jp/SHOP_NIKITATHU.html)은 맛깔진 술과 고즈넉한 분위기로 인기.

에히메 관광정보 사이트 www.pref.ehime.jp/izanai/kankou.html, 마쓰야마시 관광 컨벤션 협회 www.city-matsuyama.net/book/k/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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