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산업 시대에 본격적으로 접어들면서 전력수요도 기하급수로 늘어나고 있다. 세계 각국이 ‘값싸고 질 좋은’ 전력의 안정적인 생산 공급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전력산업의 이면에서 보이지 않는 중요한 축 하나가 송전기술이다. 전력산업을 흔히 ‘배달산업’이라고 하는 것도 전력은 생산만이 문제가 아니라 오지에서 발전한 전기를 대규모 수요처로 원거리 송전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송전기술이 무너지다시피 한 상황이다. 특히 발전소에서 생산한 교류(AC) 전력을 고전압 직류(DC)로 바꿔 멀리까지 효율적으로 보내는 초고압직류송전(HVDC)은 연구인력이 없어 기술의 명맥이 끊겼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KAIST에는 이 기술을 가르칠 교수가 없다고 한다. 심지어 교수 충원도 안 될 정도로 국내에선 기술 인력이 없다는 것이다. 공학 연구자도 대개 인기가 높은 전자와 반도체, 컴퓨터로 쏠렸기 때문이다. 근래에는 그나마도 우수 인력이 의대로 대거 몰려가는 게 반복되는 현실이다.
HVDC 기술 및 설비는 히타치(일본) 지멘스(독일) 제너널일렉트릭(미국) 등 3사가 세계 시장의 9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지금처럼 계속되면 국내 전력산업은 심각한 구조적 취약점을 안게 된다. 전력의 수요변화에 맞춰 효율적인 변압기 기술조차 따라가지 못한다면 정부가 역설해 온 서해안 에너지 고속도로도 끝까지 제대로 추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100년 이상 표준이나 원리, 구조가 변하지 않는 ‘전통 공학’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AI 시대에 반도체가 먼저 주목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충분한 전력 공급 없이는 AI 데이터 등 첨단산업도 사상누각이다. 선진 각국과 미국 중국 등지의 빅테크들이 앞장서 데이터센터 등 AI 인프라 구축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붓지만, 이를 위해서는 최고급 변압기의 설계 및 제조 기술도 필수다. 전통의 레거시 공학의 뒷받침은 갈수록 더 중요해진다. 송전기술 만이 아니다. ‘유행’을 쫓아가지 못하는 기초 공학도 잘 육성해야 한다. 국가 R&D 예산은 내년에도 35조 3000억원이나 된다. 부족한 재정에서 이렇듯 매년 수십조원씩 지출하는 이 돈은 다 어디에 쓰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