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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체 게바라, 에비타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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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주 기자I 2011.12.23 10:08:10

뮤지컬 `에비타`
서른셋에 요절한 아르헨티나 국모
"요부냐 성녀냐" 영욕의 삶 저울질

이데일리신문 | 이 기사는 이데일리신문 2011년 12월 23일자 37면에 게재됐습니다.

▲ 뮤지컬 `에비타`(사진=설앤컴퍼니)

[이데일리 오현주 기자] 1952년 7월26일 아르헨티나가 비통에 젖어 있다. 아르헨티나는 이날 `내가 바로 아르헨티나`라고 말하던 한 여인을 잃었다. 대통령 후안 페론의 영부인 에바 페론이다. 처연한 트럼펫 선율이 영결식장을 휘감는다. 후안 페론이 관 위에 국화 한 송이를 올리자 광적인 애도는 더욱 고조된다. “에비타, 에비타~.”

그때 불현듯 한 남자가 나타난다. 그는 도통 그런 분위기가 이해가 되지 않는 듯한 표정과 몸짓으로 무대를 휘젓고 다닌다. 적나라한 힐난도 감추지 않는다. `누릴 것은 다 누린 여왕 덕에 우린 더 피폐해졌다`는 거다. 그리고 시간은 순식간에 거꾸로 돈다. 1934년 15살의 에바가 보인다.

뮤지컬 `에비타`는 에바 페론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이다. 가난한 사생아로 태어나 삼류배우를 거쳐 일약 퍼스트레이디까지 꿰찬 그다. 드라마틱한 인생은 33살 짧은 생애를 마치면서 절정에 달했다. 하지만 평가는 엇갈렸다. 성공의 발판으로 남자들을 이용했다는 비난은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그럼에도 비천한 출신을 다 드러낸 채 마치 국민의 대변인처럼 상류층에 독설을 날리는 정치력은 서민들의 희망이 됐다.

흥미로운 건 작품이 취한 독특한 설정이다. 에바 페론을 체 게바라와 조우케 한 것이다. 현대사를 풍미한 실존인물을 다루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가지를 치든 포장을 하든 어느 한쪽에 서게 될 수밖에 없는 탓이다. 실제 에바 페론을 만난 적도 없다는 혁명가 체 게바라를 등장시킨 건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작품의 포석으로 읽힌다. 체 게바라는 수시로 에바 페론의 삶을 기웃거리며 요부와 성녀라는 극단에 걸쳐 있는 그를 저울질한다. 해설자인 동시에 상징. 체 게바라는 에바 페론의 사랑과 야망을 몰아세우면서도 그와 탱고를 함께 추고, 그가 생을 마친 무대에서 함께 퇴장한다.

▲ 뮤지컬 `에비타`(사진=설앤컴퍼니)

1978년 웨스트엔드에서 초연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캣츠`의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와 `아이다` `라이언 킹` 등을 작사한 팀 라이스의 결합만으로도 화제가 됐다. 국내선 2006년 초연했다. 5년 만의 작품엔 뮤지컬 `서편제` `광화문연가`의 이지나 연출이 나섰다. 무대장치를 간결하게 바꾸고 조명과 음악의 비중을 높였다. 에바 페론 역에 정선아와 리사를 캐스팅하고, 체 게바라엔 이지훈과 임병근, 후안 페론에는 박상원과 박상진을 세웠다.

승패는 에바 페론 그 자체에 걸었다. 바꿔 말하면 다른 인물들은 그 아우라에 빛을 잃을 수밖에 없는 구조란 얘기다. 앙상블은 물론 후안 페론까지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겉도는 모양은 극의 설정이자 약점이 됐다. 그럼에도 작품의 가치가 유지되는 건 음악의 힘이다. 대사 없이 노래로만 진행되는 송스루 형식은 `아르헨티나여, 나를 위해 울지 마오(Don't Cry for Me Argentina)`를 변주한 넘버만으로도 부족함이 없다.

에바 페론의 삶이 그랬던 것처럼 작품에 대한 반응도 엇갈릴 수밖에 없게 됐다.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서다. 내년 1월29일까지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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