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인지 코리아]이필상 전 총장 "교육은 실패‥공교육 투자 확 늘려라"

장순원 기자I 2017.01.25 07:23:36

국가가 교육 책임지는 시스템 갖춰야
현 경제구조 수명 다해‥신산업 육성
올해 경제 죽느냐사느냐 갈림길 설수도
공무원이 중심 잡아야‥황권환대행 역할 커

[이데일리 장순원 기자] “한국의 교육 제도는 극소수의 승자와 대다수의 패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한마디로 실패한 패러다임이다. 4년제 대학은 순수 학문 기관으로 유지하고, 실업고와 전문대 교육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이필상 전 고려대 총장(서울대 겸임교수)은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극소수의 승자를 만들기위해 모두를 패자로 만드는 현행 교육 제도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연대 의식과 단합을 파괴하는 암적 존재”라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서울 신림동 서울대 아세아연구소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그는 “기득권의 저항이 있더라도 교육 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교육을 포함해 우리 사회가 열린 구조가 돼야 하는데, 촛불의 함성으로 변화의 문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이필상 서울대학교 교수 인터뷰


◇국가가 교육문제 책임지는 사회

이 전 총장은 학벌과 대학 서열에 목을 매는 우리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한국의 학생들은 어렸을 때부터 일류 대학·일류 학과에 입학해야 한다는 강요를 받는다”면서 “이른바 SKY(서울, 연·고대)에 입학하면 승자라고 생각하지만, 같은 대학에서도 비인기 학과 학생은 인기 학과 학생을 보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능력이 중심이 아니라 학력이 중심이 된 사회가 됐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했다

이 전 총장은 “교육은 국가의 의무이며, 국가가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서열화나 학벌 사회를 뜯어고치려면 공교육이 개혁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교육이 죽었다고 얘기하는 것은 공교육에 투자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변명에 불과하다”면서 “서울 대치동으로 흐르는 돈을 공교육으로 돌리려면 정부가 재원을 마련해 집중 투자를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대학입시제도도 손을 봐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왜곡된 교육 제도에 대한 구체적인 개선책과 관련, 이 총장은 “우리는 전통적으로 직업교육을 등한시했다. 학벌이 아니라 능력있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로 가야 한다”면서 “실업고와 전문대 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4년제는 순수하게 학문하는 곳으로 남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대학생 수는 필요 이상의 공급 과잉 상태로 기업의 수요를 훌쩍 뛰어넘은 상태라는 것이다.

그는 대학을 나와도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현실에 대해 “대기업이 여력이 있으니 연구개발(R&D)이나 시장개척, 기술혁신 부서에 우수한 청년을 많이 채용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우리 젊은이들 지식수준이 높고 열정적인데 기회만 주면 세계시장에 먹힐 기술을 개발할 수 있을 것”라고 했다.

◇수출 대기업 중심 경제구조는 수명 다했다

오랜 기간 학자로서 우리 경제를 지켜봐 온 이 총장은 지금과 같은 수출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로는 경쟁력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1970~80년대 조선, 철강, 해운, 건설 같은 주력산업을 일으켜 지난 50년간 경제를 발전시켜왔는데 이제 역할이 한계에 다다랐다”면서 “해외 경제가 침체하는 가운데 중국의 추격을 받다 보니 덫에 걸린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산업도 생물처럼 진화해야 하지만 50년 동안 70~80년대 산업구조가 그대로 지속했다”면서 “정경유착을 뿌리로 하는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 속에서 경영권 세습 같은 기득권을 지키는 데 급급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 총장은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면서 변화의 활로를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신 정부는 구조조정으로 생기는 실업자와 무너지는 지역경제에 완충역할을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울러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을 대대적으로 개선하는 게 필수적”이라면서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이 활발하게 창업을 하고 일자리가 늘어나는 선순환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총장은 특히 “올해 우리 경제가 사느냐 죽느냐를 가를 사생결단의 시기를 맞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대내외 3대 악재가 우리 경제를 압박할 것으로 봐서다. 대내적으로는 주력산업의 붕괴가 본격화하고 수요측면에서도 고용불안과 가계부채가 심각하다는 판단에서다. 여기에 탄핵정국과 대선이 겹치면서 불확실성이 경제를 옥죌 수 있다는 것이다.

