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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머징마켓 탈출이 시작됐다'..경제위기 우려

김유성 기자I 2014.01.26 14:24:38

신흥국, 연준 테이퍼링 영향으로 통화가치 하락
선진국 시장 회복세 보이며 글로벌자본 흡수

[이데일리 김유성 기자] ‘이머징마켓(신흥국) 탈출이 본격화됐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세계 경제 성장을 이끌었던 터키, 아르헨티나 등 신흥국이 투자 매력을 잃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등 선진국 중앙은행의 출구 전략이 가시화되면서 투자자들이 신흥국에서 잇따라 이탈하고 있는 것이다.

연준은 지난해 12월 양적완화(QE) 규모를 월 850억달러( 91조7575억원)에서 올해 1월부터 750억달러로 100억달러 축소하기로 했다. 연준은 이달에도 100억 달러 더 축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QE 축소는 미국 달러화 가치와 금리 상승으로 이어져 신흥국에 있던 자금 이탈을 유발한다.

또한 신흥국 성장엔진으로 불리는 중국의 경기둔화도 신흥국 금융시장 불안을 부추기고 있다.

이에 따라 신흥국 통화 가치는 하락하고 채권 등 자본 시장 불안정성은 높아지고 있다. 급기야 경제위기 우려까지 제기됐다.

최근에는 경기 하강에 민심도 떠나고 있다. 태국과 터키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반정부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인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올해 대선·총선을 치르는 나라에서는 집권 여당의 패배 가능성이 높아졌다.

◇아르헨·터키 등 이머징마켓 통화가치 폭락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지난 23일(현지시간) 미국 달러화 대비 아르헨티나 페소화 가치는 국제 외환 시장에서 곤두박질쳤다. 이날 하루 페소화 가치 하락폭은 최고 15%에 달했다.

출처 : 마켓포인트, 기간 : 2013년1월24일~2014년1월24일
24일 기준 달러화 대비 페소화 환율은 7.4231페소로 1년 동안 50% 상승(페소화 가치 하락)했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달러화 유출을 막기 위해 국민들의 해외 쇼핑몰 결제를 연 2회로 제한하는 방안까지 추진중이다. 그러나 WSJ는 아르헨티나 정부가 사실상 환율 방어를 포기한 상태라고 평가했다.

높은 성장률을 자랑했던 터키, 러시아, 남아공, 인도네시아 등도 해외 자본 유출로 통화 가치 하락에 시달리고 있다. WSJ는 23일 터키 리라화 가치가 최근 9개월내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고 전했다.

리라화 가치 하락은 심각한 경상 수지 적자 때문이다. 지난해 5월 연준이 QE를 축소할 것이라는 발표를 한 후 금리가 올라 경상수지 적자를 메우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러시아 루블화와 남아공 란드화도 수년째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브릭스(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의 한 축이었던 브라질 경제 역시 최근 투자 매력이 반감됐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브라질 헤알화 채권 가격은 지난해 13.6% 하락했다. 여기에 달러화 대비 헤알화 환율은 24일 2.398헤알로 1년 동안 18% 상승(헤알화 가치 하락)했다.

WSJ는 미국 연준의 QE 축소에 따른 달러화 가치 상승으로 신흥국 통화가 약세로 돌아섰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달 28~29일 열리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추가 테이퍼링(QE 축소)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신흥국에서 자금 유출은 계속될 전망이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중국 제조업 경기 둔화 조짐은 신흥국 경제에 직격탄이 됐다. 1월 중국 HSBC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49.6을 기록했다. HSBC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가 경기 위축을 뜻하는 50 미만 수준으로 떨어지기는 지난해 7월 이후 처음이다.

중국을 최대 원자재 수출국으로 두고 있는 남아공과 브라질 등은 중국이 경기 둔화로 수입량을 줄이면서 경제가 타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신흥국 , 97년 외환위기 되풀이 없을 것.. “한국은 안전”

신흥국 통화 가치가 급락하면서 제2 외환위기가 올 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아직 그 정도로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5일 아르헨티나 등 신흥국 통화 가치가 잇따라 폭락해 1997년 아시아에 불어닥친 외환위기를 연상시키지만 현재 상황과 1997년 외환위기 유사점은 그다지 많지 않다고 분석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닐 셔링 신흥국 담당 이코노미스트는 “신흥국의 경제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지만 이것은 각 나라가 매우 다르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라며 “아르헨티나는 아마도 특별한 케이스”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의 테이퍼링 영향 등 글로벌 경제 여건에 취약한 정도에 따라 신흥국을 5개 그룹으로 분류했다.

가장 취약한 나라는 아르헨티나, 우크라이나, 베네수엘라다. 이 나라들의 공통된 문제점은 현재 겪는 경제 문제들을 대부분 스스로 자초했다는 점이다.

두번째로 취약한 그룹은 터키,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네시아, 태국, 칠레, 페루 등으로 이들 국가는 미국 테이퍼링에 민감한 편이다.

세번째 그룹은 헝가리, 루마니아 같은 동유럽 국가로 테이퍼링에는 그다지 취약하진 않지만 유럽중앙은행(ECB)의 경기부양적 통화정책에는 민감하다.

상대적으로 덜 취약한 네번째 그룹에는 브라질, 인도, 러시아, 중국 등 일명 ‘브릭스’가 이름을 올렸다.

가장 취약하지 않은 다섯번째 그룹은 한국, 필리핀, 멕시코 등이 속했다. FT는 세 나라에 대해 “수출 수요가 다시 늘어나 이득을 볼 것”이라고 전망했다.

◇들어오는 ‘선진국’

반면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 경제는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21일 발표한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미국의 올해 경제 성장률 전망을 기존 2.6%에서 2.8%로 높였다.

지난해 12월 미국 실업률은 6.7%로 2008년 10월(6.5%) 이후 5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연준의 실업률 목표 6.5%도 눈앞으로 다가왔다.

주식 시장은 지난해 호황을 이어가며 글로벌 자본을 흡수했다. 미국 대표 증시 지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은 최근 1년간 20% 상승했다. 다우지수는 같은 기간 13% 올랐다.

디플레이션 탈출을 목표로 하고 있는 일본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경기 부양책 ‘아베노믹스’ 효과로 경기가 활기를 띄고 있다. 이는 특히 증권 시장에서 두드러졌다. 일본 대표 증시 지수 닛케이225는 최근 1년간 45% 상승했다.

침체를 거듭하던 유럽 자본시장도 회복의 기미가 보이고 있다.

골드만삭스 유럽 기업공개(IPO) 사업 책임자 알래스웨어 워런은 “영국과 유럽연합(EU)의 경기 상황이 안정되고 있다”며 “주식과 같은 고위험 투자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컨설팅 기업 언스트앤영은 유럽에서 올 1분기에 진행될 IPO 규모는 450억파운드(약 80조6600억원)로 전년동기대비 80% 증가할 것으로 추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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