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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만 해도 가상자산시장이 워낙 좋은 흐름을 유지하던 때라 시장은 이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렸습니다. 그로부터 6개월 쯤 후 비트코인이 역사상 최고치를 찍고 침체기에 들어서자 스트래티지는 자신들의 우려가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했고, 지난달 초 시장에 직접적인 경고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지난달 6일 1분기에만 125억4000만달러(원화 약 18조4400억원)에 이르는 천문학적 손실을 기록한 스트래티지는 회사가 오랫동안 지켜 온 ‘보유 비트코인을 매도하지 않는다’ 전략이 방향을 틀었음을 재차 천명했습니다.
이날 퐁 르 스트래티지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컨퍼런스콜에서 “주당 비트코인 가치에 도움이 된다면, 앞으로는 비트코인을 팔아 미국 달러를 확보하거나 비트코인을 팔아 부채를 매입하는 것도 검토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전제는 있었습니다. 그는 “회사에 유리할 때 비트코인을 매도할 것”이라며 “그저 ‘비트코인은 절대 팔지 않는다’고 말하며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곤 “그것(유리할 때 비트코인을 매도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회사에 가장 큰 가치 증대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라고 부연했습니다.
이처럼 몇 차례 시장에 이미 예고했던 스트래티지의 비트코인 실제 처분이 시장에 큰 충격을 만든 건, 그만큼 비트코인시장 내 매수 기반이 무너져 있다는 방증과 같습니다. 또 다른 매수축이었던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에서 기관투자가들이 자금을 빼가는 상황에서 유일한 버팀목이라 믿었던 스트래티지의 매도는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실제 현실이 되지 않길 바랐던’ 시장의 왜곡된 기대심리를 저버린 셈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스트래티지의 비트코인 32개 매각은 자신들이 공언했던 ‘회사에 유리할 때 팔겠다’는 원칙에는 부합하는 걸까요? 회사 측이 말하는 32개 비트코인 매각 이유는 회사가 비트코인 매입을 위해 발행했던 영구우선주인 ‘스트래치(STRC)’ 투자자들에게 지급할 배당 재원 마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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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C는 액면가인 100달러 수준에서 유지되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그런데 비트코인 가격 하락으로 최근 STRC 가격은 약 95달러 수준까지 추락했습니다. 스트래티지는 배당 조정 메커니즘을 두고 있는데, STRC 주가가 액면가 아래로 내려가면 배당률을 0.5%포인트 높일 수 있도록 설계돼 있는 겁니다. 즉, 약해진 STRC 투자 수요를 복원시키기 위해 배당을 더 지급하겠다는 것이고, 스트래티지는 곧 주주총회 승인을 거쳐 STRC 배당률을 추가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배당금 지급 재원을 더 아껴야 하는 유인이 생긴 것이죠.
아울러 스트래티지라는 회사가 보통주와 전환사채(CB), 영구우선주 등을 마구잡이식으로 찍어 조달한 돈을 비트코인 매입에 쏟아붓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나름 전략을 가지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애초에 보통주를 늘려 비트코인 매입 재원을 조달했다가 기존 주주들의 주식가치 희석이 커지자, 이를 멈추고 CB 발행으로 돌아섰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향후 주식 전환에 따른 물량 부담이 있는데다 주가 하락으로 전환 메리트가 떨어지자 자금 조달에 어려움이 커졌습니다. 그 고민의 산물이 영구우선주, 스트레치입니다.
현재 스트래티지의 총 부채는 약 67억5000만달러인데, 그 대부분이 CB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를 기준으로 계산한 순레버리지 비율(Net Leverage Ratio)은 약 11% 수준입니다. 이는 조정 EBITDA 대비 순부채를 나눈 값인데, 기업의 채무 부담을 이자 감당 능력 관점에서 평가하는 지표입니다. 뉴욕 증시에 상장된 가상자산 관련 기업들 중 가장 낮은 축이 속하구요, 비트코인 가격이 3만달러까지 하락하더라도 스트래티지의 자산가치는 여전히 부채규모를 크게 웃도는 수준입니다.
그런데도 회사는 기존에 발행한 CB를 줄이려 하고 있습니다. 실제 스트래티지는 지난달 중순 공시를 통해 일부 사채권자들과의 협상을 통해 오는 2029년 만기 도래하는 쿠폰금리 0%인 선순위 CB 가운데 15억달러(원화 약 2조2500억원) 어치를 조기에 되사기로 합의했다고 밝혔습니다. 현 주가가 전환가격보다 현저히 낮아 주식 전환이 유리하지 않은 만큼 CB 투자자들이 조기 상환에 응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 참에 잠재적인 주식가치 희석 우려를 없애겠다는 계산이었습니다.
