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승관의 워치독]‘23년만에 물꼬 텄지만’…증권거래세 인하 현실화 불투명

문승관 기자I 2019.03.24 12:00:00

추가 인하 불투명…중장기 과제로 넘긴 손익통산 등 ‘하세월’ 우려
올해 기점 文 정부 임기 후반 접어들어…내년 총선 등에 묻힐 수도
‘칼자루’ 쥔 기재부…여당 압박 달래고 시간벌기 위한 전략 분석도
기재부 결정 과정 설명 불충분해…관련자 밝히지 않아 오해 부추겨

[이데일리 문승관 기자] 지난 21일 기획재정부는 증권거래세를 현재보다 0.05%포인트 인하하는 세제 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올해 상반기 안에 증권거래세법 시행령을 고치겠다고 했다. 증권거래세는 1963년 도입돼 1996년부터 현행과 똑같은 세율을 유지하다가 이번에 23년 만에 인하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서울 을지로 IBK기업은행 본점에서 열린 ‘혁신금융 비전선포식’에 직접 참석해 증권거래세의 ‘단계적 인하’를 언급했다.

권용원 금융투자협회장은 증권거래세 인하 방안 등이 담긴 정부의 혁신금융 추진안에 대해 “자본시장 선진화에 큰 획을 긋는 의미 있는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자본시장 발전을 위해 큰 발걸음을 뗐지만 증권거래세 인하 발표를 둘러싼 일련의 석연치 않은 과정이 거래세 인하의 의미를 퇴색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21일 기획재정부가 배포한 증권거래세 인하 관련 자료.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단계적 인하와 관련한 내용을 찾아볼 수없다.(자료=기획재정부)
◇23년 만에 물꼬 텄지만…정치적 이벤트 등에 ‘현실화’ 어려울 수도

23년 만에 거래세 인하의 물꼬를 텄지만 ‘자본시장 세제 개편을 통해 모험자본 투자에 도움이 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한 문 대통령의 뜻을 제대로 이행할지는 미지수다.

증권거래세 인하 계획이 구체적으로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올해 단발성으로 0.05%포인트 인하에 그친다면 오히려 시장에 찬물을 끼얹는 상황이 전개될 수도 있다. 증권거래세 단계적 인하에 대한 구두 언급만 있을 뿐 구체적 계획이 없어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기재부가 내놓은 안은 이달 초 민주당 자본시장특위가 발표한 방안보다 후퇴했다. 자본시장특위는 증권거래세를 내년부터 0.06%포인트씩 단계적으로 인하해 2024년에 완전히 폐지하는 안을 내놨다. 지난 21일 기재부가 배포한 증권거래세 인하 관련 자료에는 문 대통령이 언급한 ‘증권거래세 단계적 인하’와 관련한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이 때문에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번 정부에선 추가 인하가 현실화하기 어려운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올해를 기점으로 문재인 정부가 임기 후반기로 접어드는데다 1년 앞으로 다가온 총선 등 정치적 이벤트의 영향으로 대부분 정책이 상당 기간 표류할 가능성이 있어서다.

이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발표 내용에서 지연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홍 부총리는 같은 날 국회 본회의에서 열린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올해) 증권거래세를 0.05%포인트를 낮추기로 했다”며 “증권거래세와 (주식) 양도세 문제가 같이 있다. 내년 상반기 정도에 이 두 개를 연계해 연구검토를 거쳐 증권거래세(개편), 양도세 확대 방안을 내년 상반기에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투자 상품 간 이익과 손해를 합쳐서 세금을 매기는 방안(손익통산)과 여러 해에 걸쳐 발생한 이익과 손해를 합쳐서 계산하는 방안(이월공제)은 중장기 과제로 미뤄졌다.

