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제공] 작년 2월 시작된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가 당초 예상보다 악화되면서 미국 경제가 침체의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다급해진 미국 정부는 지난 18일(현지시각) 1500억 달러 규모의 감세(減稅)를 골자로 한 경기부양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그날 미국 증시는 오히려 주가가 소폭 하락하는 등 차가운 반응을 보였다(기사 중 일부 발췌).
이제 얼마 후면 설입니다. 설을 기다리며 설레는 이유 중 하나가 아마도 오랜만에 친척들을 만나 이런 저런 밀린 얘기들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을 기대하는 것이겠지요. 게다가 이번 설날에는 주위 어른 분들께 얼마나 세뱃돈을 받을까 계산해보며 그 돈으로 뭘 할지 궁리해보는 것도 은근히 신나는 일일 테고요.
세뱃돈의 경제학
오늘 살펴볼 기사에서는 미국 정부가 돈을 풀어 경기를 부양시킨다고 발표했는데도, 시장의 즉각적인 반응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는 주가는 오히려 떨어졌다고 하는군요. 언뜻 생각해 보면 이해가 되지 않지요? 발표대로라면 소비자들의 형편도 그나마 좀 나아지고 경기가 조금이라도 살아날 테니 시장에서는 반겨야 할 텐데 말이지요.
다시 설날 세뱃돈 얘기로 돌아가 볼까요? 여러분이 이번 설에 할아버지께서 세뱃돈으로 몇 만원은 주실 것으로 기대하고, 최신형 MP3플레이어를 살 계획을 세워 두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세배 드린 후에도 할아버지는 "그래, 올해도 건강하거라"라는 덕담만 해주신다든지, 할머니는 세뱃돈으로 1만원짜리 한 장만 주시면 어떨까요. 물론 '고맙습니다' 하며 받으면서도 한편으로 마음 한구석으로는 실망감이 들 수 있겠지요. 기대하고 있었던 MP3플레이어를 사기에는 아직 많이 모자라니까요.
자, 이제 둘 간의 공통점을 간단히 생각해 보면, 바로 경제적인 지원이 있긴 했지만, 그 정도가 기대했던 것만큼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그에 따라 실망감이 나타난 셈이고요.
경제 주체들의 기대심리
흔히들 "경제는 심리다"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하지요? 심리의 상당 부분은 기업이나 소비자가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 하는 것과 관련이 되어 있습니다. '기대' 그 자체가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 한두 달 동안 아파트 가격이 약간 올랐다고 합시다. 집을 장만하려던 계획이 있던 사람들 중 앞으로 집값이 더 오르리라고 기대하는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오르기 전에 미리 사놓아야겠다"고 생각해서 집을 살 겁니다.
이런 '기대로 인한' 추가 수요는 추가적인 가격상승을 부추기게 되겠죠.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아파트 시장에서 전반적으로 집값이 상승하리라는 '기대심리'가 형성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기에다 매매차익을 챙기려는 투기꾼까지 가세한다면, 아파트 입지여건은 그대로인데 아파트 가격은 천정부지로 상승하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기대는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자, 그럼 이러한 기대는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는 걸까요? 여러분이 매일 아침 7시쯤 집 앞에 오는 시내버스로 학교에 간다고 해 봅시다. 지난주까지 7시쯤에 오던 버스가 어제, 오늘 연달아 20여분이나 늦게 와서 지각을 할 뻔했습니다. 그럼 내일은 버스가 언제쯤 올 것으로 기대해야 할까요?
첫 번째 방법은 지난주 버스 온 시간(7시)과 지난 이틀 버스가 온 시간(7시 20분)을 적당히 평균 내어 그 중간인 7시 10분쯤에 올 것이라고 예상하는 겁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새로운 정보가 없나 확인해 보는 것이지요. 혹시 배차 시간이 바뀌었는지 알아보는 겁니다. 배차 시간이 바뀌었다면 새로운 버스 시간표에 따라 계획을 세워야 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하루 이틀 늦게 올 수도 있지" 생각하며 버스 시간은 그대로 7시라고 기대하는 것이지요.
사람심리라는 것이 참 묘한 만큼 이를 연구하는 작업이 만만치는 않습니다. 복잡하게 보이는 경제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심리나 기대까지 다 고려해야 한다니 경제를 이해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경제학자는 경제학자인 동시에 수학자, 정치학자, 그리고 심리학자여야 한다는, 즉 일종의 만능 재주꾼이 되어야 한다는 말도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