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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멱칼럼]뒤집힌 인구 피라미드 속 위기와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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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영 기자I 2025.06.18 05:00:00

최희정 웰에이징연구소 대표 기고
전례 없는 고령화 속도…복지재정 부담·갈등 키워
디지털 헬스케어·실버금융·돌봄 연계 거주 등 성장
신산업 성장의 기회 되기도

[최희정 ㈜웰에이징연구소 대표] “피라미드가 뒤집혔다.”

과장된 말이 아니다. 한국은 지난해 말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2035년에는 인구 절반이 50대 이상으로 채워진다. 전 세계적으로도 이처럼 빠른 전환 속도는 이례적이다.

이것은 단순히 고령자가 늘어난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주거, 노동, 복지, 산업 등 사회 전반의 시스템을 새롭게 설계해야 하는 구조적 변화다. 필자가 그동안 고령자 주거, 디지털 헬스케어, 치매 돌봄, 웰에이징을 논의해 온 이유도 이 변화의 실체를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기 위해서다.

인구 변화의 충격은 노동시장에서 가장 먼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생산 가능 인구가 줄어 드는 현상은 점점 구조화하고 있다. 청년층을 더 확보하는 방식만으로는 풀 수 없는 문제다. 이 공백을 메우기 위해 인공지능(AI), 로봇, 자동화 같은 기술 기반 시스템이 산업 전반으로 확산하고 있다.

특히 돌봄과 의료 분야는 고령화의 직접적 영향을 받고 있다. 장기요양 수요는 빠르게 늘어나지만 요양보호사와 간병 인력 확보는 한계에 부닥치고 있다. 일본은 복지로봇과 원격 모니터링 기술을 현장에 적극 도입하고 있으며 한국도 스마트홈 기반 모니터링 시스템과 AI 위험감지 서비스가 일부 시범적으로 도입됐다. 기술은 단순한 보조가 아니라 돌봄체계 전체를 새롭게 짜는 핵심축이 되고 있다.

산업구조도 빠르게 재편하고 있다. 고령층은 복지의 수혜자만이 아니다. 금융, 헬스케어, 문화, 교육, 관광 등에서 액티브 시니어를 겨냥한 시장이 성장하고 있다. 일정 수준의 경제력과 소비력을 갖춘 고령층이 경제활동의 한 축으로 자리 잡는 흐름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

‘어디서, 어떻게 나이 들 것인가’는 이제 개인과 사회 모두의 질문이 됐다. 다세대 가족 중심의 전통적 주거 모델은 빠르게 해체되고 있다. 1~2인 가구가 전체의 약 60%를 차지하는 시대가 이미 도래했다. 특히 홀몸노인 가구 증가는 주요한 정책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 속에서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 개념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노인이 거주하던 지역사회 안에서 자율성과 존엄을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주거, 의료, 돌봄이 통합적으로 지원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일본의 서비스형 고령자주택, 대학 연계형 복합 커뮤니티(UBRC), 일부 고급 실버타운은 이미 이러한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도 보다 세분화한 주거 모델이 요구된다. 공공임대만으로는 부족하다. 민간의 서비스형 주택, 스마트홈 재가돌봄, 프라이비트 레지던스 등 다양한 모델이 함께 성장해야 한다.

특히 주거와 의료·돌봄이 통합된 지역 기반 통합돌봄 시스템은 단순한 돌봄 제공을 넘어 고령자의 건강수명을 연장하고 기능 저하 속도를 늦추는 중요한 예방적 기반이 될 수 있다. 초기에는 생활지원과 건강관리 중심으로 시작하고 시간이 흐르며 장기요양 서비스로 자연스럽게 연계되는 단계적 지원 체계가 필요하다. 이러한 통합 모델은 초고령사회에서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핵심 인프라다.

스마트홈 기반 비대면 건강관리와 커뮤니티 연계 프로그램 역시 돌봄 공백을 보완하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뒤집힌 인구 피라미드는 복지 재정에도 직접적 압박을 주고 있다. 국민연금, 건강보험, 장기요양보험 등 사회보험은 기본적으로 ‘다수가 소수를 부양하는 구조’를 전제로 설계돼 왔다. 하지만 이제는 ‘소수가 다수를 부양해야 하는’ 시대로 전환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50년 이후 국민연금 적립기금 소진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고 건강보험도 의료비 지출 증가로 적자가 확대되고 있다. 보험료 인상이나 국고 지원만으로는 어렵다. 결국 사회보험 구조조정과 복지 지출 재편이 불가피하다.

저출산 대응을 위한 보육·출산장려 정책과 고령자 복지 확충이 동시에 필요해 재정운용의 균형을 맞추는 것도 쉽지 않다. 이민정책이나 외국인 노동력 활용 논의도 점차 확대되고 있지만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한 긴 숙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처럼 역전된 인구구조는 위기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만들어 내고 있다. 고령자 맞춤형 금융상품, 헬스케어 리츠, 고급형 실버타운, AI 기반 재가 헬스케어, 스마트 돌봄 시스템 등은 이미 새로운 산업 영역으로 확장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의 발전은 고령자의 삶을 실질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데이터 기반 건강관리, AI 진단보조, 원격의료, 커뮤니티 연계 프로그램은 단순한 의료비 절감을 넘어 ‘내 삶을 스스로 관리하는 노년’을 현실화시키고 있다.

한국은 지금 전례 없는 속도로 인구구조가 전환되는 한복판에 있다. 우리가 지금 어떤 정책과 시스템을 선택하느냐가 앞으로 수십 년 한국사회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돌봄, 주거, 노동, 복지, 산업구조까지 새롭게 설계해야 한다. 결국 본질은 ‘어떤 구조를 어떻게 새롭게 설계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질서와 시스템의 문제다. 우리는 지금, 오랜 시간 한국 사회를 지탱해온 익숙한 균형이 서서히 바뀌어 가는 전환점 위에 서 있다. 이 변화의 물결을 어떻게 설계하고 조율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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