대외적으로도 트럼프 미국 정부가 등장하면서 보호무역의 장벽이 높아지고 있고 미국의 금리 인상을 신호탄으로 금융시장의 변동성도 커지고 있는데다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 환율전쟁 조짐마저 감지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로서는 겹 악재를 만난 셈이다. 그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로 달러 강세가 나타나 신흥국에서 자본이 빠져나갈 수 있다”며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등 의 환율정책을 통해서 다른 나라를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 “미국이 금리인상 정책을 이어갈 경우 가계 부채 등으로 금리를 인상하기 어려운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외국 자본이 대거 빠질 수 있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올해 2%대 성장이 어려울 수도 있다”면서 “고용창출이 안 돼 체감경기는 경제붕괴로 느끼고 있어 사실 숫자가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가계부채가 정말 걱정이 된다”면서 “미국이 금리를 여러 차례 올리다 보면 우리도 금리 인상에 나서야 할 텐데 그런 순간 상환능력이 떨어지면서 연쇄부도가 가시화한다면 경제시스템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고 걱정했다.

◇관료가 중심 잡아야 위기 극복

이 교수는 “어차피 경제가 어려워진지는 오래됐다”면서 “중요한 것은 정부가 어려운 상황을 인정한 뒤 국민과 소통하면서 활로를 모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공무원이 중심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직자는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면서 “정치권 눈치를 보라고 뽑은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정국불안과 대선과 관계없이 우리 경제를 살릴 방안을 고민하고 국민과 소통해야 한다”면서 “정부가 중심을 딱 잡고 정경분리선언을 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역할론을 강조했다. “마지막 공직 생활이라고 생각하고 권한임기 끝날 때까지 민생 하나만은 살리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면서 “필요하다면 경제전문가 위주로 비상경제대책위원회라고 꾸려 경제살리기에 매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총장은 촛불민심과 관련해서 “우리 국민은 피땀으로 일으킨 민주주의와 경제성장 질서를 흔드는 국정농단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촛불을 통해 분명히 보여줬다”면서 “성숙한 시민의식을 바탕으로 한 평화시위를 통해 탄핵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촛불은 시민혁명의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했다.

이어 “촛불이 명예혁명으로 성공하려면 민주주의질서를 세우고 시장경제를 발전시킬 체제를 갖춰야 한다는 숙제가 남아 있다”면서 “사회가 진보와 보수로 분열되거나 정치권이 촛불민심을 악용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대선도 결국 49대51의 싸움이 될 것”이라면서 “누가 대통령이 되건 절반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새 대통령은 모두의 대통령이 돼야 한다”면서 “연정이나 거국내각을 통해 상대방의 지지세력도 껴안을 수 있는 모두의 대통령이 돼야 한다.정치갈등을 없애고 경제와 교육, 복지개혁을 통해 사회를 통합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이필상 서울대학교 교수 인터뷰


이필상 전 고대 총장은 누구?

[이데일리 장순원 기자] 이필상 전 고려대 총장은 공학과 출신의 경제학자로 유명하다. 1982년부터 고려대에서 강의했다. 2006년에는 서울대 학부 출신 중 처음으로 고려대 총장이 되기도 했다.

그는 ‘시민운동 1세대’로 1990년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서 활동하면서 금융실명제·토지공개념 도입, 한국은행 독립 등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 교수는 학문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는 평가다. 정년퇴임 후에도 서울대 경제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오른다.

▲1947년 경기도 화성 ▲인천 제물포고 ▲서울대 공대 금속공학과▲미국 컬림비아대▲고려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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