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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별로 나눠서…올해 220여개 첫 지정
2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오는 9월부터 외부감사 대상 기업들로부터 독립성 위반 사항을 조사할 예정이다. 현행법상 기업들은 감사인에게 일부 비감사 용역(가치평가, 자금 조달 중개 등)을 받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재무제표를 들여다보는 감사인이 같은 기업의 컨설팅까지 수행한다면 독립성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도 금감원은 감사인 지정 대상 기업들로부터 독립성 위반에 대해 신고를 받고 있다. 기업과 이해관계가 없는 회계법인을 추려 감사인으로 지정하기 위해서다. 지난해에만 699개 기업이 감사인 지정 조치를 받았다. 올해부터는 주기적 지정제가 전면 시행되는 만큼 해당 조사를 확대하는 것이다.
앞서 5월부터는 넉달간 회계법인으로부터 상장사 감사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감사인 등록 신청을 받는다. 5~9월 감사인 등록을 마무리해 인력, 설비 등에 따라 5개의 군으로 나뉜다.
회계법인 분류와 기업들의 이해상충 여부에 대한 파악을 마치고 나면 10월 기업 자산 규모와 회계법인을 분류한 가~마 5개군 내에서 서로 연결한다. 이로써 외부감사 대상기업은 9년 중 3년은 감사인을 의무 지정하는 ‘주기적 지정’이 처음 이뤄지게 된다.
◇ 빅4 회계법인 선택지 좁아…사각지대 발생
문제는 감사인과 지정대상 회사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자산 5조원 이상의 대기업과 은행은 ‘가군’인 빅4 회계법인(삼일·삼정·안진·한영)을 우선 감사인으로 정한다. 현재도 이들 기업은 대부분 빅4를 감사인으로 두고 있기 때문에 나머지 세곳 중 한곳을 감사인으로 지정받을 전망이다. 그런데 만약 나머지 중 두곳과 비감사 용역을 맺고 있어 독립성 문제가 발생했다면 금감원은 마지막 남은 한곳을 감사인으로 지정할 수밖에 없다. 빅4 모두와 이해상충 소지가 있으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나군’ 회계법인과 계약을 맺게 되기 때문에 감사인 지정 전 기업들은 비감사 용역 정리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국제회계기준(IFRS)이 도입되고 매년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면서 대기업들은 컨설팅은 물론 회계 처리를 위해 대형 회계법인들과 자문 용역을 맺고 있다. 회계업계에 따르면 규모가 크고 복잡한 회계기준 해석이 필요한 일부 금융지주나 대기업은 빅4 회계법인 중 감사인이 외 두세개 회계법인과 컨설팅 등의 계약을 맺고 있다.
감사인 지정은 기업이 선택할 수 없지만 비감사 용역은 자유롭게 맺을 수 있다. 예를 들어 현재 빅4 중 A회계법인을 감사인으로 둔 한 회사가 B회계법인과 계약을 맺고 싶다면 다른 C·D회계법인과 비감사 용역을 주고 있다고 신고하면 된다. 감사인을 의무 지정하는 제도의 사각지대에서 오히려 감사인을 고를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 제도 취지 훼손 우려…보완책 필요 지적도
금융당국도 주기적 지정제에서 이러한 맹점이 발생하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다만 이해상충을 피해 감사인을 지정해야하는데 대형 회계법인이 한정된 독과점 체제다보니 나타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입장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사실상 기업이 비감사 계약이 없는 회계법인을 선택하게 되면 주기적 지정의 취지가 훼손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지만 회계법인의 과점은 유럽이나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로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라며 “제도의 취지 달성과 보안을 위해 모니터링을 계속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높은 수준의 재무제표 투명성을 요구하는 대기업과 금융지주가 회계 처리 편의를 위해 감사인을 고르는 행위가 일어날 가능성도 높지 않다는 판단이다. 이 관계자는 “불필요한 컨설팅 계약을 하면서까지 회사가 회계법인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란 쉽지 않다”며 “불순한 의도가 있는 계약이라면 사전에 파악해 조치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의 자정 노력을 신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사전에 대응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황인태 중앙대 교수는 “대부분의 기업들은 그러지 않겠지만 자율적으로 (감사인을) 조정할 여지가 생긴 상황에서 한두개의 문제가 큰 여파를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며 “이해 상충을 방지하기 위한 기업과 회계법인간, 회계법인 내 강력한 파이어월(방화벽) 구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