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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이 다른 경험…” 99년만의 美개기일식 체험해보니

김형욱 기자I 2017.08.23 07:24:49

천문동아리 출신 부부 1년 기다려 마주한 '짜릿한 2분'
관람 위해 10만명 이상 몰린 오레곤주 도로 완전 마비

21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오레곤 주에서 촬영한 개기일식 모습. (사진제공=최모씨)


[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이 글은 대학 천문동아리에서 만난 서른둘 동갑내기 부부(통신사 근무 이모씨·항공사 근무 최모씨)가 21일(현지시간) 미국에서 개기일식을 본 직후 전한 이야기를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와아아. 미쳤다. 미쳤어. 32년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자극이야. 차원이 달라.” 남편(최모씨)이 어린 애처럼 방방 뛰며 말했다. 내(이모씨) 심정도 똑같았다. 말문이 막히고 그저 탄성밖에 안 나왔다. 태양이 거짓말처럼 사라진 2분이 찰나처럼 지나갔다. 지금까지 한 모든 고생이 다 보상받는 느낌. 2년 전 본 빛의 향연 오로라도 멋있었지만 개기일식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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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기일식은 한낮에 달이 태양을 가리는 현상이다. 전 세계적으론 1~2년에 한 번꼴로 일어나지만 관측이 쉽진 않다. 그 장소, 그 시간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개기일식 관측 가능 지역은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대양이나 오지, 그것도 반경 100㎞ 내외다. 우리나라 근처에선 2035년 9월2일. 18년 뒤에 볼 수 있다. 태양 일부가 가려지는 부분일식은 상대적으로 흔하다. 그러나 느껴지는 감동은 하늘과 땅 차이다. 태양은 워낙 밝아서 99%가 가려져도 하늘이 어두워지지 않는다.



우리 부부에게 천체 관측은 일상이었다. 대학 초년생 천문동아리에서 만나 10년지기 친구, 연인, 부부가 되기까지 우주는 우리 삶을 이어주는 ‘오작교’였다. 신혼여행도 칠레의 세계 최대 천문대 파라날에 다녀왔다. 결혼 전이든 후든 우리의 여행은 으레 어디서 무슨 별을 찍을까 하는 것 정도의 선택지뿐이었다.

그런 우리의 버킷 리스트는 당연히 3대 우주쇼를 모두 보는 것이었다. 개기일식, 오로라, 대유성우(大流星雨). 이중 오로라는 이미 봤다. 결혼 3개월 전 2015년 12월에 캐나다 엘로나이프로 가서 봤다. 원랜 나 혼자 세운 계획인데 연인이 되며 남편도 자연스레 합류했다.

이-최씨 부부가 21일(현지시간)개기일식을 보기 위해 미국 오레곤 주 세일럼으로 향하던 중 석양 위로 떠오른 북두칠성을 배경으로 찍은 기념사진 모습.
1년 전 미국에서 개기일식이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때마침 1년 후 8월 말. 여름휴가철이었다. 신랑은 반년 넘게 회사 눈치 본 끝에 이날에 맞춰 여름휴가를 낼 수 있었다. 나도 간신히 그에 맞춰 연차를 쓸 수 있었다. 그래서 17~23일 일정으로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우리가 원한 길이지만 2분 남짓 개기일식을 보는 여정은 만만찮았다. 한달 전 정한 최적 장소는 미 서부 오레곤 주(州)의 주도 세일럼(Salem)의 도청. 미국 내 개기일식이 시작되는 지점이었다. 신중히 선정했지만 마지막까지 확신할 수 없었다. 지역별 일기예보까지 꼼꼼히 체크했다. 숙소 시애틀에서 직선거리로 4~5시간. 가던 중 통신 전파가 안 잡혀서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이 불통이 돼 헤매기도 했다. 차도 막혔다. 끼니는 미리 사 놓은 샌드위치로 때웠다. 나중에 들었지만 미 본토 내 일식이 99년 만이다 보니 미 전역이 들끓었다고 한다. 최고의 관람 장소로 꼽힌 곳은 1년 전부터 숙소가 동났단다.

현지 개기일식 예정 시각은 21일 오전 10시반(한국시간 22일 새벽 2시반). 우린 새벽 3시께 도착해 세 시간 정도 눈을 붙였다. 이곳 인근에도 이미 차량이 빼곡했다. 대부분 개기일식을 보기 위한 차량이었다.

21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오레곤 주에서 개기일식을 보러 모여든 사람들 모습.
최씨가 21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오레곤 주에서 개기일식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세팅하고 있다.


2분. 다행히 구름 한점 없는 맑은 하늘 아래 온전한 개기일식을 경험했다. 남편의 600㎜ 렌즈는 행여나 앵글을 놓칠까 연신 셔터를 눌렀고 나는 2분 내내 ‘와’ 하는 탄성만 질렀다.

잠깐의 황홀경을 맛본 후 돌아가는 길. 이는 올 때보다 더 고역이었다. 개기일식 인파에 차가 꼼짝도 안 했다. 그 탓에 4~5시간이면 되는 돌아가는 길은 결국 12시간이 넘게 걸렸다. 나중에 이 지역에만 10만명의 인파가 한꺼번에 몰렸다는 걸 알았다. 우린 그래도 그때의 여운을 되새기며 ‘이제 대유성우만 보면 3대 우주쇼는 다 본다’며 씩씩하게 돌아갔다.

돌아오는 길에 페이스북을 보니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도 개기일식 사진을 올렸다. 정말 미국인 모두에게 관심사였나보다. 이날 개기일식은 미 대륙을 약 1시간40분에 걸쳐 횡단했다. 미국인은 ‘태양계의 슈퍼볼’이라며 열광했고 미국 주요 방송은 일제히 이 장면을 생중계했다. AP통신은 “이번 개기일식은 역사상 가장 많이 관측된, 그리고 가장 많이 촬영된 천체 현상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전했다.

21일(현지시간) 미국 오레곤 주에는 개기일식을 보기 위해 10만명이 넘는 인파가 몰리며 주요 도로가 꽉 막혔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가 개기일식 후 올린 글. (출처=저커버그 페이스북 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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