결국 앞으로도 스트래티지는 STRC 배당금 지급이나 과거 발행했던 CB 조기 상환을 위해서라면 보유하고 있는 비트코인을 더 내다 팔 수 있습니다. 아니, 이미 그러겠다고 주주나 시장에 공개 선언을 한 것이죠. 그게 시장에 충격을 줄진 몰라도, 회사나 주주들에겐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또 비트코인을 팔아서라도 더 많은 STRC를 지속적으로 찍어야 더 많은 비트코인을 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1분기 컨퍼런스콜에 등장한 마이클 세일러 스트래티지 이사회 의장의 발언은 모든 논란을 잠재우기 충분합니다. 그는 스트래티지를 부동산 개발회사와 같다고 봤습니다. “부동산 개발회사는 땅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팔기 위해 존재한다”면서 “그런 점에서 우리는 비트코인 개발회사와 같다”고 했습니다. 세일러는 “에이커당 1만달러에 토지를 샀다가 에이커당 10만달러에 팔아 그 차익으로 더 많은 토지를 사거나, 나중에 더 많은 토지를 사려고 빌린 부채의 이자를 갚기 위해 에이커당 10만달러에 팔았다고 해보자”며 “누구도 그것이 부동산 가격에 나쁘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고, 그 사업 모델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증거라고 말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세일러 의장과 스트래티지는 아무런 땅이나 사서 언젠간 땅값이 오르길 기대하는 게 아닙니다. 부동산 개발업자처럼 개발하기 좋은 땅을 찾고, 그 땅 위에 건물이나 주택을 지어 분양 이익을 얻습니다. 개발하려 땅을 샀는데 미리 땅값이 올라가면 다른 개발업자에게 땅을 팔아 차익을 얻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필요할 경우 채무로 레버리지를 일으켜 자본력을 극대화하거나, 상황이 좋지 않을 땐 개발을 자제하고 빌린 채무를 갚기도 합니다.
마침 스트래티지가 비트코인 매도 가능성을 천명했던 지난달 컨퍼런스콜 다음날 국내 대표 비트코인 트레저리 기업인 비트플래닛의 이성훈 대표이사를 인터뷰했었습니다. 비트플래닛은 스트래티지와 달리,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비트코인 채굴을 주사업으로 해 여기서 발생한 영업현금흐름으로 서서히 비트코인을 축적해가는 전략을 세우고 있습니다. 인터뷰에서 이 대표는 “세상에 스트레티지는 당연히 하나밖에 없으며, 스트래티지가 할 수 있는 일을 다른 회사는 못한다”며 “미국이든 다른 나라든, 스트래티지의 전략을 카피해 똑같이 실행하는 것도 유효하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이 대표의 얘기처럼, 지금 스트래티지는 바로 그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캐시카우를 만드는 본업에 기대지 않고, 증시 내에서의 자본조달 전략으로 비트코인을 쌓아 주주들에게 수익을 공유하는 일종의 실험을 하고 있는 겁니다. 아직은 검증되지 않은 실험일뿐, 그 자체로 무모하거나 전략 없다고 결론 내릴 순 없습니다. 오히려 일개 상장사 하나에 비트코인시장 전체의 버팀목 역할을 기대하는 시장이 무모한 것이죠.
이런 비정한 시장을 의식해선지, 세일러 의장은 6일(현지시간) 자신의 X(옛 트위터)계정에 이런 글을 올렸습니다. “현재 시장은 1)비트코인이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화폐 혁신이라고 믿는 비트코인 맥시멀리스트, 2)비트코인을 글로벌 경제에 편입돼야 할 디지털자본으로 보는 비트코인 캐피털리스트, 3)비트코인 프로토콜이 지속 확장되기 위해 기술 혁신이 필요하다는 비트코인 기술주의자, 4)비트코인 원래 철학과 가치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비트코인 근본주의자 등 4가지 부류로 나뉜다”며 “비트코인은 하나의 투자자 집단에 의해 성장하는 게 아니라, 이 모든 집단이 균형있게 함께 움직일 때 성공할 수 있다”고.
스트래티지 같은 자금조달 구조를 가지지 못한채 그 전략을 따라가는 트레저리 ‘카피캣’들은 어려움을 겪겠지만, 적어도 스트래티지가 실행하는 비트코인 트레저리 실험은 여전히 진행형입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한국 등에서의 주요 디지털자산 관련 입법이 마무리되고 관련 회계 기준도 명확해져 많은 일반 기업들도 재무제표에 조금씩이라도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편입할 수 있는, 보편적 가상자산 투자 시대가 온다면 이런 비트코인 트레저리의 성공 가능성은 지금보다 분명 높아질 수 있을테니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