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 외신들에 따르면 이날 장외시장에서 브렌트유 가격은 전거래일보다 8∼10% 급등한 배럴당 80달러 안팎에 거래되고 있다. 2일 정규장이 열리면 급등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상승폭을 가를 핵심 변수는 이란 남부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원유·가스 수송에 장기 차질이 발생할지 여부다.
미 외교협회(CFR)의 에드워드 피시먼 선임연구원은 에너지 시장에 대해 두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우선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해상 병목지대인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는 모든 선박 통행에 중대하고 장기적인 차질이 발생하는 경우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 세계 원유의 약 5분의 1이 이 해협을 통과하기 때문이다. 이번 미·이스라엘 공습 전에도 브렌트유는 미·이란 간 충돌 우려가 높아진 지난 한 달 동안 약 12% 상승, 배럴당 73달러에 근접해 7개월 내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천연가스 시장 역시 충격을 받아 유럽 등 주요 지역의 인플레이션 압력을 키울 수 있다.
다만 피시먼 선임연구원은 호르무즈 해협 자체가 완전히 봉쇄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란의 원유 수출이 사실상 중단될 가능성을 더 높게 봤다. 이 경우 국제유가가 배럴당 80달러 이상으로 급등하겠지만, 다른 산유국들이 증산에 나선다면 충격은 다소 제한될 수 있다는 진단이다. 실제로 Opec+는 이날 기대엔 부족하지만 4월부터 하루 20만6000배럴 증산을 예고하며 시장 진정에 나섰다.
반면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닐 시어링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유가가 핵심”이라면서도 “배럴당 10달러 오르는 정도로는 인플레이션과 성장 전망을 눈에 띄게 흔들어 놓지는 못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란은 중국 등을 포함한 일부 국가에 중요한 원유 공급국이지만 세계 전체 유가 수요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아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이란은 지난 1월 하루 345만배럴의 원유를 생산했다. 전 세계 공급의 3% 미만 수준이다.
호르무즈 막히면 美소비·성장 타격…아시아·유럽도 직격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 주요국 인플레이션을 다시 자극할 가능성이 높다. 각국 중앙은행의 금리 인하 계획이 틀어지고 기업 심리가 위축될 위험도 함께 커진다.
미국은 에너지 상당 부분을 자급자족하고 있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에 따르면 2024년 미국에서 소비된 수입 에너지 비중은 17%로 40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그럼에도 걸프산 원유 수송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 안전하다고 보기 어렵다. 유가 상승이 휘발유 가격 인상으로 이어져 이미 생활비 부담을 호소하고 있는 미 소비자들의 체감 압박을 더욱 키울 수 있다.
ING의 미국 담당 이코노미스트 제임스 나이트리는 “배럴당 100달러 수준이 지속되면 지난 1월 연 2.4%였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4%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추산했다. 이는 연준 목표치(2%)의 두 배 이상으로, 연내 금리인하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장기간 강도 높은 분쟁이 계속되면 상품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는 등 미국은 물론 세계 경제 전반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바클레이스의 아제이 라자댁샤 금리·증권화 상품 리서치 책임자는 “유가가 배럴당 10달러씩 지속적으로 오를 때마다 향후 12개월 동안 성장률이 0.1~0.2%포인트씩 깎일 수 있다”며 “배럴당 120달러까지 올라 그 수준을 유지한다면 미국과 세계 경제는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다른 부작용으로는 달러화 가치 급등이 지목됐다. 테미스토클리스 피오타키스 바클레이스 이코노미스트는 “중동 정세는 장기 분쟁과 고유가 위험을 키우고 있다. 역사적으로 이런 충격은 달러에 우호적이었다”며 “유가가 10% 오를 때마다 글로벌 통화바스켓 대비 달러화 가치가 0.5~1%가량 상승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
유럽 역시 원유뿐 아니라 LNG 가격 급등의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유로존 인플레이션이 현재 1.7%로 유럽중앙은행(ECB) 목표치보다 낮아 통화정책 기조에는 큰 변화가 없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반면 영국 중앙은행(BOE)은 유가 급등 영향을 더 민감하게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현재 BOE 통화정책위원회는 0.25%포인트 금리 인하 여부를 두고 팽팽히 갈라져 있는데, 유가 충격 강도와 지속 기간에 대한 불확실성이 해소될 때까지 금리 인하를 미루는 쪽으로 기울 수 있다는 전망이다.
글로벌 증시·기업 투자심리에도 그늘 드리워
이번 분쟁은 글로벌 금융시장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는 시기와 겹쳤다. 지난주 미국 증시에서 민간 신용시장 둔화 우려와 인공지능(AI) 기술이 기존 산업에 미칠 구조적 충격 우려가 맞물려 은행주들은 지난해 4월 이후 가장 큰 폭으로 하락했다. 미 기술주 역시 AI 관련 조정이 이어지며 지난 한 달 동안 나스닥 지수는 3% 넘게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연준의 통화완화 속도가 예상보다 더딜 수 있다는 전망은 금융시장 신뢰를 추가로 흔들 수 있다. T.로프라이스의 토마슈 비에와데크 유럽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베네수엘라, 그린란드, 관세, 그리고 이제 이란까지, 두 달 만에 너무 많은 충격이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다”며 “기업들의 낙관론이 약화하고 투자도 제약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이네스 맥피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이어진 각종 지정학적 사건들을 떠올려보면 끝도 없을 정도지만, 그럼에도 지난 1년 동안 세계 경제와 무역 성장세는 놀라울 정도로 견조했다”고 평가하며 단기 충격에도 세계 경제가 어느 정도 회복력을 보여줄 수 있다고 낙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