여전히 칼자루를 쥐고 있는 기재부의 입장이 정치권의 증권거래세 인하 또는 폐지 압박에 못마땅해하는 분위기다. 세종 관가에서는 “내년 총선이 급한 민주당이 증권거래세를 무작정 없애자는 게 포퓰리즘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이런 배경 속에서 여당의 압박을 무마하면서 실리를 취하기 위해 우선 거래세 0.05%포인트 인하를 발표하고 단계적 인하 여부는 내년 상반기 발표로 시간벌기를 했다는 것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박사는 “증권거래세 0.05%포인트 인하는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적지 않아 중장기적인 안목에서 볼 필요가 있다”며 “일회성 인하면 시장에 미칠 수 있는 효과가 덜 할 수 있어 증권거래세를 단계적으로 인하하겠다는 확실한 계획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이데일리와의 전화통화에서 “내년에도 올해처럼 증권거래세를 인하할지 확정하지 않았다”며 “양도세 전면과세 방안을 내년에 검토하면서 이와 연계해 증권거래세를 인하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1일 밤에 배포한 기재부의 보도해명자료
◇당정 협의 둘러싼 석연치 않은 해명

기재부는 이데일리와의 전화통화에서 “21일 발표한 개편안이 확정안”이라며 “올해 추가로 증권거래세를 인하할 계획이 없다”고 못 박았다. 당정협의와 관련해 “당 전체는 아니지만 관련된 분들께 전화하거나 개별적으로 찾아가서 미리 말했다”고 설명했다.

정상적인 협의 프로세스라면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산하 ‘가업상속 및 자본시장 과세체계 개선TF(태스크포스)’와 의견을 조율한 후 TF와 기재부가 공식 발표하는 게 상식이다.

기재부는 21일 밤 11시25분에 보도해명자료를 내고 “민주당 정책위 의장과 가업상속 및 자본시장 과세체계 개선 TF단장 등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 마련했다”고 했다. 공식 협의 창구를 통해 결정했다는 주장인데 앞서 기재부 관계자가 언급한 ‘관련된 분’이라는 표현은 충분히 오해를 살 만한 부분이다. 관련자를 정확히 언급해야 했다.

해명 자료를 낸 이후 기재부 관계자는 자정께 이데일리에 전화를 걸어와 “민주당 의원들과 사전협의를 했다”며 “0.05%포인트 인하 얘기는 1~2달 전부터 당과 비공개 협의 과정에서 얘기가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홍남기 부총리가 발표 전날 이뤄진 대통령 보고에서 증권거래서 인하 내용을 설명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궁금증을 자아냈다.

정부부처의 한 관계자는 “홍 부총리가 지난 20일 대통령 보고 시 증권거래세 인하 방안를 설명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들었다”며 “21일 행사에 앞서 청와대 비서진에서 간략한 보고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다른 반응을 보여 당정협의를 두고 혼란을 부추겼다. 민주당 가업상속 및 자본시장 과세체계 개선TF 소속 한 의원은 기재부 발표 후 이데일리와의 전화통화에서 “당정 간 논의 중인 사안에 대해 기재부가 먼저 발표한 이유를 모르겠다”며 “4월 말까지 결론을 내겠다고 시한까지 못 박았는데 이렇게 하면 당정협의를 할 필요가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관계자는 “증권거래세를 단계적으로 폐지한다는 큰 방향을 잡아 놓고 각 기관의 의견을 청취한 정도”라며 “구체적인 인하율에 대해 논의한 바 없다”고 말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지난 22일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인 조정식 의원실에서도 해명자료를 내 “심도있는 있는 논의를 거쳐 결정했다”고 했다. 이데일리는 TF에 참여하는 의원이 결정 과정을 모르고 있다는 데 대해 물었지만 “누가 그런 얘기를 했는지 그건 알 수 없다. 하지만 ‘당·정·청 엇박자다’ ‘여당 패싱이다’식의 보도는 모두 사실무근”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22일 오전 더불어민주당 정책위 의장 조정식 의원실에 배포한 해명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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