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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Story]지상파 방송사에 뿔난 방통위 상임위원

김현아 기자I 2015.12.19 08:05:30
[이데일리 김현아 기자] 2008년 3월, 이명박 정부 시절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가 합쳐져 ‘방송통신위원회’가 막 만들어졌을 때 위원장 집무실 위치에 대한 논란이 있었습니다. 당시 위원장(최시중) 집무실이 서울 광화문에서 같은 건물을 쓰던 통신회사 KT 사장(남중수) 집무실보다 낮은 층에 위치한 이유에서죠. 그래서 ‘방통위 위에 KT가 있는 것 아니냐’는 농담이 나왔습니다.

하지만 어떤 공무원이 그러더군요. “틀린 말이에요. 방통위 위에 있는 건 KT가 아니라 KBS죠”라고요. “그렇다면 방통위 위에 KT, KT위에 KBS란 말인가요?”라고 되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술자리 농(弄)같은 얘기지만, 전부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KBS를 비롯한 지상파 방송사들(MBC,SBS)이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권력이 그만큼 큰 것이죠. 물론 지극히 사견이지만, 종합편성채널에 비해 공정한 보도로 국민의 신뢰를 받는 부분도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최근 방통위와 지상파, 특히 KBS와의 관계가 상당히 불편합니다.

17일 열린 방통위 제69차 회의에서는 공개적인 지상파 방송사에 대한 비판 발언이 나왔습니다. 그것도 방송의 공익성을 이유로 지상파 방송사를 감싸던 야권 추천 상임위원의 입에서 말이죠.

이날 안건 중 △2015년도 지상파이동멀티미디어(지상파DMB) 방송국 재허가에 관한 건과 △순수외주제작 편성비율 관련 ‘방송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에 관한 사항을 논의할 때였죠.

방통위 부위원장인 김재홍 상임위원은 먼저 지상파DMB 재허가 심사에 KBS 사장이 명확한 이유를 대지 않고 불참한 사실을 언급했습니다.

김 부위원장은 “지상파DMB에 전용 콘텐츠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난시청 개선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런 걸 종합적으로 개선하려면 경영 개선이 있어야 하는데, KBS 사장만 일정 조율이 안 돼 오늘 6개 사업자만 재허가하게 됐다. KBS가 하는 지상파DMB에 대한 심사는 제대로 진행이 안 되고 있다”고 했습니다.

KBS는 다른 지상파 방송사와 달리, 사장이 참석해야 하는 재허가 심사 자리에 별다른 설명 없이 편성본부장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방통위는 결국 KBS를 뺀 부산문화방송(주), 대전문화방송(주), 광주문화방송(주), 춘천문화방송(주), 제주문화방송(주), 대전방송(주) 등 6개사만 지상파DMB 재허가를 할 수 밖에 없었죠.

그럴리야 없겠지만, 12월 31일 허가 유효기간이 끝나는 KBS가 다음 주까지 방통위 심사에 응하지 않으면 국민들은 DMB로는 KBS2를 못 볼 수도 있습니다.

지상파 방송사의 순수외주제작 방송프로그램 편성비율을 정하는 안건에서도 지상파의 과도한 로비가 도마위에 올랐습니다.

이날 방통위는 MBC와 SBS가 외주제작 프로그램의 편성비율을 35%까지 낮춰달라고 요구한 걸 사실상 거부하고, 40% 현행 유지를 결정했습니다. MBC와 SBS(034120)는 40%를 35%로 낮춰달라고 요구했고, KBS는 아직 의견을 내지 않았죠.

김 부위원장은 “우리가 문체부와 어렵게 사전 협의를 해서 제출했는데 국회에 가니 지상파 방송사들이 외주제작업체에 간접광고를 허용하는 대신 편성 의무 비율을 낮춰 달라고 요청했다더라”면서 “이 과정에서 한 때 (방송법이) 국회 법안 소위에 상정되지 못했다”고 비판했습니다.

또 “국회에서는 한 지상파 방송사(KBS)와 협의가 안 됐고, 반대하고 있다고 해서 상정이 어렵다고 했다”면서 “힘 있는 방송사 하나가 반대하면 다른 방송사들도 동의하고 정부가 합의해도 빠지는 겁니까? 우리가 정책규제기구인데 우리와 협의해야 하는 방송사들이 협의하다 나중에 국회에 로비하고 그런게 맞는지 모르겠다. 사무처에서 대상 사업자들에게 공정하게 이야기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 문제를 일부 방통위 상임위원의 심기불편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는 지상파 방송사를 뺀 미디어 정책은 있을 수 없고, 미디어의 미래를 논함에 있어 무엇이 소중하게 지켜야 할 ‘공익’의 영역이고, 어떤 부분에서 경쟁을 도입해 ‘효율성’을 추구해야 할지 국회는 물론 정책 당국도 헷갈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상파 방송사는 정부의 관여를 거부해야 하는 ‘언론사’인 동시에, 국내 최대의 ‘콘텐츠 제작집단’이자 초고화질(UHD) 주파수를 무료로 받아 별도 ‘플랫폼’화를 추구하는 곳입니다.

정부는 언론으로서의 지상파의 속성과 콘텐츠, 플랫폼 사업자로서의 지상파 위치를 구분해 균형잡힌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지상파 방송사 역시 언론의 힘을 과도하게 경제 정책의 영역으로 확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입니다.

올해 우리는 국가 자산인 주파수를 아직 국제표준도 정해지지 않은 지상파 UHD에 대거 분배한 사실을 기억합니다. 국회의 압력때문이죠.

여기에 지상파 방송사들은 방통위에 다채널(MMS)을 소외계층 교육 지원을 위한 EBS2 외에도 다른 지상파에 허용하는 것은 물론, MMS에 별도 편성을 인정하고, 정부가 시설투자를 지원해주는 것은 물론, 지상파 중간광고까지 허용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방송과 통신, 인터넷을 넘나드는 스마트 미디어를 키워 청년 일자리를 만들고 민간 투자를 불러 일으키려는 정부로선 난감한 일입니다. 방송 시장이 지상파 독과점 시대로 회귀할 우려도 있죠.

줄어드는 광고비때문에 지상파 방송사의 어려움은 더 커질 것으로 우려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문화적 가치와 경제적 가치를 동일시 하거나 사회문화적 권력을 경제적 권력의 지렛대로 삼으려 하면 되려 공익과 멀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만사가 그렇듯 균